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없는 ‘계약 동거’가 판치는 세상…“성관계는 기본”
통상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남녀가 한 ‘방(房)’을 쓰면서 같이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혼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결혼을 통하지 않은 동거가 심심찮게 우리 사회에 나돌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기 전 ‘맛보기’ 형태로 진행되는 젊은이들의 동거 문화.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동거 문화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는 실정. 오히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동거는 사귀지 않는 남녀까지 한 방에 몰아넣고 있다.“생활비는 제가 전액 부담합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외모 되는 분만 연락주세요, 강남구 삼성동 풀 옵션 원룸입니다. 월세, 관리비 등 모든 비용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체격 좋으신 분은 사양합니다. 일식, 양식, 한식 다 잘합니다. 월세는 당연히 제가 낼 거구요. 관리비만 내주시면 됩니다. 단, 얼굴 예쁘시면 공짜입니다.”
동거 카페 게시판 중 ‘여우 룸메 찾기’에 올라와 있는 글들이다.
이 카페는 겉으론 건전한 동거문화의 정착을 표방하고 있지만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조건만남을 알선해 주는 사이트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동거 파트너를 찾는 남성들은 성관계 갖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회원들이 상당수. 가령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합니다. 얼굴과 몸매에 자신 있는 여성분만 연락 주십시오’와 같은 식이다. 이러한 생각은 여성회원도 마찬가지다. ‘밥,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은 물론, 만족스런 섹스파트너가 되겠다’며 자청하고 나선 여성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동거녀 구하기는 ‘누워서 떡먹기’
지난 5월 15일 동거 알선 사이트인 동거카페를 통해 한 남성 회원과 접촉할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P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만난 김종현(35)씨는 “사이트에 가입한 지는 한 3, 4년 됐다”며 “만난 김에 집이나 보고 가라”고 말했다. 그는 강남구 삼성동 풀 옵션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기자가 놀란 눈을 하고 집 안을 둘러보고 있으니 김씨는 “30대 중반으로 유통 일을 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덧붙이며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3년 전 친구의 소개로 동거카페를 알게 된 김씨. 그는 “불과 2, 3년 전만해도 동거 붐이 불어서 동거녀 구하기가 수월했다”며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글을 올려봤는데 한 달에 50, 60명은 방을 보러 온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동거 알선 사이트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드물다. 다만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조건만남 형식일 뿐. 그는 “서로 조건만 맞는다면 만남과 동거까지의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요즘은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나 가출청소년들이 많다”며 자신이 겪었던 황당한 일에 대해 고백했다.
‘계약 동거’, ‘가출 청소년’의 일탈 장소로 변질
김씨는 “며칠 전 동거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어떤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며 “전화통화에선 나이가 20대 초반이라고 했는데, 만나보니 중학교 2학년 가출소녀였다”고 어이없어 했다. 방을 보러온 소녀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것을 직감한 김씨는 “내 나이가 너보단 곱은 더 먹었다. 어리다곤 해도 여자가 옆에 누워있는데 가만 놔둘 것 같으냐”며 “집까지 데려다 줄 테니 얌전히 집에 들어가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이 소녀는 “당연히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그 정도쯤이야 당연한 것 아니에요”라며 “낼 모레 짐 싸서 들어올 테니 그리 아세요”라고 당차게 대꾸했다고 전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김씨는 “요즘 아이들 성에 대해 문란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경찰에 넘기려다가 귀찮아서 돈 몇 푼 쥐어주고 겨우 내쫓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야말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이한 문화가 요즘 세대들에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신세대 상당수가 인터넷을 통해 동거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게 현실. 이처럼 동거자를 찾아 헤매는 신세대의 의식은 즉흥적 감정을 쫓는 성 개방 풍조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동거알선사이트인 ‘동거’카페는 회원 수만도 3만1000여 명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가운데 ‘계약 동거’ 문화는 제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이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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