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선배들, 허세에 죽고 사는 학교 후배들에게 덜미 잡혀
살인자 선배들, 허세에 죽고 사는 학교 후배들에게 덜미 잡혀
  • 이창환 기자
  • 입력 2011-05-30 17:06
  • 승인 2011.05.30 17:06
  • 호수 891
  • 1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살인의 추억’
[이창환 기자]= 중학생 때 한 동네에 살던 정신지체 장애인을 무참히 살해한 일당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박모(21)씨 등 3명은 2006년 정신지체 장애 3급 김모(61)씨를 1시간 동안 구타해 숨지게 했다. 재판부는 “마땅한 동기도 없이 정신지체 노약자를 살해해 사체를 숨겼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어린나이 때문에 수년간 경찰의 수사 선상에서 배제됐던 이들은 지난해 실시한 경찰의 ‘중요미제사건’ 재수사로 덜미가 잡혔다. 박씨는 자신의 범행을 주변 이들에게 자랑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김씨는 2006년 3월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의 한 야산에 암매장돼 있다가 같은 해 4월 야산 부근을 운동하던 한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목격자는 진술에서 “날씨가 쌀쌀해 땅이 딱딱했는데 사람의 발가락이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망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것으로 밝혀졌고 온몸에는 구타의 흔적이 있었다.

당시 포천 경찰서는 우발적 살인과 원한관계 등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범인은 오리무중 이었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숨진 김씨가 장애인이란 사실은 수사에 혼선을 가져왔다. 정신지체 장애 3급 이었던 김씨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했다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김씨의 시신이 발견된 일대에 거주하는 다수의 성인 남성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탐문 수사를 벌였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초 까지만 해도 재수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해 2월 경찰은 미제 사건으로 남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에 이르렀고, 수사 범위를 10대 이상 청소년으로 확대했다. 경찰은 10대 범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김씨 또한 청소년들에게 살해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김씨가 거주했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A 고등학교를 탐문 수사했다.


학교 후배들의 생생한 증언

경찰은 A 고등학교 학생들을 통해 피해자 김씨에 대한 정보와 주변인물 관계를 조사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의 결정적 진술을 토대로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학생이 다른 이들에게 “너 사람 죽여본 적 있어? 난 죽여 봤다”는 소리를 자주 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지어낸 거짓말 치고는 묘사가 상세했다. 경찰은 그 학생을 찾아가 “누구에게 이 같은 말을 들었냐”고 캐물었고, 이 같은 거짓말을 하는 학생들을 역으로 추적해 나갔다.

그리고 경찰은 이 학교에 재학 중인 B군을 주목했다. 경찰의 물음에 B군은 “학교 선배 박씨로부터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죽일 때의 상황과 느낌이 생생해 진짜 같았다”고 말했다. B군은 박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내 주변 학생들에게 전했고, 그 중 몇몇 학생은 자신이 살인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다녔다.

경찰은 학교 졸업 후 무직자로 지내던 박씨를 찾아가 B군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경찰의 집중 추궁에 박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박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공범 이씨와 김씨는 당시 육군에 입대해 각각 일병과 이병 계급을 달고 군복무 중이었다.

이들은 김씨를 살해한 이유를 “어린 시절의 보복이었다”고 했다. 김씨가 자신들에게 줄곧 공포심을 안겼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의 비겁한 변명

이들과 숨진 김씨는 포천시 창수면 소재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김씨의 인상이 웃는 상이라며 ‘실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하지만 김씨는 표정과 어울리지 않게 꽤나 건장한 체격을 소유하고 있었고, 아이들에게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김씨가 이유 없이 아이들을 따라다니거나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박씨 등은 “김씨 때문에 울었던 기억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가 누군가를 직접 폭행하거나 괴롭혔던 적은 없었다.

박씨 등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김씨가 점점 만만하게 보였다. 이들 3명은 역으로 김씨를 겁주거나 놀렸다.

2006년 3월 이들은 동네 마트를 거닐다가 정류장에 있던 김씨를 발견했다. 이에 박씨는 다른 두 사람에게 “김씨를 야산으로 끌고가 때리자”고 제안했다. 과거에 재미삼아 자신들을 겁줬던 피해자 김씨가 괘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 등은 피해자 김씨를 정류장에서 500M 떨어진 인근 야산으로 데려가 주먹과 발로 온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보통 사람들처럼 잘못을 빌거나 아픔을 호소하지 않았다. 김씨의 반응 때문에 구타는 1시간 이상 이어졌고 맞으면서 계속 일어나고 도망가려 했던 김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김씨가 숨지자 박씨 등 3명은 다음날 오전 2시께 호미와 모종삽을 들고 범행 장소를 다시 찾아가 사체를 야산 밑 인도에 암매장했다. 이후 4년 8개월 동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오다 지난해 11월 경찰의 재수사에 덜미를 잡혔다.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