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슈틸리케 호의 순항…의심을 현실로 바꾼 ‘신의 한 수’
1년차 슈틸리케 호의 순항…의심을 현실로 바꾼 ‘신의 한 수’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5-09-14 10:04
  • 승인 2015.09.14 10:04
  • 호수 1115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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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브라질 월드컵의 충격으로 혼돈에 빠졌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하면서 리빌딩을 위한 시동을 건 지 1년이 됐다. 여전히 A매치팀은 공격에 대한 확실한 해법을 찾기에 고심 중이지만 1년간의 전체적인 경기력이 향상됐음을 아무도 의심치 않는다. 더욱이 슈틸리케 호는 이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며 월드컵 본선무대 진출 및 활약을 예고해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며 순항하고 있는 슈틸리케 호를 만나 본다.

22년 만에 레바논 징크스 깬 대표팀…압도적 공수능력으로 발돋움
경력이 발목 잡았던 슈틸리케, 스스로 가능성을 입중하며 환골탈태

▲ 기성용<뉴시스>
한국축구대표팀은 지난 10일 인천공항을 통해 2018 월드컵 아시아 2차 G조 예선인 레바논 전을 마치고 귀국했다. 특히 축구대표팀은 침대축구의 대명사인 레바논을 원정경기에서 3-0으로 무너뜨리고 승점 3점을 챙겼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3연승을 기록해 승점 9점을 올렸고 골 득실차에 따라 쿠웨이트를 누르고 G조 1위로 등극했다.

당초 레바논 전은 쉽지 않았다. 레바논은 FIFA랭킹에서 뒤처져 있지만 침대축구 등의 비매너적인 행태와 좋지 않은 잔디 사정 등 한국대표팀을 긴장케 만들었다.
더욱이 레바논 원정에서 한국은 22년간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정도로 지독히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앞서 브라질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조광래 호가 역전패 당하는 ‘베이루트 참사’를 경험하며 조광래 감독이 경질 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굳은 의지로 돌파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같은 슈틸리케 감독의 자신감은 단순한 호언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형 변화를 시도하며 레바논 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해 나갔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의 전형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줄곧 4-2-3-1 전형으로 전술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지난 9일 라오스 전에 이어 레바논 전에서는 4-1-4-1 전형으로 갖추며 더욱 공격적인 형태로 전환했다. 이는 전형적인 수비 위주로 경기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대의 밀집방어를 뚫기 위해서였다.

라오스·레바논 전
4-1-4-1전술

그의 선견지명은 정확히 맞아들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2선 공격수로 올라선 기성용(26·스완지시티)을 비롯해 권창훈(21·수원) 등은 레바논 전에서 터진 3골 모두에 기여했다.

전반 22분 기성용이 찔러준 패스를 받은 석현준(24·비토리아)이 페널티킥을 얻었고, 이를 장현수(24·광저우 부리)가 성공시키며 선취골을 넣었다. 또 전반 25분에 터진 상대 자책골은 권창훈이 중앙선에서부터 단독 돌파한 뒤 구자철(26·아우크스부르크)에게 밀어준 공을 상대 수비수가 걷어내려는 과정에서 나왔고 후반 15분 쐐기골은 기성용이 찔러준 패스를 권창훈이 오른발 터닝슛으로 마무리 했다.

▲ 권창훈<뉴시스>
2선 공격이 강화되는 대신 최종 수비라인 앞을 지키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도맡아 했던 정우영(26·빗셀 고베)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그는 레바논 공격의 1차 저지선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면서 상대 공격을 차단한 뒤 공격으로 전환하는 출발점 역할도 해냈다. 물론 이 같은 실험에는 정우영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지만 그는 그 이상을 소화해내며 기성용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자원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지난 1년간 공을 들여온 슈틸리케 감독의 전략은 선수들의 놀랍도록 향상된 체력을 실감케 하며 레바논 현지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현지 선수들을 압도하며 좀처럼 주도권을 내려놓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감독인 나로서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지배했다. 상대 뒷공간 침투도 잘 했고 좋은 플레이를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공적 실험
15번째 무실점

▲ 기성용 <뉴시스>
그는 또 “오늘 승리로 우리가 쿠웨이트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벗어났다. 만약 이기지 못했다면 쿠웨이트 원정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지만 그 부담감을 덜어냈다. 물론 쿠웨이트에 가서도 이기기 위해 경기를 할 것이다. 한결 부담을 덜어낸 것은 사실”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처럼 축구대표팀은 라오스와 레바논 2연전을 각각 8-0, 3-0이라는 결과로 대승을 거둬 최근 다소 부진했던 모습을 지우며 그간의 슈틸리케 감독의 실험이 성공적임을 입증했다.

