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검찰이 이른바 ‘금권선거·매관매직(賣官賣職)’ 의혹 등으로 고발된 조남풍(77·육사 18기)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을 이번주 소환한다. 검찰은 조 회장이 돈을 받고 향군 산하 ‘재향군인회 상조회’ 대표 선임에 개입(배임수재)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 4월에 있었던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당시 조 회장이 대의원 20여명 에게 1인당 500만 원씩 건넨 혐의 등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 회장 비리 단서 포착·자금흐름 추적중
향군상조회 대표 자리를 놓고 돈이 오갔을 가능성은?
향군 비리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사1부(부장검사 조종태)는 지난 12, 13일 이틀에 걸쳐 향군상조회 대표 L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검찰은 L모씨를 상대로 대표 선임 과정과 취임 대가로 돈이 오갔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L모씨는 “정당한 공모절차를 거쳐 임명됐고 조 회장 측에 돈을 건넸다는 노조의 고발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L모씨는 조 회장 당선 이후인 지난 6월 향군상조회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상조업계 3위(선수금 기준)인 향군상조회는 총자산 1900억 원에 매년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내는 향군 산하 핵심 기업이다.
검찰은 또 조 회장이 회장 선거 전 대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려 회장에 당선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돈을 뿌렸다”는 캠프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지만 공직자가가 아니어서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이 어렵다고 보고 ‘업무방해죄’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에 대한 이번 수사는 향군 이사 대표와 노조 등으로 구성된 ‘향군 정상화모임’이 지난 8월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향군 정상화모임이 조 회장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으로 향군에 790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C모 전 유케어사업단장의 측근 A모씨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받았고 대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려 회장에 당선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 C모씨는 2011년 4개 코스닥 상장사의 BW에 지급보장을 해 향군에 막대한 재정위기를 초래한 인물이다. 그런데 조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공개채용 절차도 거치지 않고 C모씨의 측근 A모씨를 경영본부장에 임명했고, A모씨는 경영본부장에 앉자마자 향군과 C모씨 간 소송에서 C모씨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도록 채권금액을 214억 원에서 450억 원으로 부풀린 서류를 제출하려고 시도한 것이 지난 7월 국가보훈처 특별감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또 조 회장이 기존 향군 사업체 대표와 임원을 선거캠프 출신 인사들로 교체하며 퇴직금과 추가 위로금조로 2억3205만 원을 지출했으며, 충주호관광선 등 10개 향군 사업체 가운데 유임이 결정된 3개사 대표들이 조 회장에게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 금품을 상납하고 그 대가로 자리를 보전했다는 진술 등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향군 노조는 조 회장이 향군회장 선거에서 C모씨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았고 그 대가로 A모씨를 경영본부장에 임명하는 등 C모씨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고발장에 첨부된 조 회장 측 선거캠프 내부 문서의 신빙성도 조사하고 있다. 이 문서엔 ‘상조회 사장 사건’ ‘5월 초 5000만 원’ 등의 내용과 또 다른 산하 업체인 ‘충주호’, ‘통일전망대’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렸다. 노조는 이 메모가 조 회장 측이 인사 청탁 건으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밝혔다.
국가보훈처의 솜방망이 감사?
실제로 보훈처 감사 결과 조 회장은 12명의 임직원을 공개 채용 절차를 무시하고 임용했으며, 산하업체 사장을 포함한 13명도 대부분 조 회장의 선거 캠프 인사들을 임명하는 등 ‘보은(報恩) 인사’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리 의혹과 지난 회장 선거가 한데 맞물려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다.
지난 7월 보훈처는 인사규정에 어긋한 임직원 25명의 임용을 취소하고 일부 직원의 징계를 권고하는 선에서 감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조 회장과 향군 회장 선거 비리 의혹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조 회장이 왜 향군의 경영위기를 초래한 C모씨의 측근을 무리하게 경영본부장으로 임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전혀 없었다. 선거 과정에서 모종의 도움을 받았으니 이런 식의 인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게 의혹의 핵심인데 진상규명 없는 ‘솜방망이 감사’가 된 것이다. 조 회장은 감독기관인 보훈처의 시정명령도 거부해 논란이 증폭됐다. 조 회장은 보훈처가 임용 취소 명령을 내린 인사 25명 가운데 21명을 재임용했다. 2명은 사퇴했으나 향군은 나머지 23명을 해임한 다음 21명을 공개채용 절차 등 형식적 요건을 갖춰 다시 임용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로, 향군 안팎에서 부적격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향군은 이들 가운데 나이가 58세 이상으로, 채용 연령 제한 규정에 어긋하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연령 제한이 없는 고위직에 재임용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피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는 조 회장 문제가 주요쟁점이었다. 의원들은 조 회장이 감독기관인 보훈처의 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인 것과 관련, 보훈처의 향후 대책을 집중 질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의원은 “조 회장이 취임한 이후 국가안보의 중요한 한 틀인 향군이 끊임없는 논란과 혼란에 휩싸여 정상적 업무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게 조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에 박 처장은 “현재 상태를 계속할 경우에는 향군을 원활하게 이끌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관련 법에 향군 회장을 직무정지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직무정지’ 용어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이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선거캠프의 안보전략부장을 맡았던 전력에 기대 이런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조 회장이 감독기관까지 무시하며 ‘막가파’ 식 향군 운영에 대한 예비역 군인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향군인회는 어떤 단체?
제대 장병 간 친목 도모와 복지증진, 안보 대응 활동을 목적으로 지난 1952년 창설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예비역 군인 132만 명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안보단체다. 서울 잠실에 41층짜리 회관을 보유하고 10개의 산하기업을 거느리는 등 재벌급 위상을 과시해왔다. 정부의 지원으로 중앙고속과 철도객차 청소용역사업, 군대 불용품 처리 사업, 통일 전망대와 휴게소 사업 등 대부분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통해 연간 4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정부지원금을 별도로 받으면서 각종 사업에 특혜를 받아왔지만 어이없게도 5500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전문성 없는 퇴역 장성들이 회장으로 앉아 있으면서 수백억 원씩의 투자 손실을 본 데다 내부 감시장치가 허술해 직원들의 횡령 비리가 끊이지 않는 부실 경영이 향군을 빚더미에 올려 놓은 것이다.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