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도 폭력에 찬성한다니, 맞으면서 다닐 수밖에

최근 용인대학교의 선후배간 폭력사건이 시사프로그램의 전파를 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TV속 장면이 선후배간 군기잡기로 보기에는 납득할 수 없게끔 흘러갔기 때문이다. 당시 용인대학교 06학번 학생들은 07학번 후배들에게 가혹행위, 폭언, 구타를 자행했고 이는 08학번 후배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용인대학교는 2008년 후배에 대한 폭력으로 사망사건이 일어난 학교다. 용인대학교 파장이 일자 다른 대학교의 폭력 사건 또한 다시금 조명됐다. 가해자들이 내세운 명분과 피해 학생들의 고통을 따라가봤다.
지난달 7일 용인대 무도학과에서는 또다시 ‘공포의 집합’이 시작됐다. 무도학과 06학번들이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선배를 잘 알아보지 못한 것 등을 이유로 후배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07~11학번들은 오전 11시까지 실내 체력단련실로 모여들었고 도열한 학생들은 100명 이상이었다.
후배들을 집합시킨 06학번 선배들은 “전공 시간에 안 좋은 얘기가 나와 이것(각목)을 받게 됐다”며 “왜 인사를 잘 하지 않느냐”는 말과 함께 가혹행위와 구타를 시작했다. 06학번들의 지적은 11학번을 제외한 07~10학번 모두에게 해당됐고 후배의 실수는 곧 선배의 탓이라는 말 또한 이어졌다.
06학번은 “평소에 잘 안 때리고 군기를 잡지 않다 보니 우리가 욕먹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주 체벌 대상은 1년 후배인 07학번이었다. 07학번들은 앞으로 불려나가 엎드려뻗친 상태로 구타당했고 곧이어 심한 타격소리가 체력 단련실에 울려 퍼졌다. 각목 구타가 진행되는 다른 쪽에서는 손으로 뺨을 때리는 일까지 자행됐다. 구타를 이기지 못한 학생들은 그 학생의 담당 임원이 다시 불려나가 구타당했다. 각목이 부러질 정도로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06학번은 “너희들이 잡을 군기를 왜 우리가 잡게 하느냐”며 폭행을 진행했는데 여자 07학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 07학번들은 심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1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공포의 집합’은 끝나지 않았고 이후 집단 기합으로 넘어갔다.
참고 지내면 만만하게 보여서 안 된다는 훈시를 곁들이면서 머리를 박게 하는 등의 가혹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기합이 한동안 이어지고 나서 06학번은 “07학번은 잘하고 있는데 너희들(08~11학번)때문에 맞았다. 하지만 더 이상 후배들을 때리지 말라”고 지시한 후 자리를 떴다.
선배가 물려주는 전통
07학번들의 08학번을 향한 구타는 곧바로 시작됐다. 07학번은 각목대신 손과 발로 후배들을 다스렸다. 08학번들은 머리를 박은 상태, 엎드려뻗친 상태로 발로 차이거나 따귀를 맞았다. 따로 지목 당한 2명에게는 더 심한 구타가 가해졌다. 눈을 마추쳤는데 인사를 안한 것, 잘못했으면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점이 07학번들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심지어 교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이유를 집어 구타하기도 했다.
07학번들은 “앞으로 너희가 건방지다, 예의 없다, 하는 말이 나오면 알아서 해라”는 말을 끝으로 집합을 끝마쳤다. 이후 후배들은 널 부러진 각목, 목검들을 정리했고 ‘공포의 집합’은 끝났다. 이날 집합은 학과생의 제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인대 학생들은 학과 내 구타를 쉬쉬했다. ‘공포의 집합’에 관한 질문에도 학생들은 “누가 그런 얘기를 하느냐”, “요즘은 인권이니 뭐니 해서 폭력 같은 건 없다”고 부정했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무도학과의 실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A씨는 “일요일 밤만 되면 한 주가 걱정 돼 잠을 설친다”며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시도 때도 없이 기합을 받았다” 고 말했다.
