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AIG가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nternational Financial Center·이하 IFC) 매각작업으로 ‘먹튀(먹고 튀었다)’ 논란에 휩싸였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동북아 금융허브’ 계획이 실패함에 따라 혜택만 받고 떠난다는 것이다. 앞서 AIG는 서울시로부터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법정최소임대료만 수납하는 등의 특혜를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AIG는 론스타 사태 이후 최대의 외국계 먹튀가 될 것이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과도한 특혜를 제공받아온 AIG에게서 특혜를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혜논란 여전…“회수 절차 필요하다”
부동산금융 업계에 따르면 IFC 건물의 소유주인 AIG는 최근 미국 투자은행(IB) 업계에 의뢰해 매각전략 컨설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AIG 측도 매각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IFC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 계획을 발표하고,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여의도에 아시아 국제금융 중심지를 만들겠다고 공표한 뒤 탄생했다.
이 때 AIG 글로벌부동산은 IFC 시공사로서 서울시와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IFC는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는 것에 실패했다. 당초 목표로 한 아시아 지역 본부급의 외국계 금융기관 유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기존 외국계 금융사의 한국지사 몇 곳만이 IFC로 옮겨왔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가 부산광역시를 새로운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각시키는 등 서울의 금융 중심 기능이 약화됐다.
또 지역 균형발전을 이유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와 우정사업본부를 지방으로 이전시켰다. 외국계 금융기관을 끌어들일 유인책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서울을 떠난 것이다.
이런 가운데 AIG가 IFC 매각작업에 들어가자 외국계 자본의 ‘먹튀’라는 시선이 짙어지고 있다. 동북아 금융허브란 계획이 실패한 것은 물론, 이 계획 때문에 받아온 특혜와 시세차익만 챙긴 채 떠난다는 비판이다.
우선, AIG는 공사가 진행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동안 서울시로부터 땅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완공 후인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법정최저임대료인 공시지가의 1%만 내고, 2018년 이후에 나머지 금액을 정산하는 형태로 계약했다.
뿐만 아니라 99년간 토지 임대를 보장하고, 이후에는 건물을 기부 채납하게 했다.
떠나려는 이유는
이 같은 계약 항목은 ‘과도한 혜택’이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AIG의 초기 임대료 부담이 과하게 낮춰져 있으며, 99년간 토지 임대를 보장한 이후 건물 노후화로 가치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초기 임대료 부담이 낮은 것으로 인해 AIG가 외국계 금융기관 유치에 공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굳이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IFC는 현재에도 70%가 넘는 공실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AIG는 IFC 운영에 있어서 불공정 계약서 등의 갑질문제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AIG가 각종 혜택만 받고 논란을 남긴 채 떠난다는 비판을 받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AIG는 매년 임대료를 최소 5% 이상씩 올리고, 연매출이 2년 연속 기준치에 미달하면 해당 점포를 쫓아내며, 계약해지를 요구하면 수억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내용의 계약서를 상인들에게 요구해 문제가 됐다.
결국 AIG는 2013년 건물 입점 상인들에게 과도한 임대료와 위약금을 요구한 ‘불공정 계약서’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각종 논란을 낳은 AIG의 IFC 매각 배경은 최근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분양 분위기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저금리와 각국 중앙은행들의 경기부양책으로 상업용 부동산의 인기가 높아졌다”며 “2·4분기 런던, 홍콩, 오사카, 시카고 등 전세계 오피스텔빌딩이 역대 최고가에 거래됐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다가온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경우, 부동산 시장의 거래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AIG 입장에서는 상업용 부동산인 IFC를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적기를 맞이한 셈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AIG는 IFC 매각으로 최대 1조 원 이상의 차익을 남길 전망이다. IFC 건물 다섯 개 동 전부의 매각가는 최대 3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AIG에게 제공한 과도한 혜택을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목표달성을 위한 혜택 제공이었으므로 목표달성 실패에 따른 책임과 회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2조5000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사라진 론스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임대료 등에 대한 회수 절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AIG 측은 “시장경제에서 투자를 회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국민연금이 영국 런던의 HSBC본사 빌딩을 매각해 9600억 원의 수익을 거둔 것처럼 투자자가 매각을 고려한 투자를 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AIG는 서울시와 2016년 1월 1일부터 IFC 다섯 개 건물을 매각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 이번 매각에 대한 법적인 문제는 없다.
하지만 동북아 금융허브 계획 실패와 그동안 제공 받아온 혜택으로 인해 시세차익만 남기고 떠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