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포위한 친박의 역할 분담
김무성 포위한 친박의 역할 분담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10-19 10:02
  • 승인 2015.10.19 10:02
  • 호수 1120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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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 김태호·원유철은 흔들기 윤상현·김재원은 ‘박심’ 전파하기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동병상련을 앓고 있다. 문 대표가 당내 ‘반문(反文)연대’의 협공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김 대표도 당내 친박계(親박근혜)의 거센 압박에 직면했다. 특히 친박계는 마치 역할 분담을 한 모양새로 김 대표를 몰아붙이고 있다.

특히 김 대표 공격의 선봉장에 나선 이른바 ‘신박’(新朴) 두 사람이 눈길을 끈다. 김태호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다. 이들은 원래 ‘김무성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정치적인 태생부터 그렇다.

김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에게서 정치를 배웠다. 상도동계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최고위원과 원 원내대표도 상도동에서 처음 정치를 익혔다. 김 최고위원은 서울대 농업교육학과 재학 시절 YS의 오른팔이었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 집에서 입주 과외교사를 했다. YS가 이끌던 민주산악회가 등반을 할 때는 ‘짐꾼’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을 때 YS가 전화를 걸어 “맞제? 니가 짐꾼 태호제?”라고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며 ‘신박’의 길로 들어섰다. 2014년 10월 김 대표가 ‘개헌봇물론’을 얘기하자 “대통령에게 염장을 뿌렸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번복하는 소동을 일으켰다. ‘유승민 파동’ 때는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끈질기게 주장하다가 김 대표와 언쟁을 벌였다.

원 원내대표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때인 1987년 대선이 치러지자 지도교수의 양해를 받아 김영삼 통일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이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연소 경기도의원이 되면서 정식 정치인이 됐다.

원 원내대표는 유승민 파동 직후 계파색이 옅다는 이유로 원내사령탑으로 합의 추대됐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내에서 공천 룰을 둘러싼 충돌이 일어나자 그는 “공천에 김 대표의 리더십이 필요 없다”고 했다. 김 대표 입장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 돼버렸다.

신박 2인방이 앞다퉈 ‘김무성 흔들기’에 나선 셈이다. 그 사이에 원조 친박들은 ‘김무성 대선후보 불가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새누리당 지지율은 40%인데 김무성 대표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지금 여권의 대선 주자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다. (대안은) 영남에도 있고, 충청에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면서 윤 의원과 또 다른 정무특보인 김재원 의원을 수행토록 해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두 정무특보가 당에 전파하는 박심(朴心·박 대통령 의중)이 앞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여당이 주목하고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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