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구걸’ 아시나요
‘황제 구걸’ 아시나요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5-10-12 13:50
  • 승인 2015.10.12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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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게 문화 즐기고 고급 외제차 굴리는 ‘부자’도 있어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요즘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도시의 거리나 전철 계단에서 거지를 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추우나 더우나 또는 비가 오거나 거센 바람이 불어도 행인에게 구걸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거지들 중에는 게을러서 아예 직업 갖기를 포기하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신체장애가 있어서 구걸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일할 능력이 없는 노인 또는 어린 아이들은 돌봐줄 가족이 없어 구걸하며 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요지경이다보니 거지들이 일반 서민보다 훨씬 풍요롭게 사는 경우가 있어 함께 행복을 나누기 위해 부족하나마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허탈함을 느끼게 한다. 최근 시각장애인 부부가 구걸로 16억 원을 모았다는 이야기는 일반 서민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했다. 

 
30년 넘게 아내와 '구걸'로 생계를 이어갔던 남편이 거액의 현금을 찾아 자취를 감추고, 아내는 이혼 소송으로 재산의 절반인 8억 원을 쥐게 됐다는 이야기는 시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장판사 권태형)는 시각장애 1급인 아내 A(59)씨가 시각장애 1급인 남편 B(68)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에서 이혼판결을 내리고 재산분할 및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시각장애인 1급인 이들 부부는 1976년 결혼해 43녀의 자녀를 낳고 살았다. 30년이 넘도록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며 16억 원을 모은 이들 부부는 이 돈으로 아파트도 구입하고 자식 7명을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 생활을 이어갔다.
 
이들의 재산이 구걸에 의한 결과물인지 부동산 증식 등 다른 원인에 따른 결과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경제권은 남편이 꽉 쥐고 있어 아내 이름으로 된 재산은 0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돈독이 오른 남편은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구걸을 강요했고, 아내는 자녀들만큼은 구걸에 동원하지 말자고 만류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번번이 자녀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부부 관계는 악화됐고, 폭력까지 이어지면서 결혼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장성해 폭언과 폭력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자 이윽고 남편은 2010년께 시중 은행 4곳에서 현금 125천만 원을 모두 출금해 자취를 감췄다.
 
남편이 거액의 돈을 출금해 사라지자 앞이 깜깜해진 아내는 남편을 찾으려 애썼으나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알 수 없었다.
 
자기 앞으로 된 재산이 아무 것도 없던 아내 A씨는 남편의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오다 결국 지난해 11월 이혼 소송을 냈다.
 
5년 동안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남편 이름으로 된 아파트(72,500만 원)라도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이혼을 결심한 뒤 법원 문을 두드린 것이다.
 
부인은 공시송달(公示送達)'에 의한 방법으로 이혼소송을 진행했다.
 
공시송달은 민사 소송법에서, 당사자의 주거 불명 따위의 사유로 소송에 관한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에 그 서류를 법원 게시판이나 신문에 일정한 기간 동안 게시함으로써 송달한 것과 똑같은 효력을 발생시키는 송달 방법이다. 송달할 서류는 법원 사무관 등이 보관한다.
 
재판부는 재산 취득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부부가 노력해 형성 또는 유지한 공동 재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재산분할 비율을 5050으로 해 79600만 원씩 나누고 남편 B씨는 아내 A씨에게 위자료 3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A씨가 현금으로 된 재산 전부를 출금해 잠적했기 때문에 사실상 집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B씨는 현재 강남에 위치한 아파트만 남편 명의에서 자신의 명의로 옮길 수 있게 됐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에 따르면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소송은 드물지 않다. 부부 일방이 어느 날 재산을 챙긴 뒤 자취를 감추더라도 법원의 이혼소송 등을 통해 재산을 분할하는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판결로 재산분할이 결정되더라도 상대방은 추완 항소'를 통해 다시 재판을 받아 재산분할을 재정리할 수 있다. 판결은 공시송달 시점부터 2주가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
 
민사소송법 제173조는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말미암아 불변기간을 지킬 수 없었던 경우에는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2주 이내에 게을리 한 소송행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법원의 한 판사는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이 결정되더라도 추완 항소라는 구제 수단이 있기 때문에 대응할 방법이 있다"면서 이혼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추완 항소를 통해 다시 재판을 받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쓴다?
 
