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화되는 가족해체 사건 3제
갈수록 심화되는 가족해체 사건 3제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01-31 17:42
  • 승인 2011.01.31 17:42
  • 호수 875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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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예의지국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가족 해체가 사회문제화돼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 불황이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가정 역시 뿌리 채 흔들렸다. 핵가족화와 가정불화로 인한 이혼율이 증가했고 청소년 일탈도 심화됐다. 사회 속에서 가족 공동체가 일정부분 담당해주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자 사회 병리현상이 해가 갈수록 심각해져가고 있다. 잇따르는 가정폭력과 폐륜범죄, 친족 간 성폭력 등은 가족 해체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가족해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마을 주민들이 10대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가족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건너온 처제를 성폭행하며 이를 말리는 아내를 폭행한 철면피 남자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사건 [1]
한 마을 여중생 성폭행 주민 2명이 자살

가족처럼 지내던 한 마을 주민들은 물론 친척까지 가세해 10대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이 일고있다.

경남 밀양의 시골 마을이 10대 여중생 성폭행 사건으로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워졌다.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성 가운데 1명이 여중생의 친척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성폭행한 혐의가 있는 70대 남성과 50대 남성 두 명이 음독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시골 마을은 채 10가구가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 이웃 간 모두 한 가족처럼 지냈다. 하지만 마을 남성 두 명과 여중생의 친척 한 명은 짐승으로 돌변해 A양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됐다. 믿을 수 없는 이 범행에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11월 학교에서 집으로 귀가해 쉬고 있는 A양에게 B(57)씨가 찾아왔다. 평소 같은 마을에 살며 잘 알던 사이였던 터라 A양은 경계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A양의 부모님은 농사일 때문에 밖에 나가 있었다.

B씨는 A양의 집에 자신과 A양 단 둘만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A양을 쓰러뜨렸다. B씨는 A양을 성폭행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A양을 내버려 둔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A양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짓밟힌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할아버지처럼 따르던 70대 노인 C(70)씨가 A양을 유인해 성폭행하고 만 것이다. A양에게 이 일은 불과 한 달 사이에 잇따라 일어난 것으로 A양의 가슴 속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A양은 가족처럼 믿고 따르던 동네 주민들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부모님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채 끙끙 앓아왔다.

결국 마음의 짐을 견디다 못한 A양은 청소년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A양은 상담 후 부모 동의를 받아 시설에서 보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곧장 수사에 착수했고 조그마한 시골마을은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A양을 성폭행한 용의자로 B씨와 C씨가 지목됐다.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나 A양의 부모는 물론 마을 주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가까운 마을에 사는 A양의 친척 D(57)씨도 A양을 성폭행했다고 경찰에 A양이 진술한 것.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모는 경악했다. D씨는 A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B씨와 C씨, D씨는 서로의 범행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B씨와 C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씨는 지난 1월 10일 고추밭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해 치료를 받아오다 같은달 20일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수사를 받기도 전에 음독자살을 했다. 경찰 조사에 겁을 먹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C씨도 같은달 19일 집에서 부인과 함께 극약을 마셔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C씨는 치료를 받아 오다 3일 후인 21일 숨졌다. 현재 C씨의 부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고령에다 지병이 있어 불구속 입건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왔다.

경찰관계자는 “B씨와 C씨가 소문이 퍼지자 자신들의 몹쓸 짓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평화로웠던 마을이 이번 사건으로 흉흉한 분위기다”고 말했다.


사건 [2]
가정폭력이 불러온 패륜

상습적인 가정 폭력에 시달려 오던 대학생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 1월 25일 술만 마시면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아들 손모(27)씨를 존속살해혐의로 검거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손씨 아버지(59)는 술만 마시면 상습적으로 아내와 두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같은달 23일에도 만취한 손씨 아버지는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이를 목격한 손씨가 만류하다 함께 폭행을 당했다. 손씨 아버지는 손씨를 손찌검하며 “자식이 대든다”며 격분했다.

다음날 손씨는 소주 한 병을 들고 아버지 방으로 찾아갔다. 화해를 하기 위해 말문을 열었지만 곧 언성이 높아져 싸움으로 번졌다. 아들의 화해 손길을 내친 아버지는 “자식이 부모를 훈계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손씨는 억눌러 뒀던 속내를 털어놨다. “왜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느냐”“우리 가족도 다른 가족들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 것. 하지만 이내 몸싸움으로 번졌고 한 시간 가량 엎치락뒤치락 다투게 됐다.

