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억 이혼소송 중 부인사망’ 미궁 속으로

최은서 기자 = 1·2심 재판부에서 ‘교통사고로 위장한 아내 살인극’으로 결론 났던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별거 중이던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 징역 9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던 40대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사건은 1년여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남편 이모(42)씨와 아내 조모(40)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뒀지만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결혼 이후 지속적인 집안 갈등과 남편 조씨의 폭행으로 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고로 셋째 아이가 숨져 조씨가 우울증을 앓으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다.
결국 결혼 10년 만인 지난 2008년 8월 조씨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전 재산의 절반인 54억5000만 원과 위자료 5000만 원을 요구하는 재산분할 청구소송도 같이 냈다.
같은 해 2008년 11월 11일 이혼 소송 중이던 두 사람은 함께 차를 타게 됐다. 당시 운전은 이씨가 했고, 조씨는 조수석에 앉았다. 같은 날 오후 8시에서 9시 40분 사이 양주시 장흥면의 편도 2차선 도로를 운행하다 교통사고가 났다. 차량의 조수석 정면으로 방호벽 모서리를 들이받은 사고로 조씨가 사망하고 이씨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검찰은 이씨가 그동안의 조씨와의 갈등과 차 안에서 생긴 악감정 때문에 조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씨가 충돌 사고로 아내에게 부상을 입힌 후 2차 사고를 재차 일으켜 아내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도 “1차사고 당시부터 이씨에게 살인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되고, 그 고의가 2차사고까지 계속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씨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근거로 차량 조수석 쪽에 묻은 붉은색 페인트가 방호벽 안쪽 벽면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칠한 페인트와 동일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이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씨가 살인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고, 직접증거도 없다”며 “1차사고의 존재 여부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조수석에 앉은 조씨가 1차 사고로 강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면 조씨의 안면부 등에 충격 흔적이 생겨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충격 흔적이 발생하지 않은 사유는 설명하지 않았다”며 “사고가 2회에 걸쳐 이뤄졌다는 것을 전제로 2차 사고시에 충격 흔적이 발생하지 않은 사정만 판단 근거로 삼은 원심은 합리적이라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조씨의 신체 손상은 한 번의 충돌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국과수 감정결과를 덧붙였다.
이어 재판부는 “여러 의문점에 대해 면밀히 심리하여 본 다음 그에 대한 합리적 해명이 있은 후에야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증거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합리적인 자유심증의 범위와 한계를 넘어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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