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치이야기-32]제 3세대 정당정치의 개막
[알쏭달쏭 정치이야기-32]제 3세대 정당정치의 개막
  • 일요서울
  • 입력 2015-10-12 09:58
  • 승인 2015.10.12 09:58
  • 호수 1119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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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군부정권, 2세대 시민혁명 다음세대는…
- 대권·신당·공천 구상 내려놓고 역사적 소명 다해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가까워지자 여당인 새누리당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시끄럽기는 매한가지다. 모두가 내년 총선의 공천 때문이다. 여당이 시끄러운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국회에 미치고 싶어 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신뢰하고 자신을 위한 정치적 역할을 해줄 사람을 여당의 공천을 받게 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시키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욕심에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게 된 김무성 대표가 저항하고 있는 모습이 현재 정부여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시끄러운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같다. 문재인 대표는 다가오는 총선만 잘 극복한다면 자신이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야권의 후보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본선은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오히려 더 쉽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당 내 비주류는 물론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의 권력투쟁도 불사하고 있다. 한편 당내 친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력과 비주류, 당 외부에서 신당을 만들려고 하는 천정배, 박주선, 박준영 등은 문재인으로는 총선승리도 어렵거니와 2017년의 정권교체도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야권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의 피말리는 권력투쟁은 그들만의 싸움에 불과하다. 그들의 싸움의 결과가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큰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미국 소설가의 경구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작은 정치인만이 득세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들에 대해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면을 빌려서 현재의 정치권, 특히 야권에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일본의 55년 체제와 같이 ‘정권교체 없는 민주주의’로 흘러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없는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이며, 아베와 같은 유사 독재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한 가짜 민주주의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절실함 때문이다.

세대이론(Generational Theory)이라는 정치학 이론이 있다. 세대이론은 미국의 정치학자 월터 번햄(Walter. D. Burnham) 등이 미국의 정당정치를 연구하면서 그 유의미성을 발견하여 이론화한 것으로, “25년 내지 30년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어떠한 정당의 지지로 견인한 이유의 유의성이 약해져 정당이 재편성된다.”며, 정당체제의 재편성 이론으로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세대이론을 한국의 정당정치에 적용시켜본다면, 1948년 정부수립 후 이승만 정권과 제2공화국까지의 십 여 년은 정당정치의 과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제1세대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부터 시작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전두환 군사정권에 이르는 27년간의 시기가 제1세대 정당정치이다. 군부우위의 정치 하에서 여당이 정권의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에 안주하던 시기이다. 야당은 정권교체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로지 민주주의만을 부르짖던 시기이다.

정당정치의 제2세대는 1987년부터 시작된다. 군사정권을 연장하려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대통령직선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관철시킨 1987년 6월의 시민혁명을 통해 제2세대 정당정치는 잉태되었다. 시민혁명의 과실을 군인출신의 노태우가 첫 번째로 따 먹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 후 김영삼에 의해 문민정권으로 이양되었고, 김대중에 의해 지역적,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며, 노무현에 의해 권위주의의 청산이 이뤄졌다. 이명박에 의해 여야 간의 정권교체가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는 ‘정권교체 가능한 민주주의’를 완성하였다. 87년 체제 25년의 성과였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박근혜 정권의 탄생은 87년 체제의 연장인지, 제1세대 정당정치로의 회귀인지, 혹은 과도기적 현상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당정치의 시작인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박근혜 정권을 정당정치의 측면에서 규정하는 것은 다가오는 2017년의 대선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야권은 다가오는 2017년 대선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제2세대 정당정치인 87년 체제는 권력의 교체를 의미하는 소극적 정권교체는 이뤄졌으나, 체제의 개편을 의미하는 적극적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민주정부 10년의 집권도 능동적으로 이루어 낸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야권은 2017년 대선을 통해 이뤄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야권을 수동적 정권교체 세력에서 능동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수권세력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산업화 잔재세력(이명박, 박근혜)을 끝으로 전후세대로의 세대교체도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이뤄질 때 비로소 일본과 같이 보수우위의 정당체제를 유지하려는 여권에 맞서 정권교체 가능한 정당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제3세대 정당정치의 막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야권 상황을 보면 어떤가? 2017년의 정권교체는 이미 그들에게는 모두 남의 이야기이다. 오로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는 것, 그러기 위해 당내에서 권력투쟁을 일삼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는 것이 그들의 전부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정당정치의 태동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무모함과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주변에서는 백가쟁명식 권력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주류는 닥치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고, 비주류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지역 유권자를 볼모로 공천게임을 하고 있으며, 게임에 승리한 사람은 다른 동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아직 살아남지 못한 자는 더더욱 하이에나의 근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공천에 조금은 여유로운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정권교체, 수권정당이라는 대의는 없어졌고, 오로지 공천에 올인하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신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4.29 재보선의 호남민심을 등에 업고 정계 개편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천정배는 ‘한국정치의 재구성’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박주선과 박준영은 무엇을 하려는지조차 서울에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도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앞서 얘기했지만 이제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 중요하다. 그러나 총선만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 다르게 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 야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백가쟁명의 야권재편 이야기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2017년의 정권교체를 통해 제3세대 정당정치의 출현을 염두에 둔 구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의 자기희생과 역사적 소명에 충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권구상도 공천권도 신당구상도 잠시 내려놓고 야권에 가장 절실한 역사적 소명이 무엇인지 돌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행동한다면 야권의 재구상에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필 전북대 겸임교수>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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