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퍼포먼스] 왜 법원에 나타날 때 아프나요?
[휠체어 퍼포먼스] 왜 법원에 나타날 때 아프나요?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10-12 09:41
  • 승인 2015.10.12 09:41
  • 호수 1119
  • 3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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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정치인과 기업총수는 왜 법원 갈때 아프나요”라는 말이 또 등장했다. 포스코 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 때문이다. 그는 6일 자정을 넘겨 12시간 넘게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와 기자들 앞에 섰다.

장시간 조사로 인해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 전 의원은 국민에게 한마디를 해달라는 취재진에게 “여러분 수고하십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대검 청사를 떠났다. 앞서 오전 10시 20분께 검찰청 입구에 들어설 때의 모습보다 더 힘든 모습이었다. 오전에는 수행비서에 기대어 입장했다.  그 모습은 80대를 넘긴 노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 받을 당시 모습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부축받고 들어올 때와 조사받는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시종일관 꼿꼿하게 조사를 받았고 매우 정정한 목소리였다는 것.

때문에 이날 행보를 두고 ‘이 전 의원의 두 얼굴’로 호사가들 사이에서 주목 받게 됐다. 특히 유사한 일이 과거에도 발생한 바 있어 이 전 의원의 출두모습에 진정성을 의심하는 호사가도 등장했다. 

한 호사가는 “몇 해 전만 해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호통을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검찰 출두날 부축을 받는 모습은 조금 의아스럽다”며 “건강상태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이 피의자가 조사받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까지 설명한 것이 이례적이라 건강이상설에 대한 의심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는 고위관료나 총수들이 유독 검찰 조사를 받는 날 아픈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휠체어 포퍼먼스로 뉴스화면에 비쳐지면서 진정성을 의심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이 더욱 힘을 얻는다.
‘휠체어 출두’의 원조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그는 1997년 한보 비리 사건 당시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와 링거 주삿바늘을 꽂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병든 불쌍한 노인같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당시 그의 나이는 74세 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04년 대북송금사건 결심공판 때 마스크와 휠체어를 탔고,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휠체어를 타고 흰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법정에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도 2004년 130억 원대 괴자금을 사용한 의혹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낡은 콩코드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 동정심을 자극했다.

이외에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이호진 태광산업 전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이렇다 보니 회장을 영어로 chairman이라고 쓰는데 이렇게 쓰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바로 횡령이나, 비자금 따위로 수사를 받으면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붙여진 영문이라는 것이다.

무얼 노리나

그렇다면 고위관료나 재계 인사들이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건강악화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호사가는 “피의자나 피고인들이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스처”라고 말한다. 이른바 ‘떼법(군중심리)’에 호소하거나 모성애를 자극해 사법처리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계산된 행위라는 것이다.

검찰도 과거 ‘재벌 오너와 휠체어’라는 제목의 외신 기사를 기자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간이침대 출석이 연출이라는 점을 비판 바 있다.

외신도 국내 고위관료 및 기업인의 휠체어 퍼포먼스를 비판한 바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7년 9월 13일자, ‘휠체어 타는 한국 재벌 회장들’-FT, 병 핑계로 위기 모면 행태 비아냥’제하 기사에서 처벌받을 상황에 놓이면 병을 핑계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한국 재벌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대기업 회장들이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뒤 잇달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한국 사회 특유의 풍경을 꼬집은 것이다. FT는 “한국 법원은 기업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회사를 계속 경영하도록 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믿는 것 같다”며 “점잖게 행동하는 기업인,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다루는 사법제도가 오히려 더 국익에 부합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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