이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B씨는 “하교한 이후나 주말에도 선배들에게 붙들려 기합을 받거나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가 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한 무도계열 학과에서 ‘전통’에 저항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었다. 대신 후배들은 선배들을 피해 군대를 조기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용인대처럼 자세한 정황은 포착되진 않았지만 동국대학교와 광주의 C대학교 역시 대학교 폭력 사건에 휘말렸다.
지난해 12월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3학년 D씨는 유도승단심사 불참을 이유로 2학년 생 14명에게 가혹행위와 폭력을 가했다. D씨는 2학년생들의 머리를 박게 한 뒤 허벅지를 각목으로 10~30대씩 구타했다. 이후 얼차려를 실시했고 버티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
2학년생들은 용인대처럼 매를 맞은 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1학년생들은 맞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고 가혹행위는 3시간 30분이나 이어졌다.
피해 학생들은 “매년 이런 폭행이 1∼2차례씩 반복되고 있다”며 “지난여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C대학교의 경우 학과 회장이 적성검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입생 11명을 구타했다. 말을 듣지 않는 다는 명분으로 강의실로 데려가 야구방망이로 구타한 것이다.
피해학생들은 전치2주의 타박상을 입었다.
사건 터질 때만 눈 가리고 아웅
구설수에 오른 대학교들의 사태 수습은 한결같았다. 가해 학생들에게 중징계를 내리고 피해 학생들의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다시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깊게 자리한 악습을 형식적인 재발방지대책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특히 용인대에 대한 인식은 더 싸늘했다. 용인대가 3년 전 비슷한 일로 대학생 사망사건을 겪었음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3년 전 용인대 무도계열 학과에 입학한 강모씨는 훈련을 받다 의식을 잃어 병원에 후송된 후 사망했다. 병원에 실려 온 강씨 몸에는 곳곳에 선배들의 구타로 생긴 피멍자국이 보였다.
당시 주변 학생들은 “강씨 말고도 선배들의 가혹 행위 때문에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매치기를 심하게 당해 기절하거나 장이 터지고, 거품을 문 이들도 있다”고 증언했다.
때린다고 있지도 않은 권위가 서나
일부 학과 내에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을 알게된 네티즌들은 교수들의 의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용인대 선배들의 “교수님이 시키면 토 달지 말고 그냥 해”, “교수님한테 선생님이라고 한 놈 나와”라는 발언이 당장의 얼차려를 위한 명분만은 아닐 것이란 얘기다.
한 네티즌은 “대학생들이 얼마나 위축되겠냐”면서 “옳고 그름도 따지지 못하고 일방적인 피해를 당할까봐 걱정 된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 역시 “교수 모르게 저런 집합이 수시로 이뤄질 수는 없다”며 “구타로 인해 받는 존경이 무슨 소용”이냐고 비난했다.
이를 입증하듯 경기도 D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는 폭행 피해 학생에게 “폭행은 체대의 전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 학생은 조교의 폭력으로 6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
지난 2월에는 아예 교수가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오다 적발돼 파면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학생들은 “김모 교수가 상습적으로 제자들을 폭행했고 자신이 출연하는 공연 티켓을 1인당 몇 십 만원 어치씩 강매시켰다”고 증언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김 교수의 폭행은 유명했다. 말을 듣지 않거나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을 여지없이 폭행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김 교수에게 맞아 울거나 볼이 부은 학생들이 있었다”면서 “때리는 것도 모자라 여학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다니거나 무릎을 발로 찍어 누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졸업생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졸업 후 인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수십 차례 뺨을 때렸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김 교수가 10년 넘게 끊임없이 학생들의 뺨을 때리고 특정 부위 구타하는 등 상습적으로 제자들을 폭행했다는 진술이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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