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왕순의 통일과 세상이야기-⑤] 합의통일이냐, 흡수통일이냐
[백왕순의 통일과 세상이야기-⑤] 합의통일이냐, 흡수통일이냐
  • 백왕순 통일의병 사무총장
  • 입력 2015-10-19 09:52
  • 승인 2015.10.19 09:52
  • 호수 1120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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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통일세력 사라지고 통일경쟁시대 도래했
- 北은 통일의 동반자 … 장기적인 지원해야

대한민국 안에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이 사라지고 통일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보수 진영은 통일을 반대하고, 진보 진영은 통일을 찬성한다’는 과거 공식이 깨지고, 합의통일론과 흡수통일론의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주장하며,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드는 등 통일의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대표 격인 조선일보도 ‘통일과 나눔재단’을 만들어 모금캠페인으로 국민들의 통일 열기를 모아가고 있다. 과거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통일’이 보수진영의 이슈로 바뀌고 있다.

여권과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통일은 ‘북한 급변사태와 북한 붕괴’를 기본으로 한 ‘흡수통일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흡수통일론의 시작은 김영삼 정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7월8일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북한에 조문단 파견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김영삼 정부는 북한붕괴를 기정사실화 하고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쪽으로 정책을 결정했다. 만약 북한에 조문단을 보내고 남북대화와 협력의 기조를 유지했더라면 남북관계는 많은 진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흡수통일론이 구체적인 정부의 정책으로 자리잡은 것은 이명박 정부시절부터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합의된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합의통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비핵 개방 3000구상’을 제시했다. 비핵 개방 3000구상은 ‘핵 포기’라는 전제조건을 달아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하는 붕괴정책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합의통일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통일부’는 ‘흡수통일론’의 걸림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폐지’는 흡수통일론과 궤를 같이 했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 붕괴시나리오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2차 핵실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그 동안 주장해오던 ‘북한급변사태론, 북한위기론’으로 대표되는 흡수통일론을 ‘통일준비론’으로 명칭만 바꿔 지속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흡수통일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고 봐야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월10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지 모르니 준비를 더욱 잘 하라”고 당부했다. 또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한이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에서 43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8.25 남북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이틀 후 군 쪽에서 ‘김정은 참수작전’이라는 작계 5015를 발표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은 지난 3월 ROTC 중앙회 강연에서 “통일 과정에는 여러 가지 로드맵이 있으며 비합의통일이나 체제통일에 대한 팀이 우리 조직(통준위)에 있다”고 발언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정 부위원장은 논란이 일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대표적 보수논객인 한반도선진화재단 박세일 고문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 대토론회’에서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하다가 붕괴되면 불가피하게 흡수통일의 길이 열리는데, 이를 우리가 피하면 중국이 흡수통일해갈 것”이라며 “흡수통일이 이제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련의 발언과 사건은 박근혜 정부와 보수진영이 합의통일보다 북한붕괴에 따른 흡수통일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반증이다. 통일준비와 평화통일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보면 북한의 고립과 붕괴에 맞춰져 있다.

보수정부가 흡수통일론을 기본으로 삼는 것은 북한에 대한 한국의 우위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60~70년대에 한국은 근대화와 산업화에 집중하면서 통일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남한 경제는 북한을 추월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국민총소득(GNI) 규모는 북한의 37배가 넘어섰다. 군사력도 이미 한국이 앞서고 있다. 경제·군사적으로 우위에 선 한국은 북한을 제압하는 흡수통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론은 위험한 정책이다. 북한에 대한 고립과 대결정책은 남북 간 긴장고조로 이어지고 자칫 전쟁으로 치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론은 힘에 의한 통일론이며, 이는 대결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보수진영이 바라는 대로 북한이 쉽게 망할 것이냐는 점이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김정일 체제는 유지되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고 뒤를 이은 김정은 체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안보의 동맹관계로 있는 한 북한의 붕괴는 생각하기 어렵다. 심지어 김정은체제가 무너지더라도 북한이라는 국가가 망할 것인가 하는 것도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흡수통일론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교류와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현재 통일의 필요성은 북한보다 한국이 더 절실하다. 분단된 70년 동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지금 성장 동력이 소진되고,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분단된 상태에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새로운 성장 동력과 미래 비전을 통일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이 통일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하되, 통일은 북한이 선택하는 합의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통일의 과정은 먼저 남북한 정상이 만나 통일을 선언하고,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완전한 통일국가의 수립은 20년 혹은 3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먼저 자유로운 왕래와 전면적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평화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통일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과의 통합을 선택했듯이,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통일,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을 통일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장기적인 투자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대결과 전쟁보다 협력과 평화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백왕순 통일의병 사무총장>


 

백왕순 통일의병 사무총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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