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원대 기업형 카드깡

중국 해커 통해 국내 대부업체 고객 개인정보 빼내
발신번호 조작 장치로 사용한도 등 신용정보 조회
중국인 해커를 고용해 국내 대부업체 고객 개인정보를 빼내 수천 명을 상대로 1000억 원 상당의 카드깡을 한 일당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이렇게 챙긴 수익은 수백억 원에 달했다. 일당은 기업형 카드깡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발신번호 변환조작기까지 개발하는 등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물품을 구입한 뒤 되팔거나 유령업체를 통해 허위매출을 발생시키는 수법으로 카드깡을 해온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이모(40)씨 등은 2007년 9월부터 서울 영등포와 경기 수원 등에서 신용대출카드 사무실을 운영했다. 이 범행에 가담한 공범은 모두 123명에 이른다. 개인 정보(DB)판매업자, 텔레마케팅 사무실을 운영하는 카드깡 업자, 승인업자, 허위가맹점 운영자, 현금융통가맹점 운영자 등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들은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활동한 탓에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발신번호 조작장치까지 개발
이씨 등은 우선 중국 해커에게 국내 대부업체 고객 정보를 1건당 2만 원에 구매했다. 국내 대부업체 고객의 경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힘들고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출 성사율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당이 중국 해커를 통해 입수한 고객 정보는 1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금융대출 경험이 있는 텔레마케터 수십 명을 고용해 본격적으로 카드깡 사무실을 운영했다. 이씨 등은 ‘현금 서비스보다 저렴한 이자’ ‘무담보 간편 대출’ 등의 카드깡을 권유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출자를 모집했다. 이들은 문자 메시지를 보고 상담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에게 카드깡을 권유했다.
이씨 등은 카드깡을 위해 대출의뢰자로부터 신용카드와 서류, 주민등록번호, 카드비밀번호 등을 택배로 넘겨받았다. 이들은 신용카드를 받은 후 발신번호 조작 장치를 통해 사용한도 등 신용정보를 조회했다.
발신번호 조작 장치는 발신번호를 카드 회원의 전화번호로 변환해주는 것으로, 대출 의뢰자의 신용정보를 입수하기 위한 장치였다. 신용카드사에 등록된 회원 전화번호로 신용정보 조회를 할 경우 회원 인증 절차를 간소하게 한다는 사실을 악용하기 위해 발신번호 조작 장치까지 개발한 것이다.
이후 대출 의뢰자 신용카드 최대한도로 물건을 산 뒤 되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이들은 주로 위장가맹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처럼 허위 매출을 발생시키거나 거래관계에 있는 백화점, 대형 마트, 전자제품 대리점 등에서 가전제품을 구입해 되파는 수법으로 카드깡을 해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몰에 유령업체를 등록하고 바지사장을 고용했다”며 “인터넷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하지 않고 배송 한 것처럼 허위 매출을 발생시켰다”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2007년 9월부터 최근까지 이들에게 카드깡 대출을 받은 사람은 7000여 명, 대출금액은 1000억 원 상당에 이른다. 이 중 300억 원이 이씨 등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수천억대 카드깡 추정
일당의 이득금 분배 구조는 이랬다. 대출의뢰자가 100만 원 대출을 신청할 경우 승인 금액은 142만 원이다. 의뢰자가 대출을 의뢰한 금액에 수수료 42%를 합하여 승인요청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42%의 선이자를 떼어가는 형식인 셈. 텔레마케팅 업자 12만 원, DB업자 12만 원, 승인 도매업자 4만 원, 중간 도매업자 4만 원, 위장 판매점 12만 원, 덤핑업자 5만 원 씩 나눠가지는 구조였다. 가전제품 대리점들은 판매 실적 향상을 위해 범행에 가담했다. 한 달 매출 2억 원을 달성해야 본사로부터 판매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드사용 대금을 결제하지 못한 대출 의뢰자의 대부분은 일시적 대납을 받기 위해 고액 수수료를 떠안았다. 하지만 다음달 카드 결제시 더 많은 금액의 카드깡을 의뢰하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른바 돌려막기 식 카드깡 결제로 결국 카드대금을 변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씨 등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인터넷 메신저와 노숙자명의 대포통장 및 휴대폰,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2~3개월 주기로 사무실을 이전하며 경찰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계좌 거래는 3분의 1에 불과했고 대부분 퀵서비스 등을 통해 현금을 주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된 영업 장부를 살펴보니 지난 5월 23일부터 5월 29일까지 카드깡 금액이 12억6000만 원이었다”며 “하루에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사실상 수천억대의 카드깡을 발생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결된 14개 계좌를 파악하는 한편, 은닉자금을 추적하고 있다”며 “현재 확인된 매출만 1000억 원으로 주로 현금 거래됐기 때문에 정확한 카드깡 규모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