손씨의 아버지가 목을 누르자 손씨는 우발적으로 소주병을 깨뜨려 아버지의 목을 찔렀다. 가정 불화가 빚은 참혹한 결과였다. 결국 손씨의 아버지는 숨졌고 손씨는 아연실색한 채 시신 옆에 넋 놓고 주저앉아 있었다.

당시 어머니와 맏아들은 외출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맏아들이 신고해 손씨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방안에는 손씨의 아버지가 마시던 소주 5병이 남아있었으며, 검거된 손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로 직업이 없으며 20여 년 동안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휘둘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3]
가족 앞에서 10대 처제 유린

10대 처제를 강간한 인면수심의 형부도 있었다. 베트남 국적의 10대 처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50대 형부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유상재)는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및 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52)씨에 대해 징역 7년 6월을 선고했다고 지난 1월 25일 밝혔다.

타국으로 시집간 언니를 줄곧 그리워하던 처제 베트남인 A(당시 18살)씨는 2008년 5월 어렵게 한국을 찾게 됐다. 2003년 3월 김씨와 화촉을 밝혀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언니 B(26)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언니와 행복한 재회를 꿈꾸던 A씨는 베트남에서 입국하자마자 악몽과 마주하게 됐다.

공항에 마중 나온 형부 김씨가 B씨의 기대는 물론 삶도 산산조각 내고 만 것이다. 김씨는 A씨를 화물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던 중 용인시 야산으로 끌고 가 갑자기 힘으로 제압했다. 김씨는 반항하는 A씨를 수차례 폭행해 억압한 후 차 안에서 유린했다. A씨는 입국하자마자 당한 일에 누구한테도 호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부터 김씨는 주먹을 쥐어 보이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네 언니를 죽이겠다”거나 “불법 체류자로 고발해 베트남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윽박지르며 수시로 A씨를 성폭행했다. 고통스러운 날은 계속 이어졌다. A씨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전전긍긍하며 김씨에게 끌려 다녔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지난해 8월, 김씨가 A씨의 팔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B씨가 목격한 것이다. 불안한 예감이 스친 B씨는 방문이 잠겨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창문 밖에서 소리치며 김씨의 성폭행을 저지했다.

이에 밖으로 나온 김씨는 마당에 있던 둔기를 집어 들어 아기를 안고 있던 B씨를 수차례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불행은 계속 이어졌다. 급기야 지속적 성폭행을 당한 A씨는 임신을 하게 됐고 출산 후 언니가 A씨의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됐다.

김씨는 이 같은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데만 급급했다. 김씨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을 뿐 A씨를 협박하고 폭행해 강간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B씨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맞지만 위험한 물건이 아닌 나무빗자루로 때린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특히 언니와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 김씨와 방안에 들어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친족관계에 있는 A씨를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아 수차례에 걸쳐 강간하고 이를 말리는 B씨를 위험한 물건으로 폭행하여 상해를 가한 사안으로 죄질이 매우 중하다”며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B씨와 돈을 벌기 위해 형부의 나라에 온 A씨에게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줬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가족해체 가속화

2명 중 1명, 배우자의 부모 가족 아니다

가족 해체현상은 최근 여성가족부의 통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행 민법 제779조에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가족의 범위가 규정되어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0월 대구대학교와 닐슨컴퍼니코리아가 전국 2500 가구, 만 15세 이상 47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뤄진 ‘제2차 가족실태조사’결과를 지난 1월 24일 공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가족 범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으로 여긴다는 응답자는 2005년 1차 가족실태조사 당시의 79.2%에서 크게 떨어진 50.5%에 그쳤다. 또 배우자의 형제 자매를 ‘우리 가족’의 범위로 보는 인식도 54%에서 29.6%로 급감했다.

자신의 부모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1차 조사 때의 92.8%에 비해 급감한 77.6%에 그쳤다. 형제, 자매를 가족의 범주에 넣는 비율도 1차 조사 때의 81.2%에서 63.4%로 급감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부모와 시부모, 장인, 장모,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핵가족에 대한 인식이 보다 견고해 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뿐만 아니라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를 가족으로 여기는 자녀들은 1차 조사 당시 63.8%에서 훨씬 줄어든 23. 4%로 집계됐다. 친손자녀를 가족에 포함시킨 응답자도 26.6%에 그쳤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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