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시즌 개막(9월 12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프로농구에 불어 닥친 악재들이 그칠 줄 모른 채 곪아가고 있다. 특히 올 시즌 재미있는 프로농구를 만들겠다고 외친 프로농구연맹(KBL)이지만 올 초 전창진 감독 사건을 필두로 연일 구설수에 오르며 농구팬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국가대표 선수인 김선형 선수까지 불법스포츠 도박 가담 의혹이 언급되면서 그 파장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전 감독으로 시작된 불법스포츠 도박 일파만파…리그 근간 흔들어
중징계로 뿌리 뽑겠다지만 정작 사건 해결에는 모르쇠…비난 들끓어
쳬육계 불법도박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날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대만에서 열리고 있는 윌리엄존스컵에 출전하고 있는 김선형(SK)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김선형이 프로 데뷔 이전인 대학선수 시절에 불법 스포츠토토 웹사이트에서 베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형은 2010년 한국대학농구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하고 2011년 서울 SK에 입단해 2013-2014, 2014-2015 연속 프로농구 올스타전 MVP를 차지한 스타 플레이어다.
이에 대해 경찰은 “현재 백지상태다. 김선형이 불법도박을 했다고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는 상태다. 소환 조사 이유는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서다”라며 “김선형의 가담 여부에 대해서는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혀 아직은 의혹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경찰 수사 도중 김선형의 이름이 흘러나온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재 2개의 큰 줄기를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김선형과 관련있는 이들이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대 선수 거론으로
쑥대밭
더욱이 문경은 SK 감독도 얼마 전 ‘피의자 소환’대상에 오르며 한 차례 충격을 준 가운데 국가대표 출신 선수에게 까지 파장이 미치면서 KBL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였다. 특히 전 감독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KGC인삼공사를 비롯해 SK까지 폭탄을 맞았고 다른 구단들 역시 전전긍긍하고 있다.
SK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에게 물어봤을 때도 (불법 도박을) 했다는 선수는 없었는데 다른 선수도 아니고 김선형이라 더 ‘멘붕’이다. 지금 대만에 있어 그 곳 시간도 있어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체크해봐야 한다”며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떠나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다.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다른 구단 역시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모 구단 관계자는 “우리 팀 선수들에게 물어봤을 때 (불법 도박을 한 적) 없다고 했는데 김선형의 경우를 보면 다시 재조사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며 잔뜩 겁먹은 모습이다.
전 감독 사건 이후 그간 전·현직 프로농구 선수들이 경찰로부터 불법스포츠 도박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가운데 최근 오리온스의 장재석, 동부 안재욱, KT 김현민 등의 실명까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단들은 선수들이 잇달아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선형까지 거론돼 또 다른 스타급 선수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경찰 발표시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건이 얼마나 확대될지 알 수 없지만 경찰이 개막 전 발표할 것으로 보여 우려하고 있다. 개막과 맞물릴 경우 올 시즌 흥행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 발표 후 사건이 대규모로 확대될 경우 리그 운영 자체도 삐걱거릴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일벌백계
가담자 선수생활 아웃
KBL은 이에 대해 발표시점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며 단호한 결단을 예고했다.
앞서 KBL은 2005년 TG삼보 소속이던 양경민에 대해 스포츠토토를 대리 구입한 혐의로 36경기 출전금지, 제재금 300만 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KBL 관계자는 “규정에 따르면 견책부터 제명까지 징계를 할 수 있다. 징계의 폭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재정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일부 선수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서 혐의가 입증될 때까지 일시 자격정지를 내리고 재판에서 유·무죄가 확정되면 영구제명 등 최종 징계를 내리는 방안 등을 폭넓게 논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KBL은 그간 합법적 스포츠토토뿐 아니라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통해 베팅에 가담한 남자 프로농구 관련자들에 대해선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온 만큼 이번 사건을 통해 유죄를 선고받는 선수는 영구 제명되는 등 선수 생명에 큰 치명타를 입게 돼 구단뿐만 아니라 선수들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KBL 징계와 별도로 남자프로농구 10개 구단은 선수들과 계약하면서 승부조작에 가담하거나 스포츠 관련 베팅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곧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해 놓았다.
실제 한 구단은 이미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선수에 대해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져 상당한 피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규모의 징계로 이어질 경우 리그 자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KBL 측은 사건의 경중에 관계없이 연루된 인원은 일벌백계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연맹 방관
책임 벗기 어려워
하지만 그들의 위상은 땅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일부 관계자들은 KBL이 안일한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KBL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김영기 KBL 총재는 지난달 31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단신 외인제도 부활과 경기 규정 변경 등 정말 재미있는 시즌을 치르려고 준비했는데 또 다시 불법 스포츠 도박 수사 소식이 들려왔다”며 안타까움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김 총재의 반응은 이미 사태를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되면서 KBL의 수장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기보다 구단과 선수들에게 맡겨놓고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전 감독의 경우 경찰 조사 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경찰이 이번 사건 수사에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문 감독 소환조사 역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KBL은 이와 관련해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않는 등 아쉬운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연이은 경찰 수사로 프로농구가 승부조작의 온상으로 전락했지만 이를 극복할 대응책조차 미비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판 커진 도박
아마시절부터 근절
한편 불법 스포츠 도박 관련 사이트들이 쇼핑몰로 위장하는 등 갈수록 지능화 되고 있어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3일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위탁·운영한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및 도박개장)로 사이트 총괄 운영자인 박모(45) 씨를 비롯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위탁자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여성의류 쇼핑몰로 위장해 도메인을 통해 접속하면 여성의류쇼핑몰로 보이지만 회원 가입 후 접속할 경우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로 바뀐다. 특히 이들은 페이지를 바꾸는 수법으로 그동안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으로 적발된 박씨 등은 2년간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30곳을 운영하면서 1354억 원의 베팅 금액을 대포통장 계좌로 챙겼다. 이들은 총 240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불법 스포츠 도박의 규모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관계당국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소 20조 원(추정)이 넘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합법적인 국내 스포츠토토 시장 규모는 년 2~3조 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발행하는 스포츠토토는 해당 종목 경기에 대한 베팅 금액을 최대 10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의 경우 베팅금액에 제한이 없어 ‘한탕’을 노리는 이들에게 달콤한 유혹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같이 다른 업종으로 둔갑해 단속에 걸린 사이트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벌써 2년 전에 이런 수법이 사용됐으니 곳곳에 둔갑해 있는 사이트가 더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법 스포츠 도박 근절을 위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선수들에 대해 관계자들은 “그간 불법 스포츠 도박 및 승부조작 혐의로 사법 당국의 처벌을 받았던 프로 선수 중 현업으로 복귀한 경우는 없다”며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아마추어 시절부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