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안보법안’ 통과 실질적 전쟁 가능하게 돼
- 동아시아-세계평화 日헌법 세계유산등록운동 전개
아베가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베는 지난 19일 토요일 새벽 안보법안으로 이름 붙여진 실질적으로는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일본의 상원격인 참의원에서 통과시키고 말았다. 현행 안보관련 법안 10개의 개정안과 국제평화지원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새로운 법안 1개 등 모두 11개의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물론 지난 7월에는 하원격인 중의원에서도 이 법률안이 모두 통과되었기 때문에 최종적인 법률로 확정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그동안 일본국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다고 해석돼오던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즉, 일본의 군대인 자위대와 연계하여 활동하는 미군 등의 방호나 해외에서 테러 등에 직면한 일본인 구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한반도 등 일본 주변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선박검사활동에도 참가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유엔 결의에 기초하여 활동하는 미군이나 다국적군에 대한 자위대의 후방지원활동도 수시로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이 직접 전쟁의 당사국으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였으나, 일본의 자위대가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근거는 마련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관련하여 해석한다면, 주한미군의 요청으로 자위대가 한반도에 와서 미군을 방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한반도 유사시에 재한일본인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자위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 우리나라가 거절할 수 있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의 질의에,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가진 게 아니고, 한미 양국 대통령의 통수지침에 따른다”며, “우리 대통령이 허락하지 않으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은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민구 국방부장관의 답변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대로 믿는다고 하여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지속적으로 막지 못할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한미동맹, 북한의 군사적 위협, 미국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환경 등을 고려하면, 미국의 요청이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 간 주요사항으로 별도의 논의가 이루어질 모양이다. 우리 국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우리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필자는 일본의 안보법제가 참의원을 통과하는 그 시각 도쿄에 있었다. 올해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의 해로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대학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18일에 학술회의가 있었고, 행사 후에는 뒤풀이를 겸해 늦은 시간까지 한일 양국의 참가자들 사이에 안보법제의 참의원 통과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일본의 참가자들은 비교적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반아베의 편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참의원 통과를 막을 길은 없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또한 아베의 궁극적인 목표는 헌법개정으로 이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일명 평화헌법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일본국헌법. 1946년 11월 3일 공포되었고, 이듬해 5월 3일 시행된 일본의 헌법이다.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덧 그 나이도 만 68세를 넘어섰다. 현대의 주요 성문헌법 국가에서는 가장 오래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본국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헌법 전문에서의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것과 더불어 헌법 제9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교전권 부인과 무력행사를 포기하는 조항 때문이다.
일본국헌법 제2장 제9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①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베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 일본국헌법 제9조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문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일본국헌법이 미군정 시대에 미국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이기 때문에 국가의 자주성을 침해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국가의 자주성에 근거해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아베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한 이후 줄곧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일본 보수세력의 염원이 헌법 제9조의 개정 내지 폐지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68년 동안 일본국헌법이 보수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많은 상처도 입었지만, 그만큼 내성도 생겨 호락호락 일본 보수세력의 바람대로 헌법개정이 이루어질 상황은 아니다. 우선 양원제 국회의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국회의원 2/3의 찬성에 의하여 개정안이 가결되어야하고, 이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유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비로소 헌법이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국회의 의석분포로 보면 현재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여당이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에서 2/3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지만, 공명당은 헌법 제9조의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다른 보수계 정당이 헌법개정에 찬성하고는 있지만 그러면 공명당과 결별해야 한다. 이는 곧 정권붕괴를 의미한다. 아베가 바로 헌법개정에 나서지 않고 안보법제라는 이름으로 우회한 이유이다. 더군다나 국회를 통과한다고 하여도 국민여론은 헌법 제9조의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7월말 일본의 시민단체 9조련(헌법9조-세계에 미래에 연락회) 초청으로 도쿄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안보법제가 중의원을 통과하여 시끄러울 때였다. 아베정권에 대한 반대여론도 50%를 넘었을 때였다. 강연 전날 들렀던 이자카야(선술집)에서 어느 노인과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자신은 60년 안보투쟁 당시에도 국회 앞 데모대에 참가했다고 했다.
그러니 적어도 70세는 넘었을 것이다. 그는 아베는 비겁한 놈이라며 역대 일본 총리 중 최악이라고 했다. 헌법개정을 하고 싶으면 헌법개정안을 가지고 국민에게 신임을 물으면 될 것이지 비겁하게 안보법제로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헌법개정안을 들고 나오면 보기 좋게 부결시켜버릴 것이라고도 했다. 헌법만큼은 지켜내겠다고도 했다. 일본의 대다수 침묵하는 국민들의 본심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강연의 말미에 필자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국헌법은 단지 일본만의 헌법이 아니며, 일본만의 평화를 위한 헌법은 더더욱 아니다. 일본국헌법이 동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에 공헌한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9조련 한국본부를 만들어 일본국헌법을 지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일본국헌법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는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500여명 홀을 꽉 채운 청중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박수로 호응했다. 귀국 후 지인들과 9조련 한국본부 설립을 시작했으며, 첫 번째 작업으로 일본국헌법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길이다. 아베정권에 대해 욕하고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이러한 운동에 동참해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김영필 전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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