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아이 살해’…우울증이 부른 비극
‘낳은 아이 살해’…우울증이 부른 비극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5-09-21 14:09
  • 승인 2015.09.21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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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호르몬 변화 및 육아에 대한 부담이 원인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최근 가정불화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을 앓던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산후우울증은 아이는 물론 산모에게도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산후우울증을 앓게 되면 우울과 슬픔을 느끼고 주변의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아이의 건강 또는 사고 발생에 대한 걱정이 크거나 반대로 관심을 상실할 수도 있으며 아이에게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산후우울증 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살해한 사건을 짚어보고 대처법에 대해 알아본다.

 
# 지난 14, 5살배기 아들을 살해하고 자다가 숨졌다며 아이의 장례까지 치른 비정한 엄마가 경찰에 붙잡혔다.
 
박순태 남양주 경찰서 형사과장은 피의자는 평상시에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대화가 전혀 없었으며 육아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이 왔다아들이 아빠를 좋아하고 자신을 덜 좋아하는 것이 미워서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 엄마는 아들을 죽이고도 태연하게 장례식까지 치렀다. 그러나 경찰은 엄마의 진술이 오락가락한 점을 수상히 여겼다.
 
엄마는 경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아들이 잠을 자다 숨졌다고 진술했다가 욕조에서 혼자 놀다 익사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경찰은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집 근처 CCTV에서 아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찾아냈다.
 
또 집에서는 아들의 사진을 찢은 흔적과 테이프를 발견했다. 그런데, 아들을 살해한 방법이 너무나 잔인했다.
 
박 형사과장은 거실에서 청테이프로 손을 4번 정도 감고 입을 봉해서 안고 욕조에 갔다. 물을 채운 욕조에 아이를 앉힌 다음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누른 상태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던 엄마는 현재 우울증약을 복용하며 아들을 사랑했다면서 범행을 뉘우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후회는 언제나 한 발 늦는다.
 
# 청주에서 발생한 6세 남아 살해 사건의 범인은 아이의 엄마 양모(34)씨였다.
 
양 씨가 이런 극단적인 행위를 하게 된 배경에는 가정불화와 우울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하루 전인 지난 718일 청주시 청원구 사천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양 씨는 6살 난 아들의 보육 문제로 남편 김모(32)씨와 다툼을 벌였다.
 
감정이 격해진 남편은 이때 집을 나간 뒤 찜질방을 전전하며 귀가하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양 씨는 3개월 전 또다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해왔으며 심리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했던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다. 결국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양 씨는 다음 날인 719일 자신의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하는 참극을 벌였다.
 
자신에게 막말을 한 남편이 원망스러워 아들과 함께 세상을 뜨려했다는 게 양 씨의 진술이다.
 
# 주부 신모씨(34)는 지난 19일을 잊을 수 없다. 첫 아이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 없었다. 아이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출산 전 태아의 자세가 이상하다는 진단이 있었지만 뇌성마비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남편은 잘 키워보자고 상심한 아내를 다독였다. 하지만 신 씨의 산후우울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복지시설에 위탁 문의도 해봤지만 젖먹이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던 신 씨는 지난 36일 새벽 6시쯤 남편 몰래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양천공원 장애인 화장실로 갔다. 신 씨는 세면대에 물을 받은 뒤 아이를 거꾸로 빠뜨렸다. 경찰에는 아이를 실수로 땅에 떨어뜨렸다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숨을 쉬지 않는 아이를 보고 죄책감을 느낀 신 씨는 경찰서로 가 범행을 자백했다.
 
아이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생명을 건졌지만 위독한 상태다. 신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생 뇌성마비 환자로 산다는 게 부모도 아이도 힘들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 씨는 아들을 복지시설로 보내려 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신 씨는 출산 직후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 지난 33, 생후 18개월된 남자아기가 목욕탕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사고사로 보였지만, 현장을 살피던 경찰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기가 발견된 목욕탕에 낙엽이 흩어져 있고, 마당 연못 특정 부분에만 낙엽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추궁 끝에 엄마 39살 박모씨는 아기를 살해하려고 연못에 빠뜨렸지만 숨지지 않아 다시 욕조에 빠뜨렸다고 자백했다.
 
