-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좌파 낙인찍기 프레임
- 분단 산물 이념대결 부추기는 낡은 정치놀음
박근혜 대통령은 10월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 바로 잡기는 정쟁대상이 될 수 없다. 집필 안 된 교과서 두고 더 이상 왜곡.혼란 없어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10월13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3시간 전 예정에 없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교육당국에게 국정화 정책의 차질 없는 추진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친박 진영이 오랜만에 한목소리로 ‘국정화’를 외치고 있다. 여권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에서 ‘좌파 낙인찍기’ 프레임으로 국론을 유리하게 만들어 야권을 고립시키고, 이를 내년 4.13 총선까지 끌고 간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0월17일 새누리당 산악회 발대식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는 현수막을 거리에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국민여론은 역풍이 될 조짐이 커지고 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10월26일 공개한 ‘역사교과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반대 52.7%, 찬성 41.7%로 나타났다.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11.0%포인트 앞선다. 같은 여론조사 기관이 10월 13일 실시한 조사에선 찬성 47.6%, 반대 44.7%로 찬성여론이 다소 앞섰다.(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는 10월 19~23일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84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CATI) 및 자동응답(ARS) 방식, 무선전화(50%)와 유선전화(50%) 병행 임의걸기(RDD) 방법으로 조사. 응답률은 전화면접 방식 20.3%, 자동응답 방식 6.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
특히 대통령 지지도 46.9%, 새누리당 지지도 41.4%, 새정치민주연합 지지도 24.7%와 비교해 볼 때, 41.7%의 국정화 찬성 여론은 새누리당 지지도와 거의 같다. 즉 대통령 지지층에서도 반대여론이 만들어 지고 있으며, 25%에 가까운 무당층 대다수가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이는 여권의 ‘좌파 낙인찍기 프레임’이 먹히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야권을 고립시켜 4.13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 같다. 오히려 분열된 야권을 단합시키고 있으며,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청와대에 일일보고를 하는 비공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 사실도 여권의 입장에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비공개 TF팀 운영비 44억 원을 편법으로 사용했으며, 여권의 오락가락 해명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여권은 정치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좌파 낙인찍기’ 프레임을 이용했다. 2012년 대선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며, 일반인이 확인할 수 없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내용을 들고 나왔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 후보를 ‘좌파’로 낙인찍기 위해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국정원 대선개입의 악재가 커지자 국정원은 2013년 6월24일 국회 정보위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녹취록’을 공개해, 정치쟁점을 이념논쟁으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좌파 낙인찍기’ 프레임은 서로 번지수가 다른 것 같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북한과 직접 연관이 없고, 다양성을 무시한 시대착오적 발상이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돌리는 것이며, 국민의 어려운 삶과 관련이 없는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다양성의 시대에 획일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가기밀이 아니고는 이미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개인이 접할 수 있고,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개성이 존중되고 다양한 정보 속에서 개인들이 취사선택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역사해석이 가능한 교과서를 획일화 한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심지어 삼국시대 역사만 하더라도 일연의 삼국유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 두 가지가 책이 존재한다.
또 국정화 추진과 ‘좌파 낙인찍기’는 역사의 시계를 7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해방 전후 좌우 이념대결의 판을 2015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미래로 가느냐, 과거로 회귀하느냐’의 선택에서 국민들은 과거의 회귀보다 미래를 원한다. 해방 70년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 국민 중에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 보다 북한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없을 것이다. 이미 북한사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식 이념논쟁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다수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청년들은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꿈, 희망)가 되어가고 있다. 졸업해도 안정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은 소진되어 국가경제는 침체하고, 가계부채는 1,100조 원이 넘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지 않은 어떤 이념대결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전면에 걸었다가 역풍을 맞았다. 국민의 삶과 무관한 내용을 정치쟁점화 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추진동력이 사라지고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좌파 낙인찍기’ 프레임의 근저에는 분단이 자리 잡고 있다. 분단의 산물인 이념대결을 부추기는 과거식의 낡은 정치놀음을 지속할 것인지,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협력이라는 미래로 갈 것인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야 할 때이다.<백왕순 통일의병 사무총장>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