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SF 22명 사망… 2008년부터 1700명 넘어
공습 강화하면 ‘부수적 피해’ 증가 불가피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보안지원군 및 미군’ 사령관인 존 캠벨 미국 육군 대장은 지난 10월 6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군이 10월 3일 아프간 쿤두즈의 ‘국경없는 의사회'(MSF) 병원을 오폭(誤爆)한 것과 관련해 “실수로 병원을 공습했다"고 자인했다. 이 폭격으로 MSF 직원 12명과 환자 10명 등 민간인 22명이 사망했다. 캠벨 사령관은 “아프간군의 요청에 따라 공습 지원을 했지만, 공습 자체는 명확히 미군의 지휘체계 아래 미국이 결정한 것"이라며 “우리는 결코 보호시설인 병원을 의도적으로 공습 목표물로 삼은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앞서 사건 직후 캠벨 사령관은 적군의 공격을 받고 있던 아프간 지상군의 요청에 따라 중무장 폭격기 AC-130 한 대가 폭격을 실시했다며 “당시 탈레반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공습 요청이 들어왔으며 여러 민간인들이 우연히 피격됐다”고 밝혔다. 전폭기 등이 목표물을 선정해 신속히 공격하는 것과 달리 AC-130은 2km 상공을 선회하다가 지상의 연락을 받으면 목표물 근처로 하강해 우군 방향에서 적 목표물을 향해 공격한다. MSF 측과 유엔 등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전쟁범죄'로까지 규정하며 엄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국제사회 ‘전쟁범죄’ 규정
한편 캠벨 사령관은 청문회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2016년 이후에도 최대 미군 7000명의 아프간 잔류가 필요하다는 건의를 공식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아프간을 침공해 13년 만인 지난해 종전을 선언했으며, 현재 아프간 안정을 위한 지원군 9800명이 남아 있다. 당초 이 병력을 5500명으로 줄이려 했으나,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안보 불안을 이유로 올해 초 철군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해옴에 따라 연말까지 9800명을 그대로 잔류시키기로 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군 계획 철회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은 미군이 예정대로 철군하면 수니파 극우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해 아프간이 ‘제2의 이라크'가 될 수 있다며 완전 철군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중부유럽연합부대(AFCENT) 예하 연합군 공군 구성군사령부(CFACC)의 공군력 통계 등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5년 6월말까지 연합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아프간 민간인은 1700명이 넘는다. 게다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전투기에서 발사된 무기 한 발 당 민간인 사망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군사작전 과정에서 애꿎은 민간인 사망을 줄일 수 있도록 정밀 폭격 기법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미군은 이번 MSF 병원 오폭 사건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묘사했다. 이 말은 적군을 상대로 작전을 펼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민간인 피해를 가리키는 군사용어다. 한편 아프간 국방부는 “무장 테러범들이 해당 병원을 아프간 군인과 민간인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MSF 측은 “탈레반 요원들이 있다는 이유로 180명이 넘는 의료진과 환자가 있는 멀쩡한 병원을 아프간 군과 미군이 힘을 합쳐 완전히 파괴해 버리기로 했다는 것은 전쟁범죄를 시인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당초 노력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미군이나 영국군이 ‘부수적 피해’의 일환으로 민간인을 사망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MSF 사건을 맞아 ‘불필요하게 민간인을 사망케 한’ 대표적인 군사작전 5건을 꼽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군 아파치 헬리콥터가 2007년 아프간에서 《로이터》 통신 기자 2명을 포함한 민간인 18명을 사망케 한 사건이다. 어린이 2명도 크게 다쳤다. 이 사건은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현장을 촬영한 화면을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문제의 헬기 조종사 한 명은 어린이가 피격된 것을 발견하고 “저런. 어쩌지”라고 혼잣말을 한 뒤 이어 “젠장, 아이들을 전투에 데려오다니 그들 잘못이지 뭐”라고 태연하게 말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군사작전 5건
2013년 12월 테러범으로 의심 받은 예멘 민간인 12명이 미군의 폭격으로 죽고 15명이 크게 다쳤다. 목격자들은 이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결혼식 축하 행진에 참여한 하객들이라고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밝혔다. HRW는 이 사건이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성토는 미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2011년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에 대한 군사적 공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트리폴리의 주택가에 폭탄 한 발을 잘못 투하했다고 시인했다. 이 폭탄은 2층 가옥에 명중해 어린이 2명을 포함해 민간인 9명이 사망했다. 나토는 무고한 인명 손실에 유감을 표시했으며, 그 실수가 무기체계의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06년 파키스탄의 한 학교에 무인기(드론) 공격을 실시해 6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CIA는 확인된 전투원인 이 학교 교장을 노려 폭격을 감행했는데, 공격 과정에서 죄 없는 학생 수십 명이 덩달아 희생됐다. 가장 어린 학생은 7살이었다.
1999년 나토는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전범 재판 도중 옥중 사
망)로부터 유고슬라비아를 해방하기 위해 78일 간 유고를 공습했다. 나토는 이 과정에서 폭탄 1만4000여 발을 투하했으며, 이 공습으로 민간인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학교 300여 곳과 병원 20곳도 공습을 당했다.
이처럼 군사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부수적 피해’는 꾸준히 발생한다. 부수적 피해는 공습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MSF 피격 사건은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이번 사건은 IS 격퇴를 위해 시리아에서 연합군이 더 많은 공습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까지 공습에 가담한 시리아에서도 아프간에서와 같은 오폭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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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