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심리적 약점을 파고드는보이스 피싱
범죄는 점점 지능화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특정 수법이 유행하다보면 그 수법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고 이에 대중들은 그 범죄에 대한 저항력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더 이상 그 수법이 ‘먹히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이스 피싱은 가장 지능적인 범죄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칼을 들지 않아도, 상대를 윽박지르지 않아도 ‘알아서’ 돈이 입금되는 고도의 사기수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보이스 피싱’의 사기 수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그런 어설프고 엉뚱한 수법에 당하는 멍청한 사람이 있냐’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경찰의 피해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정 엘리트인 공무원은 물론 대학교수까지 이 ‘엉뚱한 수법’에 걸려들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보이스 피싱은 지식이나 권위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이 가능한 심리적 배경을 집중 분석했다. 말로 완성되는 ‘범죄의 예술’
보이스 피싱 사기 기술은 실로 다양하다. ‘당신의 돈이 위험에 처했으니 지금 바로 금감원이 관리하는 안전한 계좌에 돈을 넣어라’에서부터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수사상 필요하니 계좌번호와 비밀 번호를 알려달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렇게 해서 ATM에서 계좌번호를 따라서 누르게 하고 그 즉시 이체가 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뭔가에 홀린 듯이’ 돈을 입금하게 되고 뒤늦게 정신을 차려봐야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다. 이렇게 입금된 돈은 인출책, 전달책, 환전책으로의 전달 과정을 거치면서 신속하게 운반되고 최종적으로 ‘총책’에게 전달된다. 이들은 첫 전화통화에서부터 집요하게 상대방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 들어 이같은 ‘범죄의 예술’을 완성시켜 낸다고 할 수 있다.
▲ 피해자의 첫 반응을 살펴라
범인들이 노린 것은 바로 피해자의 첫 반응이었다. 일단 수초간 자신들의 신원을 밝히고 ‘입금 문제’를 이야기 한 후 상대방의 첫 번째 반응과 그가 내뱉은 말을 살폈던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놀라서 ‘정말이냐, 그 이유가 뭐냐’는 등 범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에는 계속해서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 보지도 않은 불륜 사실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낸 ‘불륜 보이스 피싱’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협박을 받은 후 ‘무슨 말이냐, 증거가 있냐’, 혹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 직접 회사로 와서 증거를 내놓아봐라’ 등의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경우에는 더 이상 협박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증거도 없거니와 대면해서 협박할 정도까지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지금 돈이 없는데’라든지 잠시 침묵을 한다든지, 또는 두려움이 섞인 반응을 보이면 그 즉시 협박의 강도를 집요하게 높여 나갔다. 그들은 더욱 자신감 있게 증거의 존재를 내세웠고 보다 확실하게 돈을 입금할 것을 압박해 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심리적으로 첫 번째 반응이 피해자의 진실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했다.
▲ 공신력 있는 기관, 믿을 만한 목소리를 이용한다
범인들이 사칭한 기관은 금감원, 검찰 등 우리 사회의 돈과 권력에 있어 최상위에 있는 기관들이었다. 당연히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일부 녹음된 기계음을 활용하기도 했다. 기계음은 대부분 기업이나 기관에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기 집단’인 자신들의 약점을 커버하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게 처음에는 기계음으로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준 다음에는 ‘몇 번을 누르라’고 지시함으로써 상대가 순응하게 만들고 이에 직접 당사자와 통화를 함으로써 구체적인 협박을 계속했다.
특히 이런 기계음은 ‘공식화된 절차’라는 이미지를 줌으로써 ‘사기’라는 것을 희석했다는 점에서 매우 지능적이고 교활한 수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검찰’, ‘금감원’ 등의 신뢰성 있는 기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의적으로 상대의 말을 신뢰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그간 다양했던 ‘청와대 비자금’을 들먹인 금융사기 사건에서도 확인된다고 할 수 있겠다.
거의 대부분 ‘심리전’에 당하는 꼴
▲ 불안감을 최대한 이용한다
사기가 먹힐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심리적 상태는 다름 아닌 피해자의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다. 평온하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서는 판단과 이성의 작용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에 그릇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범인들은 ‘당신의 돈이 위험에 처했다’든지 혹은 ‘이 사실을 공개하면 당신의 직장 생활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상대가 가지고 있는 ‘안전의 욕구’를 파괴하고 불안감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범인들이 피해자와의 대화 시간은 최장 3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들은 어김없이 입금계좌를 받아 적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범인들이 상대에게 최소한의 정보만 줌으로써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이 불안에 처했을 때 가장 많이 원하는 것은 바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하게 미래를 예측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범인들은 이 부분을 최대한 이용했다. 사실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못했겠지만 범인들은 피해자와의 대화를 장시간 끌지 않고 정보를 많이 주지 않음으로써 불안을 유지시켰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 신속하게 행동해 ‘이성’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들의 범행수법은 잠시만 여유를 가지고 되돌아 봐도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설사 입금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급정지 신청을 한다는지해서 언제든 돈을 되찾는 방법을 간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인들의 피해자들의 이러한 행동패턴 역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현금 출금기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입금이 되는 즉시 돈을 찾아 현금을 확보했다. 입금과 출금에 걸리는 시간은 최소화되었고 피해자들이 아무리 빨리 손을 쓴다고 해도 이렇게 짧은 시간의 벽을 뛰어넘기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 ‘불륜’을 이용하라
최근 보이스 피싱에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바로 ‘불륜’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불륜’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통계수치마다 약간씩 다르고 실질적인 표본조사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주는 정확한 통계를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든 ‘불륜이 많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 사실이다. 범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점이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니 바로 이점을 미끼로 한다면 범죄 피해자들도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불륜은 가정 파괴는 물론 심지어 회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협박과 사기의 아이템으로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몇 백만 원의 돈으로 그러한 파괴와 불안을 막을 수 있다면 상당수는 그 돈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의 문제는 나중에 다시 돈을 입금받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는 ‘사기 범죄로 인한 것이니 법적인 명령으로 다시 이체시켜 되돌려 받으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일단 해당 이체가 사기인지 아닌지는 수사를 해봐야 아는 것이지 단지 피해자의 말만 믿고 무조건 국가나 은행이 개인의 계좌에 손을 대기는 힘들다. 소송을 제기해도 그 즉시 돈을 받기는 힘들다. 법적인 절차를 거치려면 최소한 수개월이 지나야 하고, 설사 그것이 사기라는 판명이 났다고 하더라도 이미 돈은 범인들에 의해 ‘공중분해’되어 없어졌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피해를 당한 피해자만 안타깝게 당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보이싱 피싱으로 의심되는 일체의 전화에 대해서는 아예 응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내놓는 최선의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석 헤이맨라이프 기자] (www.heyman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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