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전까지 불안했던 U-17팀…부진을 계기로 도약 발판 마련
대기만성형 최 감독, 기본기를 위한 ‘생각하는 축구’ 강조
2002월드컵 4강 이후 급성장한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다수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부실한 조직력과 학연 지연 등으로 꼬인 여러 문제로 총체적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A매치팀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사령탑으로 맞으며 놀라울 정도로 안정감 있게 승수를 쌓아가고 있고 형보다 나은 아우인, 리틀 태극전사들 역시 칠레 U-17 월드컵에서 이변을 연출하며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리틀 태극전사들과 이들을 이끌고 있는 최진철 감독의 포부를 만나봤다.
전 세계 축구 유소년 시스템을 점검하고 미래의 꿈나무들을 발견하는 자리인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은 연일 기적을 연출해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진철 감독이 이끄는 한 U-17 대표팀은 지난 18일(한국시간) 조별리그 B조 강팀인 브라질과의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이변을 낳았다. 특히 브라질은 이번 대회 1위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막강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팀으로 한국이 FIFA 주관대회에서 브라질을 꺾은 것은 사상최초였다.
최진철 호의 이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아프리카의 복병 기니를 상대로 1-0으로 물리치며 2연승을 기록해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더욱이 한국대표팀이 2연승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것도 남자 축구 사상 처음이었다.
이처럼 브라질, 기니를 연파한 한국의 기세는 더욱 불타고 있다. 팀의 주축인 이승우(17·바르셀로나)는 기니전을 마친 뒤 “16강에 올랐으니 편한 마음으로 잉글랜드를 꺾고 싶다”고 3연승 의지를 굳건히 했다. 최 감독 역시 “1·2차전 모두 수비와 역습이 잘 이뤄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조별라운드 탈락 위기에 놓인 잉글랜드는 한국을 꼭 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3차전 대격돌을 예고했다. 닐 듀스닙 잉글랜드 감독은 잉글랜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16강 확정 여부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간판 골잡이 카일렌 힌즈(17·아스널)을 앞세워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는 한국 수비를 뚫고 거센 공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의 각오도 만만치 않다. 그는 “지금까지는 수비적인 모습만 보였지만 좀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할 수도 있다”고 말해 1·2차전에서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전술로 다가설 뜻을 내비쳤다.
물론 한국팀은 이미 16강을 확정했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은 없다. 다만 비기기만해도 한국은 조 1위 자리를 이어갈 수 있어 앞으로 좀 더 유리한 상황을 기대할 수 있다. 또 U-17 대표팀이 3연승을 이어갈 경우 FIFA 주관 대회 조별리그 3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연출하게 돼 국내 축구팬들은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죽음의 조에서
먼저 웃은 대표팀
이 같은 이변은 당초 예상하지 못했다. 최진철 호는 조 편성에서 조차 죽음의 조에 속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승 후보 브라질과 축구종가 잉글랜드, 아프리카 복병 기니까지 그 어느 팀 하나 만만한 곳이 없어 출정 때부터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됐다.
또 대회를 앞두고 보여준 대표팀의 행보도 우려를 키웠다. 이번 대회 한 달 전 국내에서 치른 수원 컨티넨탈컵에서 대표팀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더욱이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0-2로 뼈아픈 패배를 맛봐야 했다. 이후 미국 전지훈련서 미국과의 평가전에서도 2연패를 당해 대표팀 내 분위기도 가라 앉아있었다.
하지만 실전대회에서의 표정은 엇갈렸다. 최진철 호는 당당히 2연승을 거두며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스페인 기자는 “한국이 브라질, 잉글랜드와 한 조에 속했는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게 신기하지 않나”라고 반문할 정도다.
이처럼 월드컵을 앞둔 경기에서 세간의 우려가 쏟아졌지만 최 감독은 문제점이 다수 나온 것을 오히려 반기며 부족함을 메울 수 있었다고 웃었다.
그의 회심의 대답처럼 대표팀은 지난달 파주NFC(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소집 훈련을 시작하며 기본부터 챙겼다. 최 감독은 “지난 동계훈련을 통해 체력을 끌어올렸고 조직력과 기술적인 부분도 향상됐다.
수원컵에서 많은 보완점을 찾으면서 좋은 팀이 됐다”며 “파주에 있는 동안 개인과 그룹 수비, 전방에서의 프레싱을 강조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평가전을 통해 잘 나타났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더욱이 기적의 배경인 체력을 위해 월드컵 직전까지 파워프로그램을 돌린 것도 큰 보탬이 됐다.
선수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이승우는 “많은 사람이 브라질과 잉글랜드가 더 잘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준비를 더 많이 해 리더가 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주장 이상민(17·울산현대고)도 “브라질을 이기고 분위기가 들뜨기도 했지만 월드컵은 쉬운팀이 없는 만큼 빠르게 가라 앉혔다. 잉글랜드도 조직력을 앞세워 잘 준비하면 승리할 수 있다”며 준비된 부분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솔력과 용병술로 빛난 최진철 마법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은 최진철 호의 자신감에는 최 감독의 축구철학이 선수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최진철 호의 특징은 ‘선 수비 후 역습’카드로 귀결된다.
