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의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중 ‘대선 개표조작’ 발언이 야당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로 불똥이 튀고 있다. 강 의원은 2012년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해 여당으로부터 십중포화를 맞고 있다. 특히 여야 간 ‘국정 교과서 논란’으로 이념 충돌이 한창인 가운데 여당은 강 의원이 ‘통진당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더 세차게 이념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세력화를 꾀하던 통진당 인사들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이 헌법재판소 판결로 강제해산된 이후 내년 총선을 맞이해 물밑에서 조용하게 조직을 정비하던 때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다.
- ‘강동원 발언’ 교과서 투쟁에 기름 부은격
- 통진당 일각 “정치 세력화 보다 성찰과 반성부터… ”

강동원 ‘돌출발언’ 움찔하는 진보진영
강 의원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원인 중 하나는 그가 통합진보당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여야는 국정교과서 채택을 두고 첨예하게 이념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야당은 ‘유시신대로 회귀’라고 공격했고 여당은 ‘주체사상’이 녹아있는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터진 강 의원의 대선 개표조작 발언은 ‘불난집에 기름을 부은격’이 됐다.
여당은 강 의원이 통진당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종북좌파의 발언’으로 몰아갔고 야당까지 싸잡아 공격했다. 또한 종북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통진당으로 불똥이 튀었다. 통진당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종북 좌파 정당’이라는 이유로 강제 해산시켰다.
통진당은 해산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올해 4월 재보궐선거에 참여했지만 저조한 득표를 받으며 민심의 싸늘함을 절감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절치부심하면서 세를 조직하며 재기를 도약하고 있던 참에 터진 강 의원의 발언으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노동자 중심의 비주류 정당들은 정치세력화와 총선 대응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차였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지난 10월8일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진보진영의 2016년 총선대응’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과 노동당,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공안탄압대책위(옛 통합진보당 세력)가 참석했다. 앞 3개 단체는 총선선결과제로 ‘분열한 정치세력의 통합’을 꼽았고 뒤3개 단체는 박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개악에 맞서 총궐기-총파업 투쟁의 성과로 ‘아래로부터 노동정치’를 복원해 나가는 것이 선결과제라며 맞섰다.
특히 옛 통진당 사무총장이었던 장원섭 공안탄압대책위 위원장은 “낡은 질서를 과감히 대체할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당, 인물이 출현하기를 갈망하는 상황”이라며 “당면한 민중총궐기와 총파업이 정치세력화로 연결돼 있다”고 ‘선투쟁 후세력화’를 주장했다. 장 위원장은 또한 “모든 세력의 배제없는 노동계급의 총단결이 절실하다”며 “새누리당 및 민주당과 질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최소 강령으로 총궐기와 총파업에 집중해애 정치세력화 문제도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진당 세력이 진보진영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엿보이는 발언이다.
옛 통진당 인사들 ‘왕따’ 위기의식 노출
토론회가 열리던 날 통진당 출신 전직 국회의원들도 20대 총선 출마 의지를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력화에 나섰음을 알리기도 했다. 옛 통진당의 홍성규 전 대변인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경기 화성갑 지역에 출마할 계획”이라며 “지역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2013년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경기 화성갑에 출마해 새누리당 서청원, 새정치연합 오일용 후보에 맞서 8.2%를 득표했다.
또한 통진당 비례대표 의원이었고 해산 결정과 함께 의원직을 상실한 김재연 전 의원 역시 의정부을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정부을은 친박 홍문종 전 사무총장의 지역구다. 새정치연합에서는 김민철 당협위원장이 지역구를 누비고 있다. 김 전 의원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며 출마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던 이상규 전 의원과 성남 중원에 출마했던 김미희 전 의원 등도 ‘총선 출마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통진당 소속 출신 인사들의 출마를 종용하는 진영에서는 ‘무소속’보다는 총선전 재창당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진당 출신들 중 다음해 총선 전 재창당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논의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 선거전에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부정적인 뜻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로 재창당을 하면 탄압의 대상이 되고 보수 세력과 박근혜 정부가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줄 공산이 높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전 의원은 “그러나 통진당 출신뿐만 아니라 여러 세력이 함께 모여 강령과 명칭이 다르고 인적 구성마저 새롭다면 탄압할 명분과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재창당보다는 진보진영이 모두 포함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강 의원 발언이 터지기전 통진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움직임은 대폭 수정이 요구되고 있다. 통진당 출신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통진당이 정치세력화 시도나 재창당 나아가 내년 총선 출마 여부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의 통진당 출신에 대한 공안 수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10월14일에는 인터넷에 북한을 지지·찬양한 글을 올린 통진당 소속 회원 조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서는 조씨가 2009년 4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본인 인터넷 블로그에 북한 선군정치·핵보유·미사일 개발 등을 옹호하는 내용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성명과 홍보영상, 북한 외무성 성명 등을 올렸다. 조 씨는 지난해 지방선거 때 통진당 소속으로 서울 도봉구청장에 출마했다.
통진당 일각에서는 ‘정치세력화’보다 ‘자아 성찰과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한 신석진.김정엽.이상민.안창민 4인이 최근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라는 책을 펴내 진보진영 내 화제가 됐다.
세대교체 ‘주체’에서 ‘대상’전락 인정해야
이들 4인방은 “진보정치 15년 역사의 좌절은 단지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만은 아니었다”며 “진정한 패배는 그들에게 믿음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국민의 ‘냉담함’”이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통진당 또는 종북좌파 세력)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고백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 4인방은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했던 진보 진영과 저자들까지도 ‘주체’가 자신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현실은 ‘진보’는 교체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술회했다. ‘정치세력화냐, 통합이냐’ 답없는 논쟁을 벌이는 진보진영에 던지는 시의적절한 해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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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