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이후 정·관계 권력형 부패사건 집중 수사
공직부패와의 전쟁… 청와대, 檢에 수사 강화 지시
[일요서울 | 장연서 프리랜서] 정부가 4대개혁을 통해 또다시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했다. 법무부는 최근 “김현웅 장관이 하반기에 부정부패 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김진태 검찰총장은 즉시 대검 간부회의를 통해 “진행 중인 여러 사건을 비롯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각종 수사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추진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
이에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김 장관이 부패 척결 대상 1순위로 공직비리를 꼽은 만큼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이 공직자, 특히 정치인에 대한 수사 등에 일제히 착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내사 중인 입법 로비 의혹 등 정치인 관련 수사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또 뇌물·불법정치자금 수수와 함께 공무원의 규제 권한 남용도 공직비리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사이비 언론이 기업인과 상인을 상대로 협박·갈취한 경우 중소상공인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범죄로 보고 수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 조세포탈, 국고보조금 횡령 등은 국가 재정을 해치는 범죄 유형으로 분류했다. 수임료 사기 등 법조계 비리도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상반기 1라운드 수사’에 이어 ‘하반기 2라운드 수사’를 대비한 인사를 지난 1일자로 단행해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 전력 보강도 끝낸 상태다. 특수1~4부에 부부장급 등 7명의 검사를 추가 배치했다. 부산·대구·광주지검 등에서 일하던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이동했다. 특수1부와 2부는 부부장급인 이주형(사법연수원 30기) 검사와 김경수(30기) 검사가 각각 배치돼 ‘팀제’ 운영이 가능해졌다. 수사 중인 사건 외에도 추가로 수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박근혜 정부는 전방위 개혁작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을 놓고 다양한 관측과 더불어 정치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황교안 당시 장관은 검찰의 포스코 수사 본격화에 맞춰 대기업 비리 등 부정부패 척결을 지시한 바 있다. 이 점에 비춰볼 때 법무장관이 검찰에 부정부패 수사 강화를 주문한 이상 검찰은 권력형 부패사건을 집중 수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작업이 정·관·재계 전방위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임기가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점과 20대 총선 정국이 맞물리면서 정부의 개혁의지는 어느 때 보다 강하다. 따라서 정치권을 비롯한 공직사회와 경제계에 고강도 사정드라이브와 함께 구조개혁 작업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척결해야 할 부정부패 유형으로 ▲공직비리 ▲중소 기업인·상공인을 괴롭히는 국가경제 성장 저해 비리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재정 건전성 저해 비리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일부 전문직역의 구조적 비리 4가지를 지목하면서 “유관기관과 협조해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특단 조치도 강구하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이는 개혁 작업과 관련, 청와대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음을 암시는 것이어서 향후 검찰의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현재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소환 조사와 방산비리 수사 그리고 농협 수사 등은 결국 뇌물 등 비자금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검찰의 정 전 회장 소환과 농협 비리 의혹 관련자 소환 및 구속 수사 이어서 방산비리 LIG넥스원 압수수색 등은 모두 그 칼끝이 모두 정치권과 관가를 겨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공천헌금 등 불법자금을 챙기려는 정치권 인사들과 여야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일부 공직자들에게 ‘칼끝’을 겨눈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이들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여권의 고위 인사인 K씨와 L씨 그리고 지난 정권 실세 중 한 명이었던 또 다른 L씨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검찰은 어느 하나 구체적인 결과물 없이 변죽만 울리고 있어 사정기관 주변과 정치권 등에서는 검찰이 권력의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포스코 수사의 경우 압수수색 이후 반년이 지나도록 장기화 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 뒷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정 전 회장 시간 벌어주는 것 아니냐”고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지경이다.
