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VIP(대통령)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이 나온다. 20평 남짓(약 66㎡)의 공간 엔 호피 무늬 소파와 화장실이 있었다. 지하벙커의 역사를 담은 사진자료들이 벽면에 가득했다. 계단 왼편엔 180평(약 595㎡)의 수행원 대기실이 있다. 소파 등 일체의 가구는 없이, 화장실과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행원 대기실 모서리엔 신행금융투자 화단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데, 시 관계자는 “아마 대피 통로였던 것 같은데, 현재는 화단으로 막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40년 만에 여의도 지하벙커를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앞서 지난 1일 서울시는 벙커를 취재진들에게 선공개한 뒤, 사이트 신청자에 한해 시민들도 벙커를 둘러보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공사가 한창이던 2005년, 서울시가 이 지하벙커를 처음 발견했다. 하지만 소관부처와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는 등 지하벙커를 만든 주체와 장소, 이유는 아직까지 불분명한 상태다. 1976년 11월 항공사진에 벙커지역 공사 흔적이 있고 이듬해 11월 벙커 출입구가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에 벙커를 만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특히 1977년 국군의 날 행사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벙커 위치가 일치한다. 이는 벙커가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 시설로 사용됐을 것이란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이번 지하벙커 공개로 이와 유사한 전국에 있는 벙커·대피시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론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여의도 지하 비밀 벙커와 유사한 곳이 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서울시 신청사가 여의도 벙커 못지않은 1등급 대피소라고 지목하고 있다. 신청사는 비밀벙커는 아니지만, 핵공격을 피할 수 있는 등 전쟁 발발 시 대피할 수 있는 최고의 시설이라는 평이다. 이 시설은 지휘통제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경기도 양주시청, 성남시청 등 전국 15곳에 1등급 대피소가 있다고 알려진 바 있다.
한편 서울시는 2005년 지하 벙커 발견 당시 버스 환승객 편의시설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수익성 등 여러 문제로 폐쇄했다. 2013년에는 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실질적인 관리나 활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진 및 일반 시민 공개에 앞서 현재 서울시는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