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브로커 때문에 ‘탈북 난민’들 분통
악덕 브로커 때문에 ‘탈북 난민’들 분통
  • 김현지 기자
  • 입력 2015-09-14 09:47
  • 승인 2015.09.14 09:47
  • 호수 1115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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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국으로 떠나는 사람들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유럽이 난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닷물에 떠밀려 온 어린아이의 시신이 최근 발견된 데 이어, 헝가리의 한 여기자가 난민을 발로 차는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와 달리 ‘탈북 난민’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북한을 떠났으나 의도치 않게 제3국에 가게 된 탈북자들이나 한국에 정착했어도 생활이 곤궁한 이들 모두가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탈북 브로커(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도와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중간상)가 탈북 난민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본지는 이러한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익명의 탈북자들을 만나봤다.


한국 정착한 뒤 찾아와 계약금 독촉하기도
제3국 떠도는 난민들도 많아…인권 유린 심각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가 재입북을 시도했다. 8일 수원지검 공안부(부장검사 박재휘)는 재입북을 시도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탈북자 A(30)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6월18일 모스크바행 항공권을 구입한 후 러시아를 거쳐 북한으로 돌아가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천만 원의 빚 등 생활고에 시달려 재입북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1년 5월과 지난 2월에도 재입북을 시도한 바 있다.


일부 탈북자들이 국내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문화·경제 등 북한과 다른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A씨처럼 생활고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탈북 브로커들의 압박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의정부지방법원 김영기 판사의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탈북 브로커들이 탈북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송의 이유는 탈북자들이 브로커와 맺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탈북자들이 브로커에게 성사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면 탈북자들이 브로커에게 지불할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불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브로커와 맺는 계약이 애초에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 정착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은 브로커와 계약하지 않으면 탈북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브로커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 일부 브로커들은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을 이용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수원지검 공안부(부장검사 박재휘)는 사기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탈북자 B(44)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B씨는 2011년 5차례에 걸쳐 북한주민 21명의 탈북을 도와줬다. 2012년과 2013년엔 한국에 있는 탈북자 2명에게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들을 상대로 돈을 떼먹는 등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들 거액의 수수료 챙겨

탈북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은 브로커와 불공정한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청한 탈북자 C씨는 “탈북에 성공한 이들 중 대부분은 브로커를 통한 이들이다”며 “북한 내에서는 ‘탈북을 원하면 무조건 브로커를 끼워야 한다’는 말이 당연한 사실로 퍼져 있다”고 말했다. 일부 브로커들은 이런 사실을 악용한다.
일반적인 악행 중 하나는 브로커들이 탈북자를 상대로 지나치게 많은 계약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C씨는 탈북 당시 운 좋게 300만 원만 브로커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C씨는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이다. 2002년에 탈북해 한국에 먼저 정착한 딸이 브로커에게 300만 원을 준 뒤, 탈북을 도와줬다”며 “내 딸도 브로커와 1200만 원에 계약했는데, 이 돈을 갚기 위해 몇 개월간 아르바이트만 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 “탈북 하려는 여성들이 중국에서 강간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내 딸은 그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C씨의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기본 1000만 원 정도의 계약금을 약속하고 탈북을 시도한다. 한국이나 제3국으로 들어간 탈북자들이 계약금을 낼 여력이 없으면, 브로커들이 수시로 찾아가 탈북자들을 괴롭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일부 탈북자들은 브로커의 눈을 피해 도망을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탈북자들의 위치를 꿰고 있어, 그들이 도망을 다녀도 결국 브로커에게 잡힌다. 브로커들은 탈북자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통일부 소속 기관인 ‘하나원’을 통해 탈북자들의 주소를 알아낸다. 혹은 내통하는 탈북자 및 브로커들을 수소문해 탈북자를 찾아내기도 한다. C씨는 “하나원을 통해 알 수도 있지만, 브로커들과 탈북자들 간의 관계가 촘촘해 어떻게든 다 알고 찾아온다”며 “이 때문에 내 주변의 탈북자는 다시 북한에 들어가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특히 브로커들이 탈북자 몰래 떼는 ‘계좌이체 수수료’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 등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휴대폰으로 연락할 수 있다. C씨는 “김정은이 집권한 뒤부터 북한에 있는 며느리와 통화가 어렵지만, 그래도 북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근근이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지만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돈을 달라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며 “돈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브로커밖에 없는데, 이들이 돈을 전할 때 ‘수수료’ 명목으로 30-50%를 뗀다”고 언급했다.


