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에 램브란트와 뭉크를 좋아한다고 적혀있다.
▶명화를 감상할 때 기법과 형식도 보지만 사회상과 시대정신을 같이 본다. 뭉크는 개인적인 불행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고통과 고뇌는 20세기 초의 비극을 그대로 반영했다. 어릴 때는 뭉크의 그림이 단지 특이해서 좋았다. 학창시절 미대 지망생이었는데 그 때는 대부분 아름다운 그림을 좋아하지 않나. 그런데 뭉크는 아름다운 것과 전혀 상관없는 추해 보이고 혐오감이 드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램브란트의 경우 그림의 연출을 좋아했다.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램브란트의 정신 또한 좋았다.
-작가가 된 계기가 어디에 있나.
▶1980~1990년대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빠르게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화라든가 사회복지라는 것들이 짧은 시간에 가능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는 앞서 말한 것들이 장기적인 과제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천천히 축적하면서 변화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오랜 시간 세부적으로 바꿔야 할 때, 이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역할 중 하나를 책으로 봤다. 사람들이 가진 사고의 힘을 넓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 있는 작업으로 봤다.
-척박한 우리 인문학적 토양을 아쉬워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문학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인문학은 80~90년대에 더 관심이 높았다. 조그만 인문사회 서점이 전국적으로 대단히 많았다. 대학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에는 서점이 자리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부터 씨가 말라갔다. 요즘 얘기하는 인문학 열풍은 주로 입문서 위주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소개하고 그치는 정도다. 인문학은 생각하는 것인데 일부 인문학 서적은 단순하게 외우게 한다. 인문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 요즘 인문학 서적들은 입문 단계에서 한 발 더 들어가면 안 팔린다.
-깊이 있는 인문학 책이 안 팔린다고 했는데, 대중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나.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를 미술과 접목한 계기가 독자들을 염두 해서다. 내 책 대부분 베이스는 고전이다.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의 핵심 구절과 단락을 그대로 풀어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미술과 소설을 매개로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2010년 베스트셀러 종합 1위는 ‘정의란 무엇인가’다. 이 책의 열풍이 인문학 토양에 거름이 됐으며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가.
▶좋은 면이 많았다. 사람들을 인문학적으로 고민하게 하고, 개인이 사회 쟁점을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가 논의할 수 있게 해준 부분이 있었다.
-고전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목적이 분명한 책을 찾는다. 에세이나 심리학으로 위로를 받거나, 자기계발로 안정을 찾는다. 고전의 영역은 무엇인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 때 당장 아픈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개인 병력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전에 어디가 아팠는지, 가족력이 있는지 본다. 한사람의 병만 보더라도 과거가 필요하다. 사회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쭉 올라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과거에도 현재와 비슷한 양상이 있었고, 그것을 대상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게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경제학이든 마찬가지다. 고전에서 그런 고민을 찾았을 때 현재에 접목할 수 있다.
-고전은 필요한 것을 능동적으로 찾는 과정인가.
▶얕은 심리학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경우 정답을 주려고 한다. 답이 있는 거니까 이렇게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정답은 움직이지 단지 고정된 것이다. 세상은 정답이 아니라 해답이 필요하다.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이 어디 있나. 다 뭔가 조금씩 조건이나 상황이 다르다. 서로 다름 속에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인데 그러려면 사고의 힘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를 어디서 기를 수 있겠는가. 인문학이다. 고전은 해답을 찾아 나가는 힘을 길러준다.
-고전으로 지식을 쌓았으나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을 긍정하는 편인가.
▶히틀러도 고전공부 많이 했다고 한다.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망쳐왔지, 무식한 사람들이 망치지는 않았다. 인문학의 핵심은 지식이 아니다. 배경지식을 쌓는다고 인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의 핵심은 반성적 성찰이다. 암기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비판적 사고, 반성적 사고를 해야 한다.
-인문학을 알리기 위해 <미술관옆 인문학>,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를 썼다. 인문학의 저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인문학의 수요는 넓어진 것 같다. 도서관, 학교, 공무원 연수 등 강의도 많아졌다. 동네에서도 자연 발생적으로 인문학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저변이 넓어진 것은 맞지만 아쉬움도 있다. 깊어져야 하는데, 깊어지고 있는 느낌이 없다. 저변이 넓어지는 단계라면 앞으로 조금씩 깊어지길 기대한다.
-미술과 인문학의 조합 등 같은 콘셉트를 가지고 다른 책을 낼 때 차별성을 어떻게 고민하나.
▶똑같이 보이는 책을 또 내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어 내가 낸 책 중에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라는 책이 있다. 출판사에서 처음 이 책을 내자고 할 때 3달을 피해 다녔다. 인문학 입문서가 많은데 여기서 더 낸다면 숟가락만 하나 더 얹는 것 같았다. 출판사에서는 그래도 시중에 먼저 나와 있는 입문서를 살펴봐 달라고 했다. 대부분 책이 인문학 다이제스트였다. 다이제스트는 독자를 인문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 배경지식 외우기는 안 된다.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같은 경우는 드라마,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서 인문학적 사고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출간 후 홍보도 중요한 것 같다. 작가로서 SNS에 활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다. ‘페이스 북’, ‘카카오 스토리’등을 신경 쓰면 글을 못 쓴다. 강연하고 작업실에서 책 쓰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난다. 책 몇 권 냈다고 SN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 글을 쓰는데 힘들어진다.
-헌법을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구성으로 전달할 예정인가.
▶헌법 관련 시중 책들은 대부분 수험서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긴 있어도 대개 주권에 해당하는 얘기를 한다. 사회계약론 등을 언급하는 정도지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헌법은 인문사회학의 총결산이며 집약이다. 인문학적 사고의 이해 없이는 헌법을 제대로 이해 못 한다. 예를 들어 헌법 1조1항 중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여기서 민주만큼 중요한 단어가 공화국이라는 단어다. 대중들은 공화국을 단지 나라라는 단어와 비슷한 의미로 알고 있을 것이다. 공화국은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중요한 쟁점이었다. 국가의 일에 사적인 것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정신이다. 로마 공화정 때는 부의 정도, 신분의 여부가 국가의 일에 적용 돼서는 안 되는 것을 주장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공화국의 시작이다. 근대 공화국의 정의는 정교분리였다. 중세 시대 때 심했던 종교의 정치 간섭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을 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적인 요소가 정치에 개입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것을 고민할 때 헌법과 가까워질 수 있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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