당장 이번 2연전의 결과만으로도 슈틸리케 호의 성과물은 대단했다. 화끈한 공격력을 비롯해 점차 안정을 찾고 있는 수비도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슈틸리케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뒤 치른 총 20경기 중 15번째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발전 가능성을 키웠다.

이와 함께 새롭게 시도한 4-1-4-1 포메이션이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라오스, 레바논 전을 통해 막내 권창훈을 재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다. 권창훈은 기성용과 함께 중원에 전진 배치돼 나이를 잊게 만드는 활약으로 대표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라오스 전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레베논전에서도 후반 14분 쐐기골을 터뜨리며 2경기 연속 득점포를 가동했다. 특히 폭넓은 활동량과 날카로운 패스, 과감한 슈팅 등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이번 A매치 기간 권창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권창훈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잘해주고 있다. 아직 21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선수”라고 강조했다. 또 “때론 슬럼프가 온다 해도 앞으로도 잘 할 것이라 믿는 다”라고 평가했다.

무한경쟁
선수성장 원동력

축구대표팀의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불과 1년 사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슈틸리케 감독의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표팀을 맡으면서 유소년축구부터 대학축구, K리그까지 두루두루 관심을 보이며 한국 축구체계의 개조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이 때문일까 한동안 축구대표팀의 당연지사로 손 꼽혔던 유럽파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철저하게 능력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취임 일성을 통해 K리그 선수들의 모든 것을 파악한 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과 비교해 공정한 경쟁을 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라도 전력 외이거나 주전이 아니면 최근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주전들보다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 결과 안심하던 유럽 리그 선수들도 주전 자리를 잃을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해 경기력 향상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K리그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열심히 뛰면 대표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목표 의식이 생기면서 스스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덕분에 한동안 대체 자원을 발굴하지 못해 고심했던 한국축구에 최근 급격히 선수자원이 확충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내 축구 현장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선발하며 잇달아 신데렐라를 탄생시키고 있다.

그 첫 대상은 다름 아닌 이정협(24·상주 상무)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상주의 경기를 네 차례나 찾아가 지켜보면서 깜짝 발탁했다. 이정협이 이번 A매치 2연전에는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슈틸리케호 출범이후 줄곧 주전자리를 꿰차며 활약을 보이고 있다.

▲ 이재성 <뉴시스>

이정엽 외에도 이재성(29·전북 현대), 김승대(24·포항 스틸러스), 이종호(23·전남 드래곤즈) 역시 슈틸리케 감독의 오랜 관찰 끝에 발탁된 경우다.

여기에 끊임없이 선수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포지션 별 경쟁시스템은 새 얼굴을 속속 등장 시켰다. 대표적으로 정우영과 장현수 등 아시아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합류했고 최근 새롭게 스타로 떠오른 권창훈 역시 슈틸리케 감독의 의도한 경쟁에서 비롯된 성과물이자 이제는 대표팀 내에 자연스럽게 정착된 새로운 변화의 징표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럽파라고 주전이 보장되는 분위기가 아니다.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을 발굴해 경쟁을 유도한 것이 현재 대표팀을 강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의 만족감도 높다. 이재성은 “슈틸리케 감독님이 부임하신 이후 K리그를 많이 보러 오신다. K리그 선수들도 준비 많이 해서 경기력으로 증명하고 있다”며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 대표팀에서 뛸 수 있고 우리를 믿고 출전까지 시켜주시기에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멀티 플레이어로
효율 극대화

슈틸리케호의 또 다른 변화의 한 축은 멀티 플레이어의 성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멀티 플레이어 선호론자로 유명하다. 그는 “멀티 플레이어는 대회를 치르고 장기 일정을 보내면서 발생하는 부상 등 다양한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대표팀 대표 멀티 플레이어로는 박주호(28·도르트문트)와 장현수를 꼽을 수 있다. 박주호는 아시안컵에서 기성용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왼쪽 풀백까지 담당했다.