2005년 C씨는 북한에 있는 며느리에게 500만 원을 보냈다. 자신의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이를 부탁했다. 얼마 뒤 며느리는 C씨와의 휴대전화 통화에서 돈을 잘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브로커를 통해 보낸 500만 원 중 며느리가 받은 돈은 250만 원이었다. C씨는 “돈을 전달할 때 탈북자 가족들은 브로커의 전화기로 통화한다”며 “브로커가 옆에 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말을 못한다”고 말했다. 수차례에 걸쳐 북한 가족에 돈을 보냈다는 C씨. 그는 이제 돈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브로커를 통해 보낸 돈이 북한 보위부에 걸려 뺏긴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브로커가 보위부에게 ‘돈을 건네는 현장’을 미리 알리는 경우도 있다. C씨는 “브로커가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보위부 사람을 매수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런 경우 브로커는 일부러 북한 주민을 볼모로 삼아 ‘현장을 걸린 척’ 연기를 한다”고 말했다. 추후 자신의 브로커 일을 계속하기 위한 것으로, 보위부 직원과 신뢰관계를 쌓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 혹은 북한에 남아있는 탈북자의 가족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베트남, 몽골 등 제3국으로 간 탈북난민들의 삶 역시 순탄하지 않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이다. 브로커마다 한국 정착 과정과 경로 등을 다르게 제시하기 때문에 ‘어떤 브로커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비참한 삶 연명하는 제3국의 탈북난민들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로 간 30대 여성 D씨는 한국에 정착하려는 꿈을 포기했다. 몇 년 전 D씨는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오는 경로를 추천한 브로커와 계약했다. 계약이행금은 정착을 한 뒤 갚기로 했다. 이후 D씨는 탈북에 성공했고, 동남아 국가에 잠시 머물렀다. 그 사이 D씨는 강간을 당해 아이가 생겼다. 한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생활비 및 양육비가 필요했던 D씨는 장사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하지만 계약금을 비롯한 빚이 쌓여갔고, D씨는 다시 북한으로 갈 결심을 했다. 하지만 이를 안 브로커가 다행히 D씨를 도와줬고, 결국 한국에 정착할 수 있었다.


제3국을 경유한 탈북난민들의 삶은 D씨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탈북난민들은 장사로 생활비를 벌거나 인신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 C씨는 “함께 탈북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동남아시아로 갔는데 그 사람은 결국 한국에 정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동남아 국가에서의 삶이 너무 어려웠다. 장사를 해도 잘 안 되다 보니 좋지 않은 일을 했는데, 이마저도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그 사람의 브로커가 한국으로 오는 비용을 따로 요구했기 때문에 빚만 쌓였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일부 악덕 브로커들은 북한에서 중국, 중국에서 제3국, 제3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오는 각 경로마다 계약금을 따로 받는다. 탈북자들이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와도 제대로 된 정착을 할 수 없는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더욱 삼엄해진 감시, 희망 없는 탈북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12월부터 북한 주민들에 대한 감시가 삼엄해지고 있다. 익명의 다른 탈북자는 “김정은의 집권 이후 중국과 맞닿아 있는 경계선에 CCTV가 설치됐다고 북한 주민한테 전해들었다”며 “CCTV를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한 뒤부터 국내에 정착하는 탈북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9일 통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수가 1396명(잠정집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치는 2011년 2706명의 절반 수준이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던 국내 정착 탈북자 수는 2009년 2914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12월 이후 탈북자 수가 큰 폭으로 줄었음을 보여준 통계다.


하지만 일각에선 탈북에 성공해도 정착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탈북자 수가 줄어든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이미 탈북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견해다. C씨와 D씨 등 일부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힘겹게 사는 탈북자 역시 탈북난민”이라며 “제3국을 떠도는 등 정착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탈북난민들을 위해 좀 더 관심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yon88@ilyoseoul.co.kr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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