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사업 앞에 무너진 고등 교육·인재 양성

전체 운영비의 66%를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국내 대학교가 등록금인상 문제로 대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등록금이 운영비에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인데 사용 내역은 경영상 비밀로 부쳐 투자, 투기 자금으로 사용한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등록금 문제가 가라앉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등록금 반값 인하·동결을 위한 규탄 대회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대학생들은 “학교 내의 모든 의식주가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닌 대학교 사업을 위해서 돌아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예산이 없다면서 뒷돈을 챙기는 대학과 등록금 인상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린 대학생들을 조명해봤다.
등록금 때문에 매 학기마다 벼랑으로 내몰리는 대학생들이 많다. 교육과학기술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대학등록금은 물가 상승률의 2배가량 치솟았다. 2000~2010년 동안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은 국공립대가115%, 사립대80.7%, 전문대90.4%였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이 35.9%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수 대학생이 가졌을 부담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만만찮은 대학교 생활비까지 더하면 대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등록금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셈이다.
생활비 부담과 졸업 후의 취업난으로 인한 대출금 부담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생활고와 취업난으로 자살한 대학생 수는 2008년 332명, 2009년 268명에 달했다. 지난 2월에도 학자금 대출 서류와 즉석복권 두 장을 유서 대신 남기고 자살한 대학생이 있어 세간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등록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 휴학을 돌파구로 택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돈을 조금이라도 많이 벌기 위해 원치 않는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거나 휴학이 자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금전 앞에서 무력한 대학생들
그중 손님들의 대화 상대가 돼주는 ‘토킹 BAR 바텐더’나 노래를 부르면서 같이 놀아주는 ‘노래방 도우미’등은 대학교 등록금 인상 문제가 만든 어두운 그늘이다. 등록금에 대한 1차 책임을 정부나 대학교가 아닌 대학생들이 지면서 또 다른 시장의 장삿속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는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때문에 내몰린 여대생, 접대부로 대거 고용’이란 내용을 홍보문구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 업소 A직원은 “비싼 등록금 때문에 ‘투잡’을 뛰고 있는 학생들도 있으며 아예 휴학해 학비를 버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특정 고소득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대학생들은 편의점과 식당, 호프집에서 학업 외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대학생 한 달 평균 생활비로 알려진 42만 원을 벌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 했고, 시급을 좀 더 받기 위해 야간·밤샘 근무를 하는 대학생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모(21)씨 역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업과 병행하다보니 이씨가 하루 잠들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이씨는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되는 것이 싫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 식사는 주로 삼각 김밥으로 때우거나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하는 김밥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생활비가 절실해 시작한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정부와 대학교는 학생들이 처한 이 같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개선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합격했다고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냐
교육과학시술부는 올해 대학 등록금은 국공립대학이 1.1%, 사립대가 2.3% 인상됐다고 밝혔다. 3%이상 인상한 대학은 건국대, 단국대, 중앙대, 동아대 등 57개교였고, 전문대는 21개교였다. 4년제 국공립대학이 425만6000원, 사립대학이 767만7000원이었다. 전문대는 국공립이 343만5000원, 사립이 620만 원이었다. 이 금액은OECD가입국 중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비쌌고 ‘저소득층 지원혜택’ 제도를 적용할 경우 미국보다 싸다고 할 수도 없었다.
대학교의 ‘등록금 카드 납부제’ 외면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7일 7개 카드사에 따르면 올해 등록금을 카드 신청한 대학교은 48곳으로 이는 전국 411개 대학의 11.7%에 불과하다. 대학교가 등록금 카드 납부제를 피하는 이유는 가맹점 수수료 때문이다. 대학교가 등록금을 카드 납부로 받게 되면 학기마다 수억 원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카드 납부가 가능한 대학교를 강제로 늘리면 대학교가 수수료만큼 등록금을 올릴 것이란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대학교 등록금이 “대학교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며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무관심은 지난해 말 교육개혁협의회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대학생들이 외친 등록금 문제와는 동 떨어진 “학자금 대출과 카드 납부제 중에 어떤 것이 낫겠느냐”며 사안을 토론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달 설동근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의 발언은 등록금 문제에 힘겨워하는 대학생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등록금문제를 조명한 한 TV프로그램에서 설 차관이 “젊어서 하는 고생은 옛날부터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용기를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설 차관은 아르바이트로 학업에 몰두할 수 없는 대학생에 대한 질문에도 “굳이 당장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기보다는 든든 학자금을 잘 알아봤으면 좋겠다. 든든 학자금 지원을 받아야 부담이 줄어든다”라고 답했다. 채무는 취업 이후 상환능력이 있을 때 상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시청자들은 설 차관의 발언이 “졸업 후 취업난을 모르고 한 소리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가 뜬금없이 대출을 받으라고 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난했다. 대학생들 역시“한 집에 대학생이 3명이면 한 학기 등록금이 1500만 원에 달하는데 대출을 권장하다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라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등록금은 대학생 혼자 짊어지나
한편 대학교 측은 등록금에 관해 한결 같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이 자금 부족과 양질의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해도 대학교의 대답은 엇비슷했다. 재단과의 연계를 통한 사업 부재나 학생들을 위한 신관, 수련원 증축이 주된 명분이었다. 의견 자체를 아예 묵살 하거나 단순히 “학교에 돈이 없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일축하는 학교도 많았다.
그러나 이 같은 대학교들의 주장 역시 퇴색하고 있다. 일부 대학교가 예산을 불합리하게 사용한 내역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밝혀진 대학교의 대표적인 악습은 교육용 토지 매입과 펀드 투자와 관련돼 있다.
서울 20개 주요 대학을 비롯한 대학교들은 교육용 토지 매입 명분으로 몇 십 년 전부터 땅을 사들였다. 주민들과 지자체는 교육용 시설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반겼고 기존 시세보다 땅을 싸게 매매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땅을 매입하고 난 후 그대로 방치했다. 그 동안 땅 가격은 수십 배가 뛰었지만 대학교 측은 구체적인 개발 계획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당장 수익성이 없는 토지를 대학교가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예산이 부족 하다면서도 자금을 묶어둔 채로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희 국회의원 역시 “대학교는 교육용 토지를 샀으면 활용을 해야 하는 데 왜 40~50년까지 보유하다가 또 사들이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교가 부동산 사업, 땅 투기에 앞장서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다.
한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으로 운영한 펀드 투자 손실도 심각했다. 원금손실이 큰 펀드에 투자했다가 100억 원 이 넘는 평가 손실을 입은 것이다. 해당 대학은 차후 원금을 회수했다고 밝혔지만 등록금을 무분별하게 유용한 사실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학교들은 등록금 문제를 국가정책과 교육재정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희대 기획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등록금 인상률을 제한하면 대학자율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물가인상을 억제하는 효과는 적고, 대학의 자율성과 자발적 발전노력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국고지원 부재로 대학의 교육여건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은 1.5%로 미국 15~20%, 영국 60%, 일본 10~15%보다 낮고 대부분 국가정책 지원사업”이라며 “국고금, 기부금 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국고지원이 능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등록금을 절반 정도 지원한다고 치면 해마다 10조 원의 비용이 들게 되는데 퇴출 대학교, 자격미달 대학생들에게 국고를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대학교와 졸업장만 따기 위해서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는 대학생부터 줄여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등록금 인상 문제는 대학교 선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결탁해 자본증식에만 열을 올리는 대학교의 모습은 대학교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의문을 남긴다.
대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이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지만 철옹성과도 같은 대학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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