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친노 정치의 한계…사법체계 부정
文 친노 정치의 한계…사법체계 부정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9-25 10:32
  • 승인 2015.09.25 10:32
  • 호수 111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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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 포용 不, 비노 이탈 부른 혁신案
▲ photo@ilyoseoul.co.kr

형·동생 관계로 뭉친 그들만의 세계…울타리 정치
한명숙 옹호하며 사법체계 부정…대통령 되면?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의 직급은 매우 단순하다. 단 두 가지 ‘형’과 ‘동생’만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던 참모 A씨가 필자에게 농담 삼아 들려준 말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 직제는 장관급인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1~2급 비서관, 3~5급 행정관, 6급 이하 직원으로 짜여 있었다. 행정관은 보통 ‘국장’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나 참여정부 청와대에선 ‘수석님’ ‘비서관님’ ‘국장님’이란 호칭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형’ ‘동생’으로 부르는 일이 흔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가령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은 공사석을 막론하고 젊은 참모들을 호칭할 때 성도 빼고 “00야”라고 했다. 젊은 참모들에게도 이 수석은 “수석님”이 아니라 “강철이 형”이었다.

그 같은 분위기는 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 함께 투쟁하며 일했던 학생 운동권이나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 대거 청와대 참모로 입성하면서 조성됐다. 끈끈한 동지애와 이념의 동질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청와대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을 ‘왕따’ 시키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참모들 사이에 조성된 동지애는 10여년이 흐른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친노계(친 노무현 계열)의 배타성, 폐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임 기간 동안 국민 편 가르기를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울타리 정치’가 문재인 대표가 이끄는 친노계에도 깊숙이 뿌리내린 셈이다.

최근 문 대표가 친노계의 대모(代母) 격인 한명숙 전 총리를 감싸고 돈 일이 대표적이다. 문 대표는 한 전 총리가 불법선거자금 수수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2년 징역에 추징금 8억8천만 원을 확정판결 받아 구속됐을 때 ‘친노 본색’을 발휘했다. 문 대표는 “법원까지 정치화됐다”고 주장하면서 당직자들에겐 “추징금 모금 등 한 전 총리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청와대 파견공무원 ‘왕따’

이에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대법원 판결까지 불복하는 태도는 국민 정서에 비춰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하며 친노의 ‘온정주의’를 꼬집었다. 하지만 문 대표는 “한 전 총리가 비록 유죄 확정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정말 정치적으로 억울한 사건이었다는 것은 우리 당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문 대표가 대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한 건 제1야당의 수장이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부정한 행위란 비판이 많다. 특히 문 대표는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만큼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사태가 잇따르면 무슨 명분으로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라고 말할지 의아하다는 여론도 있다.

문 대표가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지적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있었다. 선대위 본부장급에는 당내 다양한 계파를 아울렀지만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팀장급 실무진은 온통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를 중심으로 하는 친노 직계들로 짰다.

비서실 부실장 겸 수행단장에는 윤후덕 전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비서실 내 정무행정팀장엔 소문상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메시지팀장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일정기획팀장엔 윤건영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을 기용했다. 수행 1팀장은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수행2팀장은 유송화 전 청와대 행정관이었다. 기획본부 부본부장은 김경협·정호준 의원과 함께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동으로 맡았고, 전략기획실장은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B씨는 “당시 본부장급 이상은 사실상 아무런 실권이 없었다. 선거전략의 각론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참모들이 포진한 실무진에서 다 짰다. 마치 ‘노무현의 귀환’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특히 B씨는 “실무진들은 청와대 참모 시절에도 ‘아마추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들이 선거를 주도했으니 치밀한 전략을 세워 산토끼를 잡기보다는 집토끼, 즉 ‘우리 편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실패해 선거에서 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당 대표로 취임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공식 참모 라인과 별개로 원조 친노인 ‘3철’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이 문 대표를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이른바 ‘비선 실세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만 아니라 제 1야당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3철’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표와 함께 근무했던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현 새정치연합 의원)을 일컫는다. 이들은 문 대표가 정치적 선택의 길에 들어설 때마다 비서실의 공식 참모 라인을 제치고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정호성 부속실 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 ‘문고리 권력 3인방’이라면 문 대표 주변에선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김상곤 위원장과 조국 ·최인호 혁신위원이 꼽힌다.
3인방이 주도한 혁신위는 9월 23일 마지막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사실상의 ‘공천 살생부’를 내놓았다. 특히 문 대표 이전에 당을 이끌었던 이해찬·정세균·문희상·김한길·안철수 의원에게 열세 지역 출마를 요구한 건 압권이었다.

이해찬 의원은 친노의 막후 좌장 격이고 정세균 의원은 범(汎)친노에 해당한다. 하지만 혁신위는 문희상·김한길·안철수 의원 같은 비노계를 견제하기 위해 이 두 사람의 희생을 강요했다. 문재인 대표에게도 부산 출마를 권유했는데, 이는 사전에 문 대표 측과 협의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혁신위가 당내에 문재인 체제를 굳히기 위해 곁가지 친노와 비노 모두의 살신성인을 강권한 셈이다.

3인방이 주도한 혁신안?

‘3인방’ 가운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은 최인호 위원이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부대변인, 국내언론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최근 이해찬 의원의 내년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최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젊은 참모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다음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 C씨가 들려준 일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출입기자들을 초청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때 국내언론비서관이었던 최인호씨가 사회를 맡았다. 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면서 최 비서관을 보더니 ‘내가 처음 부산에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반신반의 하더라. 그런데 최 비서관만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용기를 줬다. 저 자리(비서관급)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고 하더라.”

3인방이 주도한 혁신위는 인적쇄신안을 발표하면서도 친노 본색을 드러냈다. 비노계인 주승용 최고위원에 대한 ‘막말’ 파문으로 징계를 받은 친노계 정청래 최고위원을 윤리심판원의 결정 형식으로 사면했다. 반면에 비노계인 조경태 의원을 콕 집어 ‘해당 행위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당에 요구한다’고 했다. 조 의원은 당 중앙위원회의 혁신안 처리 과정을 비판하면서 “집단적 광기를 봤다”고 일갈했던 인물이다.

이 같은 친노의 ‘울타리 정치’는 비노의 이탈을 불러오고 있다. 박주선 의원이 친노패권 주의를 지적하면서 탈당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미노 탈당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친노 패권주의와 차별화 되는 신당을 만들고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친노의 배타성에 대해 “막연한 선민의식과 근거 없는 우월주의,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귀족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꼬집었다. 또 “자기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적대시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계파를 포용하지 못하는데, 이런 행태는 결국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선 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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