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거리로켓 발사와 4차 핵실험 강력 시사
미국 압박할 협상 카드로만 간주하면 곤란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4차 핵실험 가능성을 한꺼번에 강력 시사하고 나왔다. 이에 따라 노동당 창건기념일인 오는 10월 10일 전후가 주목된다. 북한 당국은 최근 북한의 위성들이 ‘대지를 박차고 창공 높이 계속 날아오르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며 ‘핵뢰성(핵무기의 천둥소리)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위협적 발언을 쏟아낸것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북한 핵 개발 의혹이 증폭되던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는 남측 송영대 대표(당시 통일원 차관)에게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협박했다. 이후 ‘서울 불바다’는 북한의 상투적 위협 문구가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이라크·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자 북한은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휩쓸어 버리겠다”고 응수했다. 2012년 6월 북한군 총참모부는 북한 비판 기사를 쓴 우리 언론사 7곳에 사과하지 않으면 포격하겠다고 하면서 좌표까지 들먹였다. 북한은 또 남한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협박의 강도를 높여 왔으며 특히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선 후에는 여성차별주의적인 험담까지 서슴지 않았다.
10월 10일 전후 ‘핵뢰성’
많은 관측통은 북한의 이처럼 험한 언설을 허세로 일축하지만, 이를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존 델러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 매체들이 미국과 한국 그리고 가끔 일본을 겨냥해 호전적인 발언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데 그 속에서 어떤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알기란 어렵다면서도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처럼 협박에 이어 실제 사태가 발생했음을 들어 “당시 매우 분명한 경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오래 문제 삼아 왔다. 그런데 근년 들어 북한은 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으로 선제 핵 타격을 부쩍 거론하고 있다. 과거 북한은 “있지도 않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조작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그랬던 북한이 근래에는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해 우리의 탄도 미사일 능력을 사용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위협을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고 싶어 하는 북한의 갈망에서 나온 허세로 본다. 그렇더라도 핵 위협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델러리 교수는 “북한의 위협이 북한을 정책적으로 무시하려는 백악관의 관심을 끄는 데 맞춰지는 경우들이 있다”면서 “평양의 메시지는 ‘너희는 우리를 부술 수 없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우리를 상대해야만 한다’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북한은 내심 미국을 향해 추파를 던지면서도 위협 전술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14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에 즈음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의사를 내비친 데 이어 다음날인 15일에는 핵무기 능력 고도화를 주장하며 제4차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15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 원자력 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로동(노동)계급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각종 핵무기들의 질량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핵 억제력의 신뢰성을 백방으로 담보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에서 련일(연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核雷聲)으로 대답할 만단(萬端·여러 가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력사적인(역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로선(노선)에 따라 우라니움(우라늄) 농축공장을 비롯한 녕변(영변)의 모든 핵시설들과 5㎿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 변경되었으며 재정비되어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고 강조했다. 북한 당국이 영변 핵시설이 실제 재가동되고 있음을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이처럼 4차 핵실험 강행을 시사하고 나서자 중국 관영 매체들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강경한 어조로 북한을 비판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15일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되고 있다고 북한이 밝힌 지 5시간 만인 오후 10시 9분(한국 시간) 인터넷을 통해 “2008년 6월 냉각탑을 파괴하며 핵시설을 폐쇄하겠다고 밝힌 북한이 영변 핵시설이 정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라며 “한국 미국 일본 등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를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화통신은 내부 연구소 연구원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같이 전했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가 북한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北核 능력 이견
북한이 위협하는 장거리 로켓(미사일)과 핵무기는 무기 차원에서 한 묶음이다. 충분한 사정(射程)을 갖춘 미사일에 충분히 소량화된 핵탄두를 얹으면 그것이 바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2012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잔해를 분석한 결과 나온 해당 미사일의 사정은 1만 ㎞가 넘는다. 따라서 미국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정확한 타격을 보장하는 미사일의 유도시스템이나 탄도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하강하는 데 필수적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여기에다 핵무기 소량화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2012년 12월의 북한 미사일 발사에 즈음해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북한이 미국 해안에 도달할 수 있는 뭔가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작동하는 핵탄두 장착 ICBM은 최소한 여러 해 뒤의 일”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2013년 4월 외부에 유출된 미국 정보보고서는 북한이 비록 “신뢰도가 낮지만” 핵미사일을 발사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자 미 국방부는 그 보고서를 부인하면서 “북한 정권이 그런 종류의 핵 능력을 전면적으로 시험하고 개발했거나 증명했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능력 제고를 꾸준히 추진할 결의를 보여 왔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은 2009년 2차 핵실험의 2배 규모였다. 북한은 3차 실험 후 “더 경량화되고 소형화되었지만 큰 폭발력을 가진 핵탄두를 터뜨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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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