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치이야기-27] 안철수의 미필적 고의
[알쏭달쏭 정치이야기-27] 안철수의 미필적 고의
  • 일요서울
  • 입력 2015-09-07 11:11
  • 승인 2015.09.07 11:11
  • 호수 1114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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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자적 관점 털고 차라리 신당창당 나서라
- 시한폭탄 정당 안철수 문재인에 돌직구 던져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필자는 지난 주 칼럼에서 새정연 혁신위가 실패했고, 그로 말미암아 야권신당의 출현은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역설한 바 있다. 그리고 야권신당 창당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이 역할 찾기를 모색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한 것일까?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인 성찰과 커다란 변화가 필요합니다”라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의 내용전개는 다음과 같다. 우선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음을 지적한 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한계를 탓하고 있다. 야당 정치인으로 당연한 성명의 수순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다른 야당 정치인과는 달랐다. 소속 정당 내부를 향한 쓴 소리를 이어갔다. 정부여당보다 더 큰 문제가 야당에게 있고, 야당이 국민들로부터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내년 총선도 2017년의 정권교체도 녹록치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마치 자신과는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제3자적 관점에서 자기 당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안철수 의원만의 독특한 상황인식이며 화법이다. 이러한 화법을 즐겨 쓰는 사람으로는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야당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낡은 인식과 행태를 과감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타성과 현재의 기득권에 연연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성찰과 쇄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놀랍도록 정확한 현실인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의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려는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그런 세력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큰 기득권이 되어버렸다. 그런 정당에서 자기성찰과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4.29 재·보궐선거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참담하게 패배’했다며 다소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것은 자신이 주도한 작년 7.30 재보선결과와 대비시키면서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함이리라. 새정연 혁신위원회에 대한 비판은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혁신안에 대해 국민의 관심과 공감대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 야당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민이 변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당의 혁신은 실패한 것입니다.’ 혁신위원회가 실패했음을 단언한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권력투쟁도 불사하는 현실정치인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순간이다.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회에게 친노패권주의를 청산하지 못하면 혁신이 아니라며 불만을 늘어놓는 당내 비주류처럼 혁신위원회에 대한 단순한 비판에 그쳤다면, 그의 진정성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원회를 비판하면서도 혁신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냈다. 당 혁신의 본질은 대안세력으로 거듭나는 체질 개혁이며, 과감하게 기득권을 내려놓고 낡은 인식, 낡은 정치 행태와 결별하는 것이라며, 혁신위원회가 위임되지도 않는 선거제도 개혁이나 의원정수 확대 등 맥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에 대해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의 일대 변화와 쇄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정풍운동’이나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야당 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며 선동정치도 불사하였다. 초선의원다운 거칠 것 없는 행보다. 물론 본인이 주도하는 정풍운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철수 의원은 나름대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정치인 그룹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의 큰 방향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가 낡은 진보의 청산, 둘째는 당의 부패 척결, 셋째는 새로운 인재의 영입이었다. 즉 기득권 보수를 이기는 첫 번째 길은 정권심판론이 아니라 낡은 진보의 청산이며, 야당이 도덕성과 부패에서 여당에 비해 절대 우위를 보이지 못 한다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고, 투사, 전사가 아닌 집권 대안세력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제시한 혁신의 큰 세 가지 방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적어도 새정연 혁신위원회가 하지 못한 혁신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새정연 혁신위원회가 혁신의 방향도 제시하지 않고 혁신안을 백화점에 나열하듯 남발하는 바람에 혁신안이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철수 의원은 혼자서 혁신위원 10명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지금 당내 흐르고 있는 적당한 봉합 국면,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과 흐름은 또 무엇입니까.’라며, 문재인 대표와 비주류의 가슴을 후벼파는 질문을 던졌다. 장문 성명서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적당히 봉합해서 폭탄돌리기의 폭탄이 돼버린 당의 상황에 대해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를 향해 던진 돌직구였던 것이다.

또한 무슨 명분으로 지도부에 복귀했는지 알쏭달쏭한 주승용 최고위원, 동교동을 등에 업고 호남민심을 왜곡하면서 사사건건 문재인과 대립각을 세우던 박지원 의원이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으면서 급 조용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밝히라는 것이다.

성명서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지금 당의 혁신이 제대로 된 혁신인지 국민께 의견을 공개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지금 당의 결정과 행보가 과연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더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탈당을 앞둔 정치인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선언문에 흡사하다. 뭔가 안철수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정치시계를 100일 전으로 되돌려보자. 애초 문재인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요청한 사람은 안철수 의원이었다. 안철수 의원은 진실공방까지 벌여가며 보기 좋게 거절했다. 혁신의 방향과 프로그램까지도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고사한 것은 당이 혁신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미필적 고의에 의한 당의 혁신 실패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9단 흉내를 낸 것은 아닐까? 어쩌면 더 큰 충격요법으로 정치권 전체의 혁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일까?

어쨌든 안철수 의원은 정치권에 입문한 지 불과 4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사람이다. 서울시장 선거, 대통령 선거, 신당 창당, 당 대표, 당 혁신 등 그가 시도했던 정치의 대부분은 실패했다. 그의 실패는 개인적 실패에 그치지 않고 야권 전체의 체력저하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기존의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만의 표출이었던 안철수 현상도 잊혀졌다. 이쯤 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 그것을 통한 수권정당 만들기, 그리고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제1야당에 대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새정연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접고 신당의 깃발을 높이 들어 야권의 재구성에 나서라. 
<김영필 전북대 겸임교수>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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