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소셜네트워크 김씨 기구한 인생유전 풀 스토리
한국판 소셜네트워크 김씨 기구한 인생유전 풀 스토리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02-15 13:04
  • 승인 2011.02.15 13:04
  • 호수 876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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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 가치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씨 신용불량자 된 사연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의 원조인 ‘아이러브스쿨’의 창업자로 승승장구 했던 김영삼(43)씨가 악재를 만나 주저앉고 만 사연을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담담히 털어놨다. 김씨가 지분을 매도했던 A기업 대표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지분매각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렸다. 설상가상으로 주식 매매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지난 10년간 김씨는 재도약을 위해 절치부심했지만 재기의 문턱은 턱없이 높기만 했다. 지난해 10월 A기업 대표가 귀국해 지분매각 분쟁에 대한 검찰 수사가 9년 만에 재개됐다. 김씨의 굴곡진 삶과 앞으로의 청사진을 들여다봤다.

1999년 카이스트 경영정보학과 박사과정 중이던 김씨는 두 명의 친구와 50만 원씩 출자해 총 150만 원으로 아이러브스쿨 사이트를 오픈했다. 아이러브 스쿨의 창업은 ‘학연에 기반을 둔 사이트를 만들면 큰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사이트는 제대로 된 디자인 없었던 데다 글자 이외에는 여백뿐이라 동양화 같다는 놀림 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신규 회원 수는 날이 갈수록 완만한 오름세를 보였다.


1년 만에 500억 원 가치로 평가받아

그러던 와중에 A기업에서 ‘40%의 지분을 넘기면 10억 원을 투자 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됐고 2000년 1월 4일에 A기업과 손을 잡게 됐다.

이후 아이러브스쿨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신규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2000년 6월에는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신규 회원이 가입했고, 8월에 들어서는 300만 명을 돌파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수십 군데의 투자회사와 대기업으로부터 인수제안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때 야후가 인수가격 500억 원에 아이러브스쿨을 매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야후에 회사를 매각하면 경영에서 물러나야한다는 점 등이 김씨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회사를 매각하기로 합의한 A기업이 돌연 매각 거부 의사를 표하는 한편 김씨에게 35억 원의 지급과 경영권 보장을 약속하며 회사 지분을 넘기라는 제안을 했다. 이에 김씨는 2000년 9월 7일 A기업과 주식매매계약을 맺게 됐다.

35억 원 중 3억5000만 원을 세금으로 지불하고 아이러브스쿨 추진시 ‘열매를 따게 되면 1%를 주겠다’고 약속한 직원에게 5억 원을 줬다. 가족들에게도 고급 승용차와 돈을 주고 투자 목적으로 상가와 집도 샀다. 하지만 달콤한 순간은 잠시였다.


신용불량자 낙인과 이혼… 계속된 시련

A기업은 김씨를 사내 결재라인에서 배재시키고 대외업무만을 맡을 것을 요구하는 등 경영권을 침범했다. 김씨는 “회사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아이러브스쿨 지분을 추가 매입해 대주주가 된 A기업과 갈등을 겪는 것 보다 학교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따는 것이 낫겠다고 마음먹고 사임의사를 전달했다.

사임과 함께 2001년 3월 A기업 대표와 매각 대금 74억 원을 받기로 하고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주식매매대금을 지급받기 전에 주식을 넘겼으나 A기업 대표는 지급기일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아이러브스쿨 지분을 다른 회사에 매도하고 해외로 도피했다. 김씨는 A기업 대표의 재산을 파악하기 위해 신용정보회사에 의뢰했지만 아무런 재산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김씨의 시련이 시작됐다. 김씨는 주식양도대금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음에도 매매계약에 따른 9억 원의 양도소득세를 부과 받은 것. 이후 50%의 미신고가산세와 75%의 지연이자를 더해 체납세금은 23억 원으로 불어났다. 그 중 5억 원이 추징 당하고 18억 원의 세금이 남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김씨는 2004년 과세처분 이후 아내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다 결별하게 됐다. 김씨는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려고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낙인 때문에 취업은 번번이 좌절당했다. 김씨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에 수차례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지난 10년에 대해 “인생 공부했다고 생각한다”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과도 같았던 아이러브스쿨을 떠난 건 아이를 낳고 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A사 대표가 9년간 영국에서 체류하다 귀국해 검찰 수사가 재개됐다. 하지만 김씨에 따르면 지분매각에 대해 A사 대표는 자신의 소유한 주식의 실제 주인은 A사이며 A사의 내부 반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명의를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 A사 대표가 해외로 도피하지 않았다면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직 검찰이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사건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재기를 위한 계속되는 도전

김씨의 재기를 위한 도전은 계속됐다. 김씨는 2005년 지인 두 명과 함께 커뮤니티 사이트인 ‘아이티아’를 만들어 재기에 도전했지만 참패를 맛봤다. 의욕을 갖고 추진했지만 2년 반 만에 사업이 좌절되고 만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지금의 아내를 통해 다시금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그는 인생 제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게임과 광고를 재미있게 엮은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한 사업을 중국에서 추진 중이다”라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중독성 없는 게임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씨는 “현재 투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름께 사이트 오픈을 해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10년간 인생 공부를 했으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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