특히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한 최진절표 ‘짠물 수비’는 경기 막판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톡톡 튀는 어린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통솔력, 절묘하게 선수를 교체하는 용병술이 더해지면서 불안감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최 감독의 리더십은 이번 대회를 통해 빛을 발하면서 세계 축구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역시절만큼 최 감독은 지도자의 길도 진중하고 묵직하게 이어왔다. 최 감독은 선수시절 서른 살이 넘어서야 거스 히딩크 감독을 통해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 2002년 최 감독은 한-일 월드컵에서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철벽 쓰리 백을 구축하며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최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다가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복귀해 조별리그 최종전인 스위스전을 끝으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최 감독은 2008년 강원 FC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를 거쳐 지난해 16세 이하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첫 대회인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며 칠레 U-17 월드컵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지도자로서 차분히 걸어온 최 감독은 조별리그를 통해 자신의 지도력의 꽃을 피우게 됐다. 우선 최 감독의 용병술은 축구팬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브라질 전에서 그는 이상헌(17·울산현대고) 카드로 이변을 연출했다. 후반 33분 투입된 이상헌은 1분 만에 브라질의 왼쪽 측면을 뚫은 후 골문으로 쇄도하던 김진야(17·김진야)에게 연결했고 김진야의 패스를 받은 장재원(17·서울오산고)이 왼발 슛으로 골망을 흔드는 신의 한 수를 선보였다.
기니 전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용병술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한국은 급격하게 수비가 흔들렸다. 이에 최 감독은 7분 만에 장재원 대신 김승우(17·서울보인고)를 투입했다. 김승우를 중앙수비에 놓고 이승모(17·포항제철고)를 위로 올리자 흐름이 바뀌며 수비가 안정을 찾았다.
그 사이 최 감독은 후반 31분 이상헌에 이어 인저리타임에 오세훈(16·울산현대고)을 투입, 1분 만에 왼발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트려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냈다.
선수들 성장에 초점
특히 최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 기본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U-17 대표팀은 A대표팀으로 가는 시작 단계다. 기본이 탄탄한 어린 선수들은 나중에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가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린 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기초를 심어주고 싶다”고 종종 설파한다.
또 최 감독은 제대로 된 기초를 심어주기 위해 “생각하는 축구”를 강조한다. 그는 생각하는 축구를 할 때 실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기에 훈련과 경기 중 선수들에게 “움직이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하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하고 있다.
최 감독의 뚝심은 과거 히딩크를 연상시켜 더욱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달 수원컵에서 최하위에 그치가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최 감독은 날선 비판에 흔들림 없이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대회는 월드컵이지 수원컵이 아니다”라며 잘라 말했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2001년 1월 골드컵에서 약체 쿠바와 비기자 당시 쏟아닌 비난에 대한 답변과 유사하다. 히팅크 감독은 “우리의 목표는 골드컵이 아니라 월드컵”이라고 응수한 바 있다.
여기에 최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도약이 아닌 선수들의 발전 가능성에 중점을 두면서 선수들의 진로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길을 만들어주는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 그의 헌신적인 모습에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최 감독은 “성과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발전시키는 것도 성과중의 하나”라며 “월드컵은 아무나갈 수 없는 대회다. 세계적으로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고 같이 뛰어보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이 생각하는 부분에서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크게 발전 할 것”이라고 말해 이번 대회 역시 성과와 함께 성장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최진철 호는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하면서 최 감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 감독은 “조 1위를 하느냐, 2위를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도 “마음 같아서는 3승을 하고 싶지만 16강 상대를 봐야 할 필요성이 있을 갔다”고 말했다.
최 감독의 말처럼 한국대표팀은 전력을 다해야 할지, 한 템포 쉬어갈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어린 선수들인 만큼 한번 탄 흐름을 이어갈 필요가 있지만 체력안배 기회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주축 선수들의 피로도가 누적될 수밖에 없고 부상 우려도 커져 16강을 앞두고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조 1위를 하는 것이 여러 모로 이점이 많다. 한국이 조 1위로 올라가면 A, C, D조 3위들 중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진출권은 얻은 팀과 만나게 된다. 와일드 카드 후보군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각 조의 상위팀보다는 수월한 상대임에 틀림없다. 또 16강 전을 기니전을 치른 라 세레나에서 치르게 돼 대표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아 피로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이점도 갖고 있다.
반면 2위로 오를 경우 F조 2위와 맞붙는 가운데 경기를 해보지 않은 비나 델 마르에서 잔디와 분위기에 새로 적응해야 한다. 또 이번 대회 최강으로 평가받는 나이지리아와 8강에서 만나게 돼 4강 진출을 노리는 최진철 호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다. 이에 최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따라 한국팀의 남은 운명도 요동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