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경찰서 발칵 뒤집은 철없는 엄마의 거짓말
[최은서 기자] 30대 여성이 아들과 함께 괴한에게 납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비상대기까지 했지만 결국 자작극으로 결론 났다. 이 납치 자작극으로 서울·경기지방경찰청 산하 72개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 인원이 비상 대기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모(33·여)씨는 사채 빚을 갚고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스스로 범행을 꾸몄으나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거짓말이 들통 났다. 이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별다른 처벌 없이 귀가 조치됐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경찰들을 허탈하게 만든 30대 주부의 자작극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난 4월 26일 오후 6시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주부 이씨는 아들 신모(4)군과 병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오후 6시54분께 이씨의 남편 심모(37)씨는 한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씨가 휴대전화로 남편에게 ‘나와 아들이 납치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깜짝 놀란 남편은 이씨에게 수차례 전화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급해진 남편은 일산경찰서에 “아내와 아들이 납치됐다”며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가 안 된다”고 급박한 목소리로 신고했다.
4시간 만에 자작극 발각
납치 신고가 접수된 뒤 서울과 경기 일대 경찰서와 지구대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은 곧바로 이씨가 타고 나간 은색 신형 그랜저 차량을 수배했다.
오후 9시30분께 다시 남편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1억5000만 원을 내일 3시까지 몸값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씨가 이날 오후 7시40분께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씨의 휴대전화 위치정보가 서울 을지로 입구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발신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경찰은 을지로 입구 인근에 있던 경찰관 수십여 명을 동원해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또한 서울청 산하 모든 경찰서 형사·강력계와 지구대, 파출소 인원을 전원 비상대기 시키는 등 경찰력을 총 동원했다. 경찰은 각 경찰서 별로 서울 시내 전역의 주요도로와 길목에 차량 300여 대를 배치하는 등 납치 용의자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경찰은 이씨의 은색 신형 그랜저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의 GPS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수배 차량의 최종 종착지가 명동 인근의 한 특급 호텔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11시5분께 이 호텔 투숙객 명부에서 이씨의 이름을 확인, 객실 문을 따고 들어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은 긴장의 고삐를 바짝 조였으나 황당하게도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객실 안에는 납치범의 모습이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 이씨 모자는 객실 안 침대에서 태연히 잠든 채 발견돼 바싹 긴장하며 객실에 들이닥쳤던 경찰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3년 전부터 심한 우울증
이씨가 납치 자작극을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3년 전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우울증이 3년 이상 지속되면서 최근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자 이씨는 납치 자작극을 계획했다. 다시 남편의 관심을 끌어 부부사이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또 이씨가 남편 몰래 빚진 사채 빚 1억1000만 원을 갚기 위해 1억50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아들과 함께 납치된 상태임에도 문자를 보내는 등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씨가 자작극으로 경찰을 비상대기하게 하는 등 수사력을 낭비하게 만들어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고려했다. 하지만 남편이 처벌을 원치 않아 별다른 처벌 없이 귀가 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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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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