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내 살해 죄 왜 뒤집어쓰려 했나
[최은서 기자]= 아내가 돌보던 영아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남편이 재판 중 아내의 죄를 대신하려 거짓 자백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정에서 남편이 “아내가 교도소에 갈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없어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으면서 영아를 살해한 진범이 아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게 됐다.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보모 일을 시작했다 영아가 밤새 울자 짜증이 치솟아 수차례 발로 밟아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단지 운다는 이유로 불과 생후 8개월인 영아를 살해한 비정한 아내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남편이 아내의 죄를 뒤집어쓰려 거짓자백까지 감행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모(27·여)씨는 2007년 11월께 남편 오모(38)씨와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정씨는 말수가 적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남편이 늘 불만이었다. 남편의 퇴근 시간이 늘 늦는데다 자신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자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댁과의 갈등도 극심해 급기야 정씨는 남편에게 이혼 요구를 하기도 했다.
산후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며 힘든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정씨는 지난 2008년 7월께 아들을 낳았다. 정씨는 출산 후 산후우울증에 시달린 데다 산후조리를 전혀 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됐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보살필 새도 없이 보모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남편의 벌이가 변변치 않아 남편 월급으로는 가정 살림을 꾸려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일주일에 영아 한명 당 보육료 20만 원을 받고 손모(당시 생후 8개월)군 등 2명을 돌봤다.
정씨는 자신의 집에서 아들까지 모두 3명의 아기들을 돌봤는데, 3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돌보는 것이 힘에 부쳤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들을 돌보다 보니 히스테리도 늘어만 갔다.
이 와중에 손군이 자주 칭얼거리고, 안아달라고 보채는데다 이유식을 잘 먹지 않자 정씨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평소 정씨는 보챈다는 이유로 정군의 엉덩이와 등, 옆구리 등을 손바닥으로 수차례 때렸다.
그러던 중 2009년 7월 24일 정씨는 계속되는 가정불화와 보모 일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친구와 통화를 했다. 2시간 뒤인 5시20분께 정씨는 오군을 안고 안방으로 들어와 “오군이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며 자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놀란 남편은 정씨에게 119에 신고를 하라고 한 후 오군에게 인공호흡과 흉부압박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오군은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정씨가 오군을 맡아서 돌본지 불과 10일도 채 되지 않아 오군이 숨지고 만 것이다.
“정신 없어 거짓 자백 했다” 털어놔
오군이 숨진 나흘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갈비뼈다발골절과 장파열 등에 따른 타살이 의심된다”는 부검결과가 나왔다.
경찰이 조사 중 남편에게 부검 결과를 알려주며 “아내 정씨가 오군을 폭행해 오군이 사망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했다. 남편은 “그럴 리 없다”고 답했지만 남편의 머릿속에는 사건 당일 거실쪽에서 오군의 울음소리와 함께 ‘퍽퍽퍽’ 뭔가를 때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또 사건 당일 경찰조사를 받은 후 집에 돌아와 정씨가 “내가 때려서 잘못된 것 같다. 나 어떡해”라고 계속 오열하던 모습도 스쳐지나갔다.
결국 남편은 “23일 오후 11시30분께 오군을 발로 밟았다”며 “당시 오군이 울어서 안아주었는데 울음을 그쳐 안심하고 눕혀서 재운 후 방을 나왔다. 오군이 몇 시간이 지나 다시 새벽에 울기 시작했다”고 거짓 자백했다. 아내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만 것이다. 이에 경찰은 남편 오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후 경찰조사에서 남편은 자신이 오군을 때리거나 발로 밟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남편은 “오군의 부검결과를 듣고 너무 놀랐고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었다”며 “오군의 머리 한쪽이 부어올라 있어 그것 때문에 죽은 줄 알았는데 머리가 아니라 배가 잘못돼 죽었다니까 집사람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한 것. 하지만 남편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 오군을 2회 밟았다고 자백했고, 현장검증에서도 범행을 재현했다.
오군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남편은 또다시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법정에서 남편은 “돌이 갓 지난 아들을 키우는 아내가 교도소에 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막막하고 정신이 없어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사망시간 진술 불일치에 의문 가져
남편의 진술 번복에 검찰은 곧장 재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기록을 재차 검토한 검찰은 오군의 사망시간에 의문점을 갖게 됐다. 사망시간에 대한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당시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정씨가 아이가 새벽까지 울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남편 역시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에 오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는 밤 11시 30분께 오군을 발로 밟아 숨지게 했다는 본인의 자백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오군을 부검한 부검의도 “오군의 신체 손상의 정도로 보아 사망 전 수분에서 한 두 시간 이내에 오군에 대한 손상이 가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오군과 같은 신체손상의 경우 교통사고 또는 굉장히 강한 힘으로 일부러 밟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고 밝혔다. 당시 병원으로 이송되던 오군은 맥박이 없기는 하였으나 사후 경직 증상을 보이지 않은 상태였던 사실도 밝혀졌다.
오군이 굉장히 강한 힘으로 밟힌 것이라면, 잠시 울다 잠들어 몇 시간 후에 다시 울기 시작했다는 남편 오씨의 자백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오군은 새벽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고 진범은 정씨로 밝혀졌다.
울음 그치지 않자 생후 8개월 아기 폭행
이후 조사결과 정씨의 범행전모가 들어났다. 사건 당일 오군이 잠을 자지 않고 울어 정씨가 분유를 먹였으나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크게 울었다. 이에 짜증이 치솟은 정씨에게 오군이 기어와 정씨의 다리를 붙잡고 보챘다. 정씨는 과거에도 생후 8개월에 불과한 오군을 ‘너무 많이 울어서 돌보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폭행했었다.
이날도 오군이 귀찮게 굴자 순간적으로 화가 난 정씨는 바닥에 누워있는 오군의 가슴과 복부를 수차례 세게 밟아 숨지게 했다. 정씨는 폭행 이후 오군이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 인공호흡도 시도했으나 반응이 없자 남편을 깨워 119에 신고했다.
결국 정씨는 다시 열린 재판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중형을 선고받게 됐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1부(조해현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오군이 많이 울면서 힘들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오군을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점, 정씨가 오군의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피해 보상을 한 사실이 없는 점, 정씨가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남편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태도를 보이는 점 등을 들어 매우 중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인정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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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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