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살포해? 말아?”
“대북전단… 살포해? 말아?”
  • 이창환 기자
  • 입력 2011-03-21 15:45
  • 승인 2011.03.21 15:45
  • 호수 881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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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으로 빚어진 남북 긴장상태, 내부 갈등으로 심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번째 생일인 지난 2월 16일 오후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반북단체 회원들이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3대 세습 반대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삐라)을 날리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대북전단이 탈북자·보수단체와 진보·시민단체 간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 간 대립이 남남대립으로 번져진 것이다. 예전보다 민감한 북한의 반응에 남측 단체들은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격렬한 보복을 예고한 북한의 발언에 진보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무력도발과 지역경제 피해를 우려했다. 반면 탈북자단체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테러의 응징과 처단, 북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전단 살포가 지속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명 ‘삐라’라고도 불리는 대북전단은 2004년 남북합의하에 중단된 적이 있다. 하지만 몇몇 탈북자 단체에서는 그와 무관하게 대북전단을 끊임없이 북한에 살포했다. 대북전단이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매번 사용된 것이다. 붕괴 가속화와 리비아 사태 등으로 궁지에 몰린 북한. 이런 대북전단은 우리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살펴봤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탈북자·보수단체는 임진각 등지에서 8년 이상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납북자가족모임’ 등 20개 이상의 단체가 공개적으로 대북전단을 보내면서 대북전단의 의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들 단체는 진보단체와의 몸싸움도 불사하면서 대북 전단을 띄웠다.

지난달 북한의 “대북 심리전단 살포장소를 조준 타격하겠다”는 발표에 보수단체들은 “대북전단은 동포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로서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며 북한 측 발언을 맹비난했다.

탈북자 출신인 이민복 대북풍선 단장은 “2005년 이후 4억 장의 대북전단을 날렸다”며 “북쪽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진실을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탈북자·보수단체들이 날리는 대북전단의 효과가 북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었다. 북한의 경제난과 왜곡 날조된 정보를 대북전단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북자·보수단체들은 대북전단 살포를 멈췄을 때와 대북방송 확성기를 철거 했을 때의 후폭풍을 지적하면서 남한의 강점인 심리전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태 당시도 군과 정부는 대북심리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천안함 사태로 군사분계선 지역에선 6년 만에 1회 4시간 가량의 대북 심리전 방송이 재개됐고, 천안함 침몰의 진실과 국제소식이 담긴 대북전단이 뿌려졌다.

특히 연평도 사태는 대북심리전이 한층 강화된 계기가 됐다. 포격사건 직후 군과 정부는 대북전단 40만 장을 철원, 대마리, 연천, 김포에서 살포 했으며 이후 260만 장을 추가 살포했다.

대북전단에 대한 여당 내부의 움직임도 힘을 더했다. 지난달 김정일 칠순 생일에 한나라당 의원 9명과 7개의 대북단체는 대북전단 10만 장을 북으로 보냈다.

전단엔 ‘뚱땡이 공화국’, ‘인민들은 옥수수도 없이 토끼풀 뜯어먹으며 살아가는데’ 등의 문구를 사용하며 북한 권력 세습을 비난했다.

같은 날 20개 탈북자 단체들도 대북 전단지 20만 장을 추가로 살포해 북한을 압박했다. 이들 단체가 실은 내용은 김정일 3부자의 사생활 폭로, 남한과 비교되는 경제난, 천안함, 연평도 사태 등이었다. 최근에는 이집트와 리비아 독재정권을 김정일 정권에 대입했다.

대북전단은 비닐로 제작된 전단지 뿐 아니라 DVD, USB까지 다양했고 미화 1달러와 소형 라디오 등도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사용했다. 여당이 보낸 대북전단에는 GPS까지 장착돼 22개 풍선의 낙하지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날 살포 작전에 대해 한나라당 모 의원은 “대북전단에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 내용을 상세히 기재하는 것은, 북한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계획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공갈 협박이 두렵다

반면 대북전단을 중단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적 없던 일부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성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안보와 지역경제 문제가 대표적인 원인이었다.

진보단체들은 대북강경 단체들이 지원금을 위해 대북전단 사업을 하며, 국지전 충돌만 초래하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에 진보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은 다음달 9일까지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규탄 대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어버이연합 간부 모친 피살사건으로 중지됐던 대북전단 살포가 다시 진행된다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평통사는 “대북전단은 결코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임진각을 조준한다고 밝힌 상황에서의 대북전단은 주민들의 큰 피해로 직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평통사는 대북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강행할 것을 대비해 집회 신고와 무력저지까지 염두하고 있었다.

이에 파주시 일부 주민 단체들도 뜻을 같이 했다.

문산읍 이장단협의회와 임진각 상인들은 임진각이 대북전단 발원지이기를 거부하면서 파주시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임진각 인근에서 만난 상인 B(50)씨는 “북한으로부터 임진각 조준격파 발언이 나온 후로 외부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며 “대북전단이 지속되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발생할까 염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안전문제도 그렇지만 상인들은 당장에 들이닥친 현실적 고충도 털어놨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으로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는데 북한의 압력 때문에 관광객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인기를 끌었던 판문점 투어도 절반에 그쳐 임진각 내외의 일부 식당과기념품점은 영업을 중단했다.

임진각 거주자들은 전단 살포 그자체가 목적이라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하기를 바랐다.

지난 11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 4당 역시 이같은 여론에 힘입어 대북전단 살포중지 기자회견을 열었다.

야 4당은 기자회견에서 “파주시는 연평도처럼 작은 섬이 아니다. 36만 파주 시민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극단적인 대결은 중단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정부도 지난달 공개적으로 대북심리전을 전개한 군 당국을 질책하는 등 자제하자는 조짐을 보였다. 군과 여당이 너무 빈번하게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은 자칫 북한에 도발 명분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 같은 무차별적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에게 큰 위협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4일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들에 따르면 “대북전단을 신고하지 않고 본 김모(45·여)씨와 전단과 함께 날라 온 달러 등을 챙긴 윤씨(37)가 공개 처형 됐고, 이들의 가족 또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전단을 주우면 바로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어기고 돌려 보거나 소지하고 있다간 심한 처벌을 받는다.

대북전단을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북한은 남북장성급회담 북측단장을 통해 “체제붕괴를 노린 이 같은 행위는 무력화 공세를 통해 처단할 것”이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대북전단 살포 직전 피살 사건… 북측 소행?

대북전단을 살포하던 보수단체 사무총장의 어머니가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10일 오후 3시 20분쯤 서울 미아동의 한 가게 안에서 주인 한모씨가 숨져있는 것을 인근 상점 주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한씨는 머리에 상처를 입은채 엎드려 있었고 벽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해당 단체 측은 한씨의 사망에 테러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며 12일 임진각에서 가질 예정이었던 대북전단 살포 행사를 취소했다.

단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 사회의 성역인 북한과 기독교계 두 곳을 동시에 비판한 상황에서 일반인은 쉽게 알기 힘든 보수단체 인사의 가족 피살사건이 불거졌다”며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대북단체 차원의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가게에서 금품을 훔쳐간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닐 것으로 판단 50여 명 규모의 전단팀을 구성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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