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의 변화 대구高 라인 급부상
TK의 변화 대구高 라인 급부상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9-21 10:23
  • 승인 2015.09.21 10:23
  • 호수 1116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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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ㆍ국세청ㆍ감사원 요직 싹쓸이
▲ photo@ilyoseoul.co.kr

 사정기관·금융 등 약진…‘보이지 않는 손’ 작용說
박근혜 정부 초기의 경기고와 서울고는 주춤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청와대 참모들은 각종 공식, 비공식 식사나 술자리에서 건배를 할 때 선창자가 ‘태평’이라고 하면 참석자들이 ‘성대’를 외쳤다. 나라를 잘 이끌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만들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때의 ‘태평성대’는 말 뜻 그대로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이다.

하지만 이 건배사는 차츰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 같은 태평성대지만 청와대나 정부, 정치권의 성균관대 졸업생들이 모인 자리에선 ‘태평’이란 선창 다음에 나오는 맞장구 ‘성대’가 성균관대를 의미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성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성대 전성시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부터 현재의 3대 총리까지 모두 성균관대 출신이다. 정홍원 전 총리는 성대 법대 64학번, 이완구 전 총리는 성대 행정학과 71학번이다. 황교안 현 총리는 성대 법학과 77학번이다. 특정대학 출신이 한 정권에서 3연속 총리에 오른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현 청와대 참모 중에는 ‘넘버 1 수석’으로 불리는 안종범 경제수석이 경제학과를 나왔다. 내각에는 이근면 인사혁신처장(화학공업과)이 있다.

‘성대 전성시대’ 진행형

특히 박근혜 정부 1기 청와대는 성대 출신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허태열 비서실장을 필두로 곽상도 민정수석,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남기 홍보수석 등이 고위 참모진에 포진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초기에 정부 골격을 짤 때 ‘성·시·경’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성대·고시·경기고’ 출신이 대거 발탁된 까닭이다. 성대 출신은 중앙정부와 청와대 같은 공직사회뿐 아니라 정계와 재계, 금융계, 곳곳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고교 파워 인맥에는 변화가 생겼다. 경기고와 서울고 출신 틈바구니에서 대구고의 약진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인물은 현 정권의 핵심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대구고 15회 졸업생인 최 부총리는 동문들을 사회 곳곳에 배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소문에 시달려 왔다. 그러다 마침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9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직격탄을 날렸고 최 부총리가 맞받아쳤다.

박영선 의원= “최경환 부총리가 대구고등학교 나오셨습니다. 임환수 국세청장, 서울청 조사4국장 다 대구고등학교 라인입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이분도 대구고등학교예요. 이 대구고 인맥이 검찰에도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이완수 감사원 사무총장, 어제 이게 문제가 됐죠? 최근 임명된 이순진 합참의장, 군부에까지 전부 (대구고) 인맥들이 과연 우연한 결과일까요?”

최경환 부총리= “대구고등학교는 졸업생이 5만, 6만 명이 되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에 지금 말씀하신 대로 다 맞더라도 십여 명도 안 됩니다. 경기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 경남고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공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씀드리고…음모론적으로 보실 일이 아닙니다.”

최 부총리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을까. 일단 대구고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대구고는 1958년 4월 신입생 390명(6학급)으로 개교를 했고, 올해 2월까지 55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구의 경북고, 계성고, 대륜고 등에 비하면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대구고의 위상은 다른 고교들에 비해 결코 낮지 않거나, 오히려 압도한다.

특히 군(軍)에서 대구고 인맥의 도약은 놀랍다. 9월 14일 단행된 군 인사에선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군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대장이 합참의장에 기용됐다. 군의 서열 1위가 된 그는 대구고 출신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대구고를 졸업한 조현천 중장이 국군기무사령관에 전격적으로 임명됐다.

사정기관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검찰 특수부를 산하에 두고 있는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올해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김진태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같은 대구의 청구고를 나온 김수남 대검 차장과 경합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역시 검찰 출신인 이완수 변호사는 지난 7월 감사원 사무총장에 깜짝 발탁됐다. 감사원의 ‘넘버 2’인 사무총장 자리에 외부 인사가 기용된 건 16년 만에 처음이다.

박영선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최경환 부총리와 임환수 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장이 모두 대구고 라인으로, 재벌에게서 세금을 걷는 데 침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 국세청장은 지난해 7월 전격 경질된 김덕중 국세청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그는 20여년 동안 국세청에서 근무하며 조사와 기획 등의 분야를 두루 거친 조세분야 전문가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국세청을 이끌 ‘차세대’로 꼽혔지만 시기가 앞당겨진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최경환 영향력’ 수군수군

박 의원은 대구고 출신인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해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홍 본부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난 일은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국민 입장에서 운용해야 하는데 이재용 3남매만 이득을 보는 행위를 했다는 공세였다.

지난 연말 터진 청와대 ‘정윤회 문건’ 파문에서는 대구고 인맥이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윤회 씨와 대치한 것으로 파악되는 박지만 씨 라인에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행정관으로 파견 나가 있던 박관천 전 경정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대구였다. 조 전 비서관은 대구 성광고, 박 전 경정은 대구고를 나왔다. 두 사람은 조 전 비서관이 검사 시절 경찰 라인과 업무협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경정을 청와대로 끌어들인 인물도 조 전 비서관이었다.

대구고 인맥의 약진이 ‘최경환 영향력’ 또는 ‘최경환 효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 부총리의 말대로 수많
은 졸업생이 사회 각계에 진출해 있고, 연령대 등으로 볼 때 지금이 요직에 오르는 피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군과 사정기관, 금융계의 핵심 자리를 대구고 인맥이 속속 차지하는 데 대해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실제로 여의도 정가의 호사가들은 지난 6월 유승민 원내대표 퇴진 파동의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대구고 괴담’을 나누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대구지역 전통의 명문인 경북고를 나왔다. 대구 정치권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르면서 경북고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그는 박 대통령에게 ‘자기정치’ ‘배신의 정치’를 한다고 미운털이 박혀 사실상 축출됐다. 이를 계기로 경북고의 입지가 좁아지고 그 자리를 최 부총리의 대구고가 메우기 시작했다는 관측이다.

대구고의 교풍(校風)은 ‘박력’과 ‘의리’라고 한다. 졸업 후 사회 곳곳에서 과감하게 동문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특유의 풍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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