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도박 파문 개막전 역대 최저 관중…관련구단 치명타
진척없는 대책과 부실 징계, 이를 악용한 구단까지 천태만상
2015-2016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지난 12일 개막됐다. 이날 오후 2시 울산 동천체육관에서는 울산 모비스와 원주 동부가 개막전을 펼친 가운데 66대 77로 원주 동부가 승리했다. 같은 시각 고양 체육관에서는 서울 SK와 전주 KCC가 경기를 펼쳐 80대 72로 서울 SK가 이기는 등 본격적인 정규리그 일정에 돌입했다.
하지만 비시즌 동안 벌어진 파문 덕분에 개막전 관중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며 차가운 팬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3일 5경기 평균 관중은 3687명으로 개막 주간 일요일 평균 관중이 3000명 대로 추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시즌 일요일 평균 4905명보다 1218명이나 줄었다.
특히 이날 SK와 모비스의 경기가 열린 잠실학생체육관을 찾은 관중은 3223명에 불과해 전체 7000석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물론 한 달 앞으로 당겨진 일정이 최고 인기스포츠인 프로야구와 겹친다는 점이 작용했지만 SK의 경우 지난 2년간 개막전에서 평균 5500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팀 최고 스타인 김선형이 승부조작과 관련돼 시한부 출전 보류 징계를 받은 상황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창원 LG도 올 시즌 역대 홈 개막전 최소인 3482명을 기록하는 등 인천 전자랜드를 제외하면 어느 구단도 5000명을 넘기지 못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관중석을 바라보며 “시즌 개막이 아니라 아직도 연습경기를 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자정결의대회 불구…제자리걸음
이날 김영기 KBL 총재는 “올해로 스무번째 시즌을 맞이한 프로농구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 뛰어야 할 때 안타깝게 검은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선수들이 불미스러운 의혹에 휩싸이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번 사태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KBL 구성원 모두가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BL도 불법을 뿌리 뽑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위기를 느낀 KBL 스스로도 자정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악재에 대처하는 방법을 놓고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KBL이 자정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2013년 강동희 전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 때에도 KBL은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승부조작 자진 신고시스템을 구축하고 선수단 교육 등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최근 악재들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거하지 못하면 재발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더욱이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는 모습과 의지를 찾아보기 힘든 후속 대처는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 출전보류 징계를 받은 김선형의 경우 신인드래프트 오리엔테이션 당시 대학시절 불법 도박을 한 경험이 있다고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KBL은 이 같은 사실을 덮어뒀다.
여기에 자진신고를 정상참작 근거로 내세워 징계 수위를 조절하면서 이를 지켜보는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 지난 8일 열린 긴급재정위원회에서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 ‘기한부 출전 보류’ 처분을 내림과 동시에 지난해 6월 음주운전 사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김민구(KCC)에 대해 봉사활동 120시간을 부과해 사실상 무징계에 가까운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징계선수 출전 논란
KBL의 오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솜방망이 처벌로 도마에 오른 김민구가 12일 SK와의 개막전 3쿼터 후반에 출전하자 구설수에 올랐다.
김민구는 사회봉사 120시간 중 아직 단 1시간도 이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구단 측은 KBL이 사회봉사 120시간만 주문했을 뿐 이수하지 않으면 출전할 수 없다는 세부 조항이 없으니 문제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KCC 측은 “올 시즌 안에 120시간을 다 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인감독들 구원투수 될까
연달아 터진 파문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됐지만 KBL은 이미 주사위가 던져진 만큼 새로운 인물들에게서 다시 활력을 찾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당초 올 시즌은 개막부터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질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기 어려웠던 상황이다. 그러나 징계처분까지 이어지면서 각 팀의 엔트리는 더욱 얇아졌다. 이에 미봉책으로 외국인 선수를 1라운드 동시 출전안이 검토됐지만 이 마저도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등 돌린 팬심을 되찾기 위해서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기본적이 자세를 갖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새 시즌을 맞아 새 외국인선수들에게 관심이 모이는 만큼 신임감독들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더욱이 비시즌 동안 전창진 전 감독의 사건으로 감독들 사이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KCC 감독대행이었던 추승균이 정식 감독으로 도전장을 내밀었고 조동현(KT) 감독도 모비스 우승의 기운을 이어가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또 전장친 감독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김승기 KGC 감독대행 역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져 다시 활기를 불어 넣을 준비를 마쳤다.
다만 초보감독들의 출발이 매끄럽진 않다. 모두 개막일에 상대팀에 무릎을 꿇으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차츰 안정권에 접어들 것으로 보여 농구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냉랭해진 팬들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라 이번 위기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국가대표를 관할하는 대한농구협회는 불법도박과 관련해 선수교체 의지를 밝혔다.
대한 농구협회는 지난 8일 긴급 회장단 회의를 소집해 1차적으로 대표선수의 명예를 실추한 김선형을 교체하는 데 뜻을 모았다.
협회 측은 현재 남자 농구대표팀을 이끄는 김동관 감독과 최종 상의를 마치는 대로 김선형을 내보낼 것으로 보인다. 김선형은 현재까지 드러난 선수 중 최소액인 70여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베팅 횟수가 무려 50회 이상인 것으로 확인했다.
협회는 사건의 진행 및 결과 여부에 따라 징벌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징계를 확정할 예정이다.
앞서 협회는 지난 8월 이사회에서 2014년 음주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김민구에 대해 대표팀 자격정지를 내린 바 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