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차 재테크’ 성행…‘업자’ 아닌 직장인들도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도로 위의 흉기로 불리는 일명 ‘대포차’2만 5천여 대가 전국을 무단질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7월 말 기준 전국적으로 대포차 2만 5741대가 신고됐다. 경찰 등 일각에서는 대포차를 전국 12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자동차 명의자가 자신의 차량이 대포차로 이용되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등 ‘불법명의 자동차’ 신고 차량이 2만 5천여 대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조금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포차의 실태를 추적해본다.
대포차란 합법적인 명의 이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으로 거래해 실제 운전자와 등록상 명의자가 다른 차량을 뜻한다.
대포차 신고차량은 경기지역에 6209대로 가장 많고, 서울에는 4509대, 인천 2052대, 부산 1777대, 경남 1573대 순으로 집계됐다.
대포차는 각종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고, 사고 시 보험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으며 자동차 실제 명의자에게는 각종 세금·과태료·범칙금이 부과돼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올해 7월 말 기준 단속된 차량은 1696대로 대포차 신고차량 대비 6.5%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은 “대포차는 과속, 신호위반, 뺑소니 등 1대 당 법규위반 건수가 평균 50건을 상회할 정도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도로 위 흉기”라며 “단 1대의 대포차도 도로 위에 다닐 수 없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다면 대포차는 어떤 경로를 통해 매매가 이뤄지는 것일까?
유명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서 2013년식 외제차를 싸게 판다는 글을 보고 연락해봤다.
대포차 판매업자는 “(명의) 이전 안 하고 그냥 타는 차다. (중고차로 사려면) 원래 3천만 원 가까이 하는데 저희는 1천2백만 원에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명의이전 안 된다는 건 대포차란 얘기고 찻값이 싼 이유는 리스를 이용했거나 할부로 샀다가 급전이 필요해 팔아넘긴 장물 등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중고차 거래 사이트를 통해 대포차를 불법매매해온 혐의로 81명이 무더기 검거됐는데, 대포차 전문 거래 업자는 24명뿐, 나머지는 회사원이나 자영업자 같은 일반인들이었다”며 “외제차를 헐값에 탈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어서 돈벌이 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고가의 외제차인 대포차를 정상가의 30~40% 선에 산 뒤 직접 몰다가, 구매자가 생기면 되파는 수법 등을 썼다. 한 번 거래할 때마다 50만 원에서 300만 원가량의 차익을 챙겼다.
지난 4년여간 이들이 거래한 대포차량은 1300대가량, 거래가가 665억 원 정도나 된다.
경찰은 대포차 17대를 압수했는데, 나머지 차량들은 이미 여러 차례 거래된 뒤여서 행방을 찾기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조폭끼리 뭉쳐”…수백억 원대 대포차 유통
얼마 전 수백억 원대의 대포차를 유통해온 조직폭력배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김모씨 등 수도권과 대전지역 8개 조직 소속 폭력배 19명은 지난 2013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370억 원 상당의 대포차 1천100여 대를 유통해 42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통된 대포차는 주로 도박장 채무자들의 담보물이거나 신용불량자가 구입 후 목돈을 받고 되판 뒤 잠적해 시중에 나온 매물이었다.
김 씨 등은 외제차나 국산 고급차량인 대포차를 중고차 시세의 40% 수준에 구입해 10%가량의 웃돈을 붙여 외국에 서버를 둔 불법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유통했다.
또 판매가 지연돼 값이 떨어지는 대포차는 서로 매입해주는 등 폭력조직들이 상호 협력관계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유모씨 등은 김 씨 등으로부터 대포차 200여 대를 구입해 차량을 불법 폐차한 뒤 부품을 고가에 유통하거나 차량을 밀수출해 수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외에도 빌린 고가의 수입차를 '대포차'라고 속여 헐값에 팔았다가 다시 빼앗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월 2일 오전 5시께 대구 서구 모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대포차 유통업자 김모(23)씨에게 벤틀리, 마세라티 등 고급 수입차 2대를 대포차라고 속여 현금 2천500만 원에 넘긴 뒤 현장에서 곧바로 빼앗았다.
이들은 김 씨가 대포차 거래를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는 약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명의 빌려 리스…시중 유통·해외 밀수출
또 다른 외제차 판매업자 한모씨 등은 지난 2013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시가 백억 원에 달하는 수입차 165대를 다른 사람 명의의 리스 차량으로 출고하는 수법으로 시중에 유통하거나 해외로 밀수출했다.
이들은 총책과 모집책, 출고책, 자금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유령회사를 설립해 범행을 저질렀다.
모집책은 “렌터카 사업에 사용할 외제차를 구하려는데 명의를 빌려주면 5백만 원을 주겠다"는 식으로 급전이 필요한 지인들에게 명의를 빌렸고, 출고책은 이 명의를 사용해 리스회사에서 외제차를 출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리스회사 심사규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통장거래명세서 등을 위조해 리스회사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출고된 외제차는 유통책인 사채업자에게 차량 가격의 약 50%에 넘어갔으며, 유통책은 이런 외제차를 대포차로 시중에 유통하거나 해외로 밀수출했다.
이들은 고가의 수입차량을 리스로 계약할 때 영업사원에게 지급되는 영업수당과 자동차 회사 자체 프로모션 금액으로 초기 자본금 없이 리스 보증금 납부가 가능한 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출고책 정모씨는 백 대가 넘는 차량을 출고하면서 자동차회사로부터 최우수 판매왕으로 선정돼 분기당 천만 원의 성과급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명의 도용 피해자 43명은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리스료를 내지 못해 가압류를 당하거나 리스회사로부터 민·형사 고소까지 당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대포차로 넘어간 자신 명의 차량을 회수하려고 유통책을 찾아갔지만 유통책은 "명의를 대여한 것도 잘못된 것이니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차를 해외로 밀수출하겠다"고 협박해 최대 5천만 원을 추가로 챙기기도 했다.
경찰은 대포차 피해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유통방법도 지능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대포차 구매자 등 가담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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