숨진 아기까지 세 자녀를 키우던 박 씨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박 씨는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또 지난 227일 전남 나주에서 한 30대 엄마가 생후 10개월된 딸의 배와 머리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해, 살인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여성은 남편이 가정과 육아에 소홀한 상황에서 혼자 딸을 키우는 현실이 원망스러워 아이를 숨지게 했다고 진술했다. 이 엄마도 자녀 양육에 부담을 느껴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국내 우울증 환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국내 우울증 환자의 성별 비중을 살펴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년 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전체 환자 수는 6646백 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성 환자가 차지하는 퍼센티지는 70%, 남성 환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스트레스가 여성 우울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출산 후 5년 이내에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이 10명 중 6명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인하대 아동학과 교수팀이, 지난 2008년에 출산한 여성 천3백여 명을 5년 동안 추적 관찰해봤다.
 
그랬더니 매년 전체 산모의 23% 정도가 경도또는 중증도의 우울 증상을 보였고, 7% 정도는 중증도 이상심한 우울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찰 기간 5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은 사람은 790여 명으로 나타나서 전체의 60%, 10명 중 6명꼴이었다.
 
이 팀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울증에 더 많이 빠지는 이유에 대해 호르몬 변화와 사회적 스트레스, 그리고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억눌린 감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황영혜(39)씨는 나도 일을 하고 남편도 일을 하는데, 남편은 야근이나 회식 같은 거에 굉장히 자유롭지만 나는 아이들 때문에 퇴근하자마자 종종걸음 치면서 집에 와야 한다어쩌다가 혹시 밤늦게 오면 자식들에게 소홀하다는 비난이 쏟아져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거주하는 전혜숙(35)씨는 사회생활은 임신한 후 그만뒀다. 시댁이나 친정 쪽에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 전적으로 내가 애를 맡고 있는데,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육아에 관심 없어하면 그때가 제일 힘들다여자들은 힘들 때 남편이 적극적으로 안 도와주면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 살해범
처벌 수준 너무 낮아
 
산후우울증을 앓던 여성이 자녀를 살해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녀를 살해한 것에 대한 처벌 수준이 너무 낮다 보니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자신 또는 배우자의 부모, 즉 직계존속 살인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살인의 형량보다 높은 형을 적용한다. 하지만 자식을 살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가중처벌 규정이 없는데다 영아를 살해했을 때는 최고 형량이 10년에 불과해 오히려 다른 살인보다 형량이 가볍다.
 
산후우울증이라는 심리상태를 고려한다고 해도, 자녀 살해라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엄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녀를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우리나라 산모는 전체의 36% 수준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높다.
 
하지만 산후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여성은 2014년 한해 동안 241명에 불과해, 산모들이 산후우울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산후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의학계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육아에 대한 부담이 주된 원인으로 추정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산모들이 아이를 외부에 맡기거나, 남편이 육아 부담을 함께 하는 경우가 낮아서 심리적 육체적 압박감이 우울감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임신기간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훨씬 많아져 산후우울증 확률을 더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산후우울증 환자는 애들을 두고 밖에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도 들고, 밤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고백했다.
 
엄마가 산후우울증을 앓는 경우 아이의 키가 또래보다 작거나 지능 발달이 늦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로 아기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산후우울증은 다른 우울증이랑 비슷하게 우울감, 불안감, 불면, 무기력증, 그리고 자존감 저하, 죄책감 이런 것들을 다 같이 동반할 수 있다. 특히 육아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부담을 느끼거나 아이에 대해서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산후우울증을 의심하고 진단 및 치료를 받아야 된다.
 
치료 방법은 일상생활이 안 되고 육아에 문제가 생길 정도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약물치료를 포함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예방 방법은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혹은 몇 시간이라도 자유 시간을 갖도록 한다. 가족들과 스케줄을 짜서 운동을 하든, 마사지를 받든, 친구들 만나든, 혹은 푹 쉬면서 부족한 잠을 자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활동을 한다.
 
세 살된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김은영(29). 몸살감기에 걸려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그동안 제때 병원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엄마가 볼일을 보는 사이 아이를 몇 시간씩 맡아주는 시간제 보육센터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육아가 훨씬 수월해졌다.
 
김은영 씨는 시간제 보육을 이용하면서 나의 삶이 3배에서 4배 정도 더 여유로워졌다며 기뻐했다.
 
엄마들이 돌아가며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이른바 육아 품앗이도 등장했다.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김민경(34)씨는 엄마들끼리 육아공부를 같이하며 아이들을 함께 기르니까 생활이 즐겁고 잠시 맡길 때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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