이 시각장애인 부부 외에도 길거리나 전철에서 구걸하는 거지들 중 집이 몇 채씩 있고 의외로 호화스럽게 생활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서울 성북구 미아동에 사는 C(78)씨는 아내(72)21녀를 둔 가장으로서 젊었을 때 아내와 둘이 길거리에서 구걸해 아이들을 대학공부까지 시키며 살았다.
 
그러다가 국가로부터 버스정류장에 위치한 가판대를 배정받은 이후 로또복권 및 담배 등이 불티나게 팔려 두 채의 아파트를 사고 조그마한 상가건물도 하나 마련했다. 그러나 가판대를 계속 소유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친척집 명의로 했고 이에 따라 세금 및 의료보험료 등도 거의 내지 않으며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상적인 직업을 마다하고 엄마와 함께 가판대에서 번갈아가며 일을 하는데 단골이 많아 한 달 수입이 1000만 원이 넘는다. 월세를 놓은 가게에서도 매달 꼬박꼬박 목돈이 들어온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이들은 외제자동차를 사서 몰고 다니고 의류나 소지품 등은 주로 명품을 구입한다. 대장암을 앓고 있는 노년의 C씨는 소일거리가 없어 심심하다며 다시 지하철 계단에 앉아 구걸을 해 돈맛을 쏠쏠하게 느끼며 살고 있다.
 
광화문 한복판의 유명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 신체장애인 D(40)씨는 아침 출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구걸해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주로 지각을 할 새라 발걸음을 빨리 옮기는 직장인들을 가로막으며 구걸하는 그는 적어도 2000원이라도 받아야 보내주는 악질 거지다. 특히 여성들은 흙이 잔뜩 묻은 옷차림을 한 D씨가 길을 가로막으면 옷에 더러운 것이 묻거나 출근이 늦어질까 두려워 그의 요구대로 2000원이라도 주고 내빼듯이 가곤 하기 때문에 하루에 약 20만 원씩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화문에서 의류업을 하는 E씨는 어느 날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재즈음악회에 갔는데 낯이 많이 익은 남성이 매우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옆자리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어 한참동안 어디서 봤던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E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옆에 앉았던 남성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발길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는 출근길에서 구걸하는 D씨임이 기억났다고 한다.
 
D씨와 같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Y씨는 D씨가 502호에서 사는 외국인 유학생 F양에게 가끔 돈을 주고 밤을 보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어느 날 Y씨가 화제의 외국인 유학생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초인종을 누르자 F양이 빼꼼히 문을 열었다. Y씨는 이때 우연히 문틈으로 소파에 D씨가 누워 발을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소문이 진짜임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H(36)씨와 J(36)씨 등 4명의 거지들은 자동차를 몰고 이곳저곳으로 지방 여행을 다니다가 밤이 되면 2명씩 돌아가며 시각장애인으로 위장한 후 공연을 빙자해 노래를 부르고 구걸하는 각설이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구성진 노래가락으로 시골 아낙네들의 마음을 흔들어 구걸하는 것 같지 않게 구걸을 해 곳곳에서 많은 돈을 쓸어 모으고 있다.
 
낮에는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관광을 하며 최고의 음식을 먹는 등 돈을 물 쓰듯이 쓰고 저녁에는 짙은 화장으로 분장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후 구걸하며 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젊고 잘생긴 H씨는 마음에 드는 아낙네가 나타나면 은근슬쩍 화장을 지우고 접근해 하룻밤을 즐기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사는 부류의 거지도 있지만 하루하루를 근근이 먹고 사는 불쌍한 거지도 많다. 더구나 요즘은 인심이 각박해져 굉장히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으면 쉽게 적선을 해주지 않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임신부인 K(28)씨는 5년 전에 16살 많은 남성과 결혼을 해 슬하에 딸 둘을 낳아 기르고 있었다. 일용직에 종사하던 남편이 6개월 전 사고로 숨짐으로써 살길이 막막해져 구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됐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지하철 계단에서 다소 비싸게 껌을 팔고 있지만 단속이 심한 데다가 사람들이 잘 사가지도 않아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제는 구걸하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는 거지들과, 쉽게 돈을 취하기 위해 동냥질을 하는 거지들을 분간하기 어려워 불우이웃 돕는 방법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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