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난민 몰려 고민하는 유럽
사상 최대 난민 몰려 고민하는 유럽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9-14 10:38
  • 승인 2015.09.14 10:38
  • 호수 1115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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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목적지는 난민에 관대한 독일
나머지 EU국들, 분산수용에 소극적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유럽이 사상 최대 규모로 밀려드는 난민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분쟁지역인 시리아, 코소보, 에리트레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안전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중에서도 특히 난민에 관대한 독일을 향해 난민이 하루에 수천 명씩 몰리고 있다. 독일 정부는 올 한 해에만 난민 80만 명이 독일에 둥지를 틀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지난해의 4배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난민연구소의 알렉산더 베츠 소장은 “이번 사태는 유럽 바깥에서 오는 대규모 난민으로서는 첫 사례”라고 언론에 밝혔다. 여기서 ‘유럽 바깥에서’라는 단서가 붙는 것은, 2차대전 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이 대거 이웃 나라들로 이동했던 선례를 의식한 것이다. 베츠 소장은 이어 “EU가 공동으로 채택하고 있는 난민 제도는 이번과 같은 대규모 난민 유입 상황을 처리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면서 “유럽 내에서 난민 문제는 현상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유럽 바깥에서 오는 사례

지난 8월 31일 아침 EU 회원국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기차역을 지키던 경찰들이 갑자기 철수했다. 이들 경찰은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역 주변에서 노숙하던 난민들이 독일 행 기차에 오르는 것을 줄곧 막아오다가 돌연 방침을 바꾸어 난민들의 승차를 허용했다. 그러자 수많은 난민이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들어갔다. 독일에 도착한 난민들은 독일 곳곳의 난민 임시 거처에 수용됐다. 독일은 이들 난민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치료한다. 올해 독일 중앙정부가 당초 난민을 수용한 각 지자체에 난민 부양비용으로 보조하려 잡아놓았던 국가예산은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였는데, 지난 9월 7일 이 예산을 무려 60억 유로(약 7조8000억 원)로 늘렸다. 최근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터키 남부 해안에서 발견된 이후 독일 내부에서 난민 지원을 요구하는 여론이 힘을 얻은 결과다.

독일정부는 자국에 도착한 난민이 정식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할 때까지 임시 의료카드를 발급해 줌으로써 난민이 돈이 없어도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EU에서 가장 부자나라인 독일이 이처럼 난민을 관대하게 대우하는 것에 대해 다른 EU 회원국들은 “독일이 너무 후한 선례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도 앞으로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내심 불만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 내부에서도 극우파가 중심이 되어 난민 유입에 결사반대한다. 이들은 독일 곳곳의 난민 임시거처 예정 건물에 하루 한 건 꼴로 불을 지르는 등 정부 방침에 격렬히 반발한다. 특히 옛 동독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심각하다.

독일로 들어오는 난민은 일단 EU 회원국인 그리스에 입국한 다음 육로를 통해 독일로 향한다. EU 28개국 가운데 영국과 아일랜드를 뺀 26개국은 솅겐조약 조인국이다. 솅겐조약은 국경에서의 검문검색 폐지 및 여권검사 면제 등 인적 교류를 위해 국경철폐를 선언한 국경개방조약이다. 이에 따라 EU국민은 물론 여행객들도 자유로이 26개국을 넘나들며 여행할 수 있다. 주로 독일을 최종 목적지로 해서 움직이는 난민들도 이 조약 덕분에 여권 검사를 받지 않고 EU국가로 이동한다. 문제는 난민들의 목적지가 EU국가들 중에서도 부유한 독일과 스웨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난민들이 처음 유럽 땅에 발을 디디는 그리스는 난민을 수용할 형편이 되기는커녕 제 코가 석자인 위기상황이다. 난민들이 경유지로 삼는 체코공화국,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등도 경제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다. 따라서 최대 수백만 원의 비용을 들여 망명길에 나선 난민들이 기왕이면 부자나라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독일은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을 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기는 한다. 바로 더블린협약 때문이다. EU의 난민 처리 방식을 규정한 이 협약에 따르면 EU로 들어오는 난민은 그 난민이 도착하는 첫 EU 국가에서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헝가리에 대거 집결해 독일 행 기차를 타려고 대기하는 난민들을 독일에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더블린협약에 구애받지 않고 독일로 들어오려는 난민을 받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만약 유럽이 난민문제에 실패한다면, 유럽이 가진 보편적인 시민의 평등권과의 긴밀한 연결이 파괴될 것”이라며 통 큰 결정을 내렸다. 메르켈 총리의 이러한 결정에는 지난 8월 26일 발생한 끔찍한 참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오스트리아 쪽으로 약간 들어간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냉동트럭에서 71구의 부패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어린이도 섞인 이들 시체는 전원 난민으로서 인간 밀수꾼들에 의해 트럭에 태워졌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사건은 유럽을 온통 뒤흔들었으며, 이 사건 이후 며칠 안에 메르켈 총리는 ‘법과 규정을 초월한’ 난민 수용 결정을 내렸다.

지난 8월 하순 한 주에만 시리아 출신이 대부분인 난민 2만 명이 에게 해를 건너 빚에 허덕이는 그리스에 도착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난민 20만 명이 그리스 해안에 닿았고, 11만 명이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했다. 그리고 내륙국가인 헝가리에 난민 12만 명이 집결했다. 올해 상반기 난민들의 이동 과정에서 2500명이 주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메르켈 총리 “일단 수용한다”

독일 정부는 절박한 처지에서 독일로 몰리는 난민을 일단 수용은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들어올 난민을 죄다 감싸 안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EU 국가별 난민 수용 할당제다. 지난 7월 EU 장관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가운데 4만 명을 2년에 걸쳐 다른 EU 국가들로 분산 배정하는 문제를 협의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받겠소”라며 나온 제의를 모두 합친 것이 3만2500명에 불과했다. 장관들이 눈치싸움을 하고 있던 그 7월에만 그리스 해안에 새로이 난민 5만 명이 도착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이 직면한 난민 위기에 즈음해 EU국가들을 향해 “서로에게 대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난민 유입을 맞아 유럽에서는 오히려 외국인 혐오증이 대두하고 있으며 이 문제는 현재 EU의 최대 도전이 되고 있다. 9월 14일에 EU 장관들이 ‘난민 할당’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다시 회동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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