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진실 파헤친 다큐 산문으로 명성
전쟁의 진실 파헤친 다큐 산문으로 명성
  • 박찬호 기자
  • 입력 2015-10-12 10:34
  • 승인 2015.10.12 10:34
  • 호수 1119
  • 6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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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삶과 작품 세계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저는 제가 보고 듣는 세상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접근하게 해주는 장르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와 고백의 장르를 선택했습니다. 인간도 세상도 너무나 다면화되고 다양해진 오늘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스터리하고 불가해한지 마침내 우리가 깨닫게 된 오늘날, 한 인생의 이야기 혹은 그러한 이야기의 기록은 우리를 현실 가장 가까이로 데려다줍니다.”


그녀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 형식이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책들은 인류와 사상의 역사를 압축해놓은 산문으로 평가되지만, 이것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나는 세상을 목소리와 색깔로 간주합니다. 책마다 대상이 바뀌지만 이야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기 때문이죠. 나는 수천 개의 목소리로 일종의 작은 백과사전, 즉 우리 세대에 대한,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백과사전을 만들었죠. 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들이 믿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죽고 또 어떻게 살인을 했을까요? 또한 얼마나 힘들게 행복을 구했을까요? 결국 행복을 잡았을까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군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벨라루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알렉시예비치는 학창 시절부터 이미 시를 썼고 학교 신문에 기사를 기고했다.

그녀는 1967년에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언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그녀는 공화당과 연합 전체가 주최하는 학술 신문과 학생 신문 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 알렉시예비치는 브레스트에서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며 동시에 지역 학교에서 교사로도 일했다. 당시 그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 선택 사이에서 망설였다. 몇 년 후, 그녀는 문학잡지 『네만』에서 기자로 일하게 됐고, 곧 논픽션 섹션의 장으로 승진했다.

한 인터뷰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고, 나를 고문했고 내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종이 위에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 증거와 문서를 사용하는 장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듣고 보는 방식입니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인 합창, 매일의 삶이 세부사항이 만드는 콜라주이지요.”

1983년,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집필을 끝냈다. 이 책의 원고는 2년 동안 출판사에 남아 있었으나 출간되지 못했다. 그녀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198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벨라루스의 민스크와 모스코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그리고 수년 동안 반복해서 재판을 찍었다. 이 책은 2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이 소설, 작가 자신이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이 작품은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독백, 2차대전의 알려지지 않은 면을 이야기하는 독백들로 이루어졌다.

같은 해, 그녀의 두번째 책 『마지막 증인들: 천진하지 않은 100가지이야기』가 출간되었다. 같은 이유들(평화주의, 이념 기준 부합 실패)로 역시나 출간이 미뤄졌던 책이다. 이 책 또한 수많은 재판을 찍었고, 많은 비평가들이 두 책을 ‘전쟁문학 장르의 발견’이라고 일컬었다. 여자와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전쟁은 감정과 사상의 전혀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1989년, 10년 간 소비에트 사람들에게 감추어졌던 범죄적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책 『아연 소년들』이 출간되었다. 집필 자료를 모으기 위해 알렉시예비치는 4년 동안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쟁 희생자들의 어머니들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퇴역 군인들을 만났다.

1997년에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를 출간했다. 책은 체르노빌 사건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현실, 이미 도래했으나 아직 납득하지 못한 현실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사태를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 전체 인류에 득이 될 만한 지식을 얻었다. 그들은 3차 대전 이후인 것처럼, 핵전쟁 이후인 것처럼 산다.

“우리의 모든 역사를 돌아보면 소비에트 시대건 포스트소비에트 시대건, 거대한 공동묘지와 대량학살의 역사였습니다. 처형된 자들과 희생자들의 영원한 대화지요. 러시아의 저주받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혁명, 강제노동 수용소, 2차대전, 사람들에게 감춰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대제국의 몰락, 거대한 사회주의 지역의 몰락, 유토피아의 땅, 그리고 체르노빌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전.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도전입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여러 국가에서 출간되었다. 미국, 독일, 영국, 스웨덴, 프랑스, 중국, 베트남, 불가리아 등 모두 3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 편의 영화와 연극, 방송극을 위한 대본으로 사용되었으며 다수의 국제 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원고가 21개, 희곡이 3개 있고, 프랑스와 독일, 불가리아에서 상연되었다.
알렉시예비치는 수많은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쿠르트 투홀스키 상’, ‘안드레이 시냐프스키 상’, ‘독립적 러시아 상’, 독일의 ‘최고 정치 서적 상’과 헤르더 상을 받았다.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삶과 작품의 주된 추진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저는 늘 각각의 인간에게 인간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개인 안의 그런 인간성을 내가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제 알렉시예비치는 조국의 권위자들에게 다시 눈총을 받고 있다. 그녀의 가치관과 독립성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훌륭한 지성인들과 함께 국가의 반대파에 속해 있다.

알렉시예비치는 새로운 작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 이야기다. 다양한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그들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죽이고 죽는지에 대한 책을 써온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쓰고 있어요. 사랑은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갑니다.”
chanho227@ilyoseoul.co.kr 

박찬호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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