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오전 4시 40분 부산시 서구 토성동 한 아파트에서 굉음이 발생했다. 송모(52)씨가 헤어진 내연녀 문모(36)씨의 집을 찾아가 폭발물을 터트린 것이다. 이른 새벽 발생한 폭발음에 주민들이 밖으로 대피하면서 아파트 일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 아파트 10층 복도에서 터진 폭발물로 송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부경찰서 소속 강모(42)경사와 표모(39)경위 등 2명이 다쳤다. 빗나간 애정으로 ‘자폭’까지 감행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5년 전 송씨는 다방을 운영하고 있던 문씨와 처음 만났다.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키워오다 지난 3년간 문씨와 동거생활을 했다. 송씨는 결혼을 꿈꿨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문씨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송씨가 많은 채무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데다 나이 차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8월, 가족들의 반대로 동거생활을 정리하고 헤어지게 됐다.
결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송씨는 재결합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문씨는 ‘그만 만나자’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처럼 재결합 문제로 마찰을 빚어오다 앙심을 품게 된 송씨는 문씨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송씨는 현관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다. 계속되는 요구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송씨는 현관문을 발로 차고 고함을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냉대 받자 ‘자폭’
송씨는 거듭되는 방문과 재결합 요구에도 문씨가 경찰에 신고하는 등 냉대를 하자 미리 준비한 폭발물을 배에 두른 뒤 문씨의 집을 찾아가 폭발시킨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송씨는 문씨의 집을 3번째 방문했을 때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을 보는 순간 “또 경찰 불렀구나. 나는 다 했다. 배에 폭탄을 붙였다”고 문씨와 통화 도중 폭발물을 터트려 사망했다. 다행히 집안에 있었던 문씨는 피해가 없었다.
폭발로 숨진 송씨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이 아파트 10층 복도 곳곳에는 송씨의 신체들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복도 바닥과 벽, 천장에는 송씨의 피로 흥건하게 얼룩졌다.
송씨가 현관문 바로 앞에서 폭발물을 터트린 탓에 폭발 여파로 현관문이 뒤틀어진 채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폭발 충격으로 현관문 앞바닥은 물론 현관문 안쪽의 베란다 통유리도 산산조각 났다.
폭발이 일어난 10층 바닥은 움푹 파이거나 내려앉았고 천장은 큰 구멍이 뚫린 채 일부 무너졌다. 9층 천장 일부도 폭발의 여파로 내려앉았다.
문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 2명도 10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강 경사는 이마와 왼쪽 손목이 다치고 오른쪽 눈 위 뼈 골절이 뇌출혈로 이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표 경위는 귀 이명 증세를 보이고 있다. 새벽시간 발생한 굉음에 주민 100여 명이 놀라 황급히 아파트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초동조치 미흡했나
사건 발생 이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건을 키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문씨의 신고를 받고 사건 발생 전 두 번이나 현장을 방문하고도 송씨의 몸수색을 제대로 하지 않은 등 초동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씨의 아파트 입구 CCTV를 확인한 결과 송씨가 폭발물로 추정되는 검은색 비닐 봉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 또 문씨가 경찰 신고 시 “송씨가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 같다”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첫 번째 출동의 경우 현행범 체포가 힘든 상황이라 몸수색에 어려움이 있었고, 두 번째 출동에서는 송씨의 몸과 차량 모두를 수색했으나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경찰은 CCTV 확인결과 송씨가 아파트 입구 옆 쓰레기통 뒤에 폭발물로 추정되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숨기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송씨가 지난 2일 오전 2시14분께 문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수색을 받고 아파트를 떠났다 다시 돌아와 폭발물을 숨겼다고 전했다.
폭발물의 정체는
이처럼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폭발 사고에 송씨가 터트린 폭발물의 정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은 송씨가 지난해 5월부터 경북 안동시 성곡동 안동댐 공사현장에서 숙식을 하며 차량 검수원으로 일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수거한 뇌관과 화약 등 5점의 폭발 잔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성분 분석 등 감정을 의뢰했다. 지난 3일 사건현장에 군당국도 폭발물처리반(EOD)를 투입해 폭발물 종류와 폭발원인 파악에 나섰고 경찰, 국정원, 소방서 등이 함께 사건 현장을 정밀 감식했다.
경찰은 지난 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송씨가 터트린 폭발물이 산업용 에멀전 폭약이라고 잠정결론 내리고 이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산업용 에멀전 폭약은 5~20% 정도의 물을 함유한 폭약으로 폭발 위력은 다이너마이트에 비해 약하나 취급시 안정성이 높아 산업현장에서 발파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경찰은 송씨가 건설회사 공사현장에서 일하면서 산업용 에멀전 폭약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송씨가 근무한 건설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폭약 입수경위를 조사해 폭약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경우 관련자를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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