검찰은 정 전 회장에 대해 “혐의점이 상당하다”는 입장이었지만 6개월 만에 소환을 통보한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 전 회장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검찰수사에 대한 시선
검찰이 정 전 회장을 마침내 소환조사하자 이를 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포스코 수사를 마무리하는 수순”이라고 보는 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이제 본격화 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검찰이 정 전 회장에 대한 그룹 차원의 비호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현 경영진을 상대로 “포스코가 정 전 회장을 비호하고 있다. 포스코는 검찰이 불러 조사한 포스코 관계자들을 통해 수사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정 전 회장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작심발언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향후 포스코 수사가 강도높게 진행됨과 동시에 현 경영진에 대해서도 무차별 수사를 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포스코 수사 역시 정 전 회장의 윗선으로 판단되는 관가 또는 정치권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정 전 회장은 검찰이 불러들인 참고인·피의자 등을 통해 검찰의 포스코 수사 진행 상황을 이미 상세히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진술 내용과 검찰에서 요구한 자료내역 등을 정리해 정 전 회장에게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정·경 유착 몸통 잡을까
검찰이 불러 조사한 이들 포스코 관계자가 정 전 회장에 검찰 수사 정보를 전달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지난 6개월 간 조직적으로 정 전 회장을 비호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6개월 가까운 수사 끝에 포스코 수뇌부와 지난 정권 실세의 부적절한 거래 단서를 확보했다. 티엠테크의 실제 주인이 이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이자 포항사무소장을 지낸 박모(57)씨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특수2부 검사 전원을 투입, 티엠테크가 기존 협력업체의 납품 물량을 빼앗다시피 하며 성장한 배경에 정 전 회장이나 이 전 의원 측의 입김이 있었는지 집중 조사 중이다. 검찰은 박씨에 대한 소환를 통해 이 전 의원에 대한 직접 조사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이 횡령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 티엠테크 김모(54) 대표는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7월 25일 돌연 사임했다.
포스코 외에도 농협, 방산비리 수사 등이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의 방향을 놓고 여러 관측과 전망이 무성하다.
농협 수사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부진해지고 있어 머지않은 시점에 최원병(69) 농협중앙회 회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농협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NH개발의 협력업체인 H건축사 사무소 등의 실소유주 정모(54)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정씨는 NH개발과 농협중앙회 등이 발주한 시설공사 20여건을 맡아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50억 원을 횡령한 혐의다.
검찰은 정씨가 수의계약을 다수 체결한 정황을 토대로 농협과의 긴밀한 유착관계를 의심해 왔다. 검찰은 정씨가 경쟁입찰을 거치더라도 미리 입찰정보를 입수, 자신의 계열사가 낙찰받게 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씨의 건축사사무소에 최 회장의 동생이 고문으로 일했던 점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빼돌린 회삿돈이 최 회장 등 농협 수뇌부로 흘러들어갔는지 추가 조사할 방침이다. 또 검찰은 농협중앙회의 리솜리조트그룹 특혜 대출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 몸통은 건들지 못하고 깃털만 잡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검찰 전열 정비 대대적 사정
이와 함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7일 육군의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의 개발·도입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난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육군 중령 박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박 중령은 현궁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납품받은 장비가 계약사항을 충족시킬 정도가 아닌데도 허위로 확인서를 써준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등)를 받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현궁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2012년부터 작년까지 LIG넥스원 등으로부터 총 80억3000만 원 규모의 내부피해계측 장비와 전차자동조종모듈 등을 납품받았다. 내부피해계측 장비는 유도무기인 현궁의 파괴력을 측정하는 장치이고, 전차자동조종모듈은 현궁의 목표물인 전차에 장착해 자율 주행이나 원격 조종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다.
합수단은 내부피해계측 장비에 일부 부품이 빠져 작동할 수 없는데도 '양호'하다고 합격 판정을 내리고 납품사 측에 11억여 원을 부당지급한 단서를 확보했다. 전차자동조종모듈 세트도 7세트를 공급받았지만 박 중령 등은 11세트를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허위 작성한 것으로 합수단은 보고 있다. 납품 단가가 부풀려진 정황이다.
합수단은 지난달 15일 체포한 박 중령의 구속영장이 군사법원에서 발부되면 국방과학연구소와 납품사 간의 부정한 금품거래 의혹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의 특수수사 최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에 인력을 보강한 것은 법무부 장관 출신의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정 개혁 의지를 밝힌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검찰이 중간 인사를 통해 특수수사 인력을 보강한 것은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기획수사에 투입되는 화력이 약화됐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선 검찰청 특수부의 경우 차장검사와 지검장, 반부패부장을 거쳐 총장에게 보고가 되고 개별 사안에서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대처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휘 총 책임자가 지검장인 만큼 다른 지역의 인력을 끌어오기도 여의치 않다.
때문에 이번 인사는 앞으로 있을 대형 기획 수사에 대비해 미리 인력을 여유있게 투입해 일선 검찰청의 운
신의 폭을 넓혀주는 것으로 보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오는 12월 김진태 검찰총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나게 되면 10월 말에는 차기 총장 인선이 이뤄질 예정이다. 박성제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총장 후보군 중 한 명인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사정은 의외로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
올 하반기 사정은 공공부문 보다는 재계를 우선 겨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이뤄진 이른바 ‘관피아' 비리와 각종 국책연구기관의 공적자금 유용 등 공공부문 수사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 올해 대표적인 특수수사였던 포스코 비자금 수사와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는 장기간 수사를 벌였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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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서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