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연예기획사 대표, “돈 부터 내놔, 데뷔 시켜 줄 테니까”
역삼동 연예기획사 대표, “돈 부터 내놔, 데뷔 시켜 줄 테니까”
  • 이창환 기자
  • 입력 2011-06-21 13:50
  • 승인 2011.06.21 13:50
  • 호수 894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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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데뷔 무산에 울고, 대부업체 독촉에 또 운 연예인 지망생들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이창환 기자] = 연예기획사 대표 박모(31)씨가 110여 명에게서 17억 원을 뜯어낸 혐의로 경찰에게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가수 데뷔와 방송 출연을 미끼로 지망생들의 돈을 가로챘다. 경찰은 “박씨에게 피해를 당한 지망생들이 빚을 갚기 위해 유흥업소에 취직하거나 자살기도까지 했다”고 밝혔다. 일부 지망생들은 계약금과 가수 데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경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망생들의 신고가 초기에 이뤄지지 않아 박씨의 범행이 뒤늦게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트레이너도 연습실도 없는 연예기획사에 지망생들 눈물 흘려
학생들 돈 빼앗는 것도 모자라, 대부업체에 빚까지 쌓이게 해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수년 간 프랜차이즈 화장품, 커피 사업을 진행해 왔다. 박씨는 각종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모았지만 사업에 실패해 18억 원 상당의 빚을 지게 됐다. 박씨는 채무금을 갚기 위해 연예기획사를 설립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박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홀로 A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캐스트 넷’, ‘액터잡’ 등에 “신인 걸 그룹 멤버와 연기자를 모집하니 참여해 보라”는 공고를 올렸다. 공고를 보고 찾아온 연예인 지망생들은 두 달 만에 수십 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박씨는 1차, 2차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나서 지망생들을 모두 합격 시켰다.

지망생들을 합격 시키자마자 박씨는 곧바로 계약조건을 제시했다. 박씨는 ‘디폴트 계약’이라는 계약조건을 만들어 지원자들에게 강요했다. 박씨가 만든 디폴트 계약은 임의 탈퇴를 방지하기 위한 보증금 납부가 조건에 붙어있었다. 정상적인 연예기획사는 이런 조건이 없다. 박씨는 지망생들에게 “디폴트 계약은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내가 처음이다. 원금은 6개월이 지나거나 방송에 데뷔하면 돌려준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나 친구에게 이 사실을 누설하면 계약취소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찰은 박씨가 대형연예기획사의 전속 계약에서 착안해 디폴트 계약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대형연예기획사들은 연습생들의 임의 탈퇴를 막기 위해 전속 계약으로 연습생을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박씨의 보증금 납부 조건은 지망생들의 보증금을 가로채기 위한 수법”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수시로 발생


박씨를 찾아온 지망생들은 오랫동안 연예인을 지망했거나 대형연예기획사 오디션에 수차례 떨어진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들은 “가능성이 있다”, “빠르면 1, 2달 만에 데뷔시켜 주겠다”는 박씨의 말을 믿고 500만 원~3000만 원의 보증금을 건넸다. 지망생들은 박씨의 지시대로 학자금 대출을 이용해 보증금을 마련했고 대부업체 등을 통해 최대한도까지 대출받았다. 보증금이 순차적으로 쌓이자 박씨는 기획사에 그럴듯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일부 지망생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또 박씨는 과거 알던 B씨를 홍보이사로 임명해 지망생들의 방송출연 계약 업무를 맡겼다. 하지만 방송사와 관계가 없던 B씨는 연기자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했던 C씨를 고용해 예능 프로그램 PD들에게 접근하도록 했다.

방송출연 작업이 진행되자 박씨는 연습생 경험이 있던 지망생 6명에게 6인조 그룹 결성을 제의했다. 그리고 싱글앨범 작업을 착수 했다. 방송사에 꾸준히 드나들었던 C씨는 방송 출연을 성사시켰고 6인조 그룹은 지난 2~3월 3차례 방송 출연을 했다.

조사된 피해자 67명,
피해액 10억 원


박씨는 6인조 그룹을 성공사례로 내세워 지망생들의 보증금을 계속 가로챘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에게 속아 보증금을 지불한 지망생은 120명이나 됐고 보증금도 17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박씨는 대출금 이자 대납과 연예인 데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지망생들의 항의는 점점 늘어났다.

일부 지망생들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박씨는 “신고해봤자 내 뒤에는 로펌이 있다”, “피해 진술한 사람에게는 보증금 반환을 미루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박씨의 협박에 눌린 지망생들은 보증금 반환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20~24세의 지망생들이 25~44 %의 대부업체 연이율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대부업체의 이자는 한 달에 30만 원~100만 원에 달했다. 때문에 일부 지망생들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유흥업소 취업을 결심하고 휴학을 선택했다. 자녀들의 고통을 지켜보던 지망생의 부모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중환자실에 실려 가는 사건도 있었다. 심지어 또 다른 지망생은 자살까지 기도했다.

결국 지망생들은 지난 4월 집단 항의를 단행했지만 박씨는 ‘해지 계약서’만을 제시한 채 잠적해 버렸다.
박씨의 연예기획사에 있던 지망생에게서 사건 정황을 접한 경찰은 곧바로 행적을 파악해 박씨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는 범행 동기와 다르게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기획사와 지망생을 위해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법원의 불구속 입건 판결에 대해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구속 수사를 통한 추궁으로 피해 금액을 상당 수 회수해야 하는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박씨가 변호사를 고용해 집행유예 판결을 유도하거나 범죄 수익금을 빼돌리고 있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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