장현수는 중앙 수비수뿐만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 오른쪽 풀백까지 소화해내고 있다. 멀티 플레이어 행렬에 권창훈도 빠질 수 없다.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때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쓸 수 있다. 중원의 핵심인 기성용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붙박이지만 포메이션이 바뀌면 공격형 미드필더도 소화한다. 이번 레바논 전에서도 기성용의 전진 배치가 레바논의 수비를 압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냈다.

또 곽태휘(알 힐랄)는 중앙수비를 담당하지만 때에 따라서 원톱 스트라이커로 변신하는 멀티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있다.

멀티 플레이어를 향한 슈틸리케 감독의 의지는 더욱 확고하다. 이정협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 김신욱(울산 현재) 같은 전형적인 공격수 자원이 아닌 공격 수비를 모두 볼 수 있는 김민우(사간 도스)를 선발했다.

이는 원톱과 왼쪽 측면 공격수를 모두 맡을 수 있는 황의조(성남FC)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발이었다. 이밖에 라오스 전에서 큰 활약을 보여준 홍철(수원) 역시 왼쪽에서 측면 공격과 수비가 가능한 자원이다.

명장으로 진화하는
3류 감독 편견

▲ 울리 슈틸리케 감독<뉴시스>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축구대표팀의 면모를 볼 때 이전의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초 한국 사령탑을 맡을 때만 해도 과거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앞서 거스 히딩크를 비롯해 움베르트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르, 핌 베어벡 등 대표팀을 맡았던 외국인 감독들은 이미 수많은 업적을 쌓고 한국에 입성했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은 1989년 36살의 나이로 스위스 국가대표팀을 맡았지만 변변한 우승이나 상위권 경력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최근엔 카타르 프로 축구 1~2부를 오가는 등 유럽에서조차 외면 받았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행을 결정했을 당시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을 데려와 4강 신화를 일궈낸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덕분에 초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명장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해가고 있다.

물론 그가 1년간 이룬 14승3무3패라는 기록 중 17차례가 아시아 국가였고 FIFA랭킹 30위 이내 국가와 싸운 적은 지난해 10월 코스타리카 전(1-3패) 한 차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다소 불리하지만 과거 고비 때마다 경쟁력 부족과 수비 실수, 각종 징크스에 무릎을 꿇었던 과거를 돌아볼 때 슈틸리케의 운용 능력은 더욱 빛난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특히 이번 레바논 원정에서 22년 징크스를 깨트린 것만으로도 축구팬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선사했다.

부임 1주년을 맞아한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이끌어온 대표팀에 대해 “그동안 대표팀은 주전자리가 보장된 것이 아니라 많은 선수가 경쟁을 벌이면서 발전을 이뤄왔다”면서 “100점을 주겠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부임 후 20경기를 치러 14승3무3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둔 점이 만족스럽다”며 “월드컵 이후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했고 동아시안 컵에선 우승했다. 이 역시 선수들의 공이 크다”고 소감을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또 “앞으로 더 많은 경쟁이 있어야 발전이 있을 것”이라며 “선수들이 대표팀에 뽑히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열심히 뛰어준 덕분”이라고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에 대한 평가는 “각자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고 여유있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더 큰 무대로 나가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보다 수준 높은 팀과 경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야 한다. 유럽이나 남미의 팀들이 자신들의 일정 속에서 한국까지 원정 오기는 부담스럽다. 우리가 강호들과 맞붙기 위해서는 꼭 월드컵 본선에 나가야 한다”고 러시아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줄 마법 같은 전진에 대해 축구팬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편 축구대표팀은 다음달 8일 쿠웨이트를 비롯해 11월에 라오스, 미얀마 등 월드컵 예선이 계속된다. 또 대한축구협회는 2016년부터 강팀과의 평가전을 자주 잡겠다고 선언한 만큼 2016년에는 질적인 검증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한국축구를 만날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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