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취재] 김정은 극비 지시사항 있었다
[심층 취재] 김정은 극비 지시사항 있었다
  • 황정현 프리랜서
  • 입력 2015-08-28 20:32
  • 승인 2015.08.28 20:32
  • 호수 1113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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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지 도발 뒤 숨겨진 무서운 속내

북한 침략·협상 시나리오 치밀하게 진행
미 정보국 “향후 더 큰 사태 올 수도” 경고

[일요서울 | 황정현 프리랜서] 북한이 이번 8.25 남북합의를 위해 ‘도발부터 합의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단 협의과정을 살펴보면 이 같은 정황이 역력하다. 북한은 지난 20일 포격 도발을 감행한 뒤 불과 한 시간 만에 정반대 메시지를 담은 2통의 전통문을 동시에 보냈다.
하나는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의 대화 제의이며, 다른 하나는 “48시간 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인민군 총참모부의 최후통첩이었다. 이 전통문들은 우리 군이 대응 포격을 하기도 전에 남측에 전달됐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북한이 남측과 접촉하기 위해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측이 대화를 제의하도록 무력을 동원해 유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북한은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원하는 남측 요구를 받아들였고 통전부장과 통일부 장관을 같은 격으로 인정했다.

고위급 접촉이 시작되자 북한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 고성과 설전이 오가는 협상이 진행될 경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협상 태도를 보였다.

북한은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던 포격 도발에 대해서도 책임을 인정하며 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 간 노력을 명시한 ‘8·25 합의’에 성공했다.

남북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조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자 결국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남측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극단적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으로 긴장을 고조시켜 북·미대화를 유도했던 과거 패턴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한반도를 전쟁 직전 일촉즉발 상태로 몰아넣은 북한의 극단적 전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조준한 확성기 방송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 서부전선 최전방 일대에 전파된 확성기 방송은 ‘자신감을 잃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독재자’로 김정은을 묘사하고 규정했다.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만 3번이나 방문했는데, 김정은은 3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순방은커녕 외국 관광조차 못했다”며 “나이 어린 김정은이 외국 정상들 앞에서 홀대받을 것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또 확성기 방송은 김정은과 함께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외에 무력도발에 대해 치사한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또 우리 시장민주주의 체제와 발전상, 중산층의 생활을 소개하고 음악을 들려줬다.

특히 북한은 또 한국과 미국이 핵심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출동시키는 것을 협의한다는 소식에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무력도발 이후 한ㆍ미는 현재 한반도 위기 상황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면서 미군 전략 자산의 투입 시점을 탄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을 북한에 알렸다.

김정은 움직인 미국 전략무기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출동시킬 전략자산은 미국의 B-2 스텔스 폭격기, B-52 전략폭격기, 원자력 추진 공격용 잠수함, 항공모함 전단 등이다. 한ㆍ미 양국은 북한이 과거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을 때 이들 전략자산을 배치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했다.

북한은 핵심전략무기 중 특히 B-52와 B-2를 경계해, 이들 전략무기가 한반도 주변에 출현하기만 해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군이 지난해 2월 초 B-52 전략폭격기를 서해에 띄우자 북한은 미국이 대북 ‘핵타격 연습’을 했다며 반발했다. 올해 2월 미군 핵추진 잠수함 올림피아호가 진해 군항에 입항했을 때도 북한은 “위험천만한 전쟁 기도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남북 고위급 접촉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전략폭격기인 B-52의 한반도 전개를 예고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위협 수위가 심상치 않았다는 점도 북한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맹방인 중국의 비난도 북한을 압박하는 요인이 됐다. 중국은 지뢰ㆍ포격 도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을 압박했다. 중국은 남북 군사긴장이 고조된 것과 관련해 “(9월 3일 베이징에서 전쟁승리 70주년 기념행사로 열릴) 열병식에 실질적인 간섭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국은 무관심할 수 없다”며 위와 같은 대응 방침을 표명했다.

결국 북한은 지난 25일 남북 공동보도문을 통해 지뢰 도발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사실상 이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의 첫 사과다.

이에 북한이 ‘유감 표명'이라는 이례적인 결단을 내리게 한 압박 요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우선 지뢰 도발 사건에 대한 확실한 사과 없이 확성기 방송 중지는 없다는 우리 측의 분명한 원칙이 이 같은 결과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은 그간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북한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지난 10일 우리 군이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한 보복조치로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김정은은 ‘대북 방송은 반드시 중지시켜라’는 지시 외에도 별도의 특별지시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대표가 별도의 지시를 받고 협상에 돌입했을 것이라는 소리다.

남북 간 접촉이 시작된 당일에도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는 등 북한의 추가 도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지만 북한이 이 부분 외 별도의 안건에 더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 그 근거다. 말하자면 대북 방송보다 협상안에 포함된 김정은의 지시사항 전달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도발 통한 북한의 소득

이번 합의로 인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소득’도 협상을 타결로 이끈 요인이 됐다.
남북은 이번에 도출한 ‘공동보도문’에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겠다고 명시했다.
민간 교류 활성화는 북측의 입장에서도 이익이 많은 합의다. 북측은 김정은 체제 들어 강화하고 있는 산림복구나 관광사업 등에 있어 우리측과의 교류로 전체적인 사업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 북한은 그간 꾸준히 요구해온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에 대한 논의를 향후 진행할 가능성을 열게 됐다. 이번엔 우리측에서 논의를 거절했지만, 이번 회담으로 남북이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추후 진행될 당국 회담에서는 금강산 사업뿐 아니라 5·24 조치 해제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이 뒤에 숨긴 노림수를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고 당국 간 대화채널이 복원될 것으로 기대되나, 남북관계 불안요인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남북 고위급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전문가로 꼽히는 래리 닉시 박사는 “남북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SR)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래리 닉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위원은 지난 7월 27일 “협상 타결로 첨예했던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된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북한 측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닉시 연구위원은 “북한은 체제유지와 남한에 대한 우월성 선전 그리고 주한미군 축소 등을 목적으로 위협과 도발을 계속해왔다”면서 “이 같은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향후 위협과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김정은 스타일이 과거 스탈린 행동양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단호하고 결연한 대북정책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가장 큰 변수는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북한이 위성발사를 명분으로 또다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할지 여부다.

중대 변수 여전히 존재

한 대북 전문가는 최근 “현재 가장 큰 돌발 변수는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이라면서 “(10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준비가 한창일 때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징후가 포착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상봉 행사 자체가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대북 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근거해 차분하게 남북관계를 관리한다는 입장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당국회담 개최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하나하나 쌓아가겠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남북관계에 대형 악재가 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준비하는 구체적 동향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지난 7월 21일과 8월 13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동창리 발사장 내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아직 발사준비 징후가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준비 움직임은 통상 발사일 3주 전부터 감지된다는 점에서 9월 중순부터는 장거리 로켓 발사대가 위치한 북한 동창리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금껏 인공위성을 빌미로 수차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왔다.

일각에서는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DMZ 지뢰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까지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에 장거리 로켓 발사를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의 최근 돌출행동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복수의 미국 관리는 CNN에 미군 지휘관들과 군사 전략가들이 지난 며칠 동안 어떤 종류의 미군 병력이 유사시 한반도에 필요한지, 북한의 어떤 군사행동에 미군이 대응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들 관리는 북한의 최근 병력증강 실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남북 회담에서 일단 합의가 이뤄진 이날 이후의 상황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ilyo@ilyoseoul.co.kr 

황정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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