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밀집도 세계 최고, 강소국 이스라엘
첨단기술 밀집도 세계 최고, 강소국 이스라엘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8-28 18:50
  • 승인 2015.08.28 18:50
  • 호수 1113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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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벤처캐피털, 한국을 아시아 거점으로 선정
요즈마 그룹, 3년간 1조 원 투자하기로 결정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이스라엘 최대의 벤처캐피털(VC) 요즈마 그룹의 이갈 엘를리히 회장이 지난 8월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만나 “오는 12월 경기도 판교 창조경제밸리센터에 ‘요즈마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캠퍼스'를 열고, 한국의 생명공학·건강관리 분야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해 해외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 자리에서 “판교 캠퍼스에서 생명공학·건강관리 분야의 스타트업을 주로 육성하겠다"며 “미국·영국의 VC, 이스라엘의 첨단과학 연구기관인 와이즈만연구소 등이 참여해 투자와 창업보육 등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요즈마그룹은 컴퓨터 보안·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기업을 다수 육성했으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한국 벤처기업에 3년간 모두 1조 원을 투자하고, 스타트업 지원 시설도 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요즈마그룹은 아시아 첫 투자 기업으로 한국의 벤처기업 연합체인 500V(오백볼트)를 선택한 바 있다. 500V는 지난 3월 16일 요즈마그룹 산하의 요즈마벤처스로부터 10억 원을 투자받는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출범한 500V는 교육·패션·웨딩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해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회사다.

뒤늦게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한국의 등을 두드리며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요즈마 그룹은 어떤 회사이며, 이스라엘은 첨단기술에서 얼마나 강한 나라인가.

이스라엘은 면적이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약간 좁고 인구는 800만 명에 못 미치는 작은 나라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공적인 스타트업 수가 인구비례로 따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타트업 최고 선진국이며, 스타트업의 발굴·육성·발전에 필수적인 VC 수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VC 선진국이다.

스타트업 세계 최고 선진국

15년 전 영어교사 마윈이 우리 돈 8000만 원을 들고 시작해 오늘날 세계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키운 알리바바의 현재 가치는 약 175조 원이다. 알리바바도 처음에는 스타트업이었다. 세계 정보통신(ICT) 시장을 주름잡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야후, 페이스북 등도 죄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 이런 스타트업을 발굴해 키우는 주역이 바로 VC다. 이스라엘에는 유망한 스타트업도 많지만 이들을 성장시키는 VC도 많다. 이스라엘 토종 VC에 더해 이제는 미국 유수 VC들도 돈 보따리를 들고 이스라엘로 몰려들고 있다. 이런 기술 선진국 이스라엘의 최대 VC 집단인 요즈마(히브리어로 ‘발의(發議)’라는 뜻)가 아시아의 사업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요즈마 그룹의 이갈 엘를리히 회장은 1990년대 초 이스라엘 산업통상부의 수석 과학자였다. 그런 엘를리히에게 이스라엘 정부가 종자돈 1억 달러를 쥐여 주며 VC를 창설하라는 사명을 부여했고, 그는 이 돈으로 1993년 요즈마를 설립했다. 요즈마그룹 아시아본부의 사업개발 책임자 지나 헝이 아시아의 기술 및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온라인 공동체인 ‘테크인아시아’에 밝힌 바에 따르면 요즈마는 이스라엘에 VC 시장을 창설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새로운 VC들을 창설하고 △이들 새 VC에 파트너로 참여하며 △이스라엘의 스타트업들에 투자할 새로운 VC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부문과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것이 요즈마의 설립 목표였다. 종자돈 1억 달러로 시작한 요즈마의 VC 육성 노력은 2008년 이스라엘 VC 시장 규모를 59억 달러로 키워놓았으며 요즈마 자신의 VC 활동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세계적 첨단업체로 육성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모바일아이’(자동차부품 가운데 특히 영상인식 장비에 주력한다), 나스닥에 상장된 ‘체크포인트’(컴퓨터 보안업체) 같은 세계적인 이스라엘 첨단 업체들이 모두 이스라엘 VC 시장의 우산 아래에서 성장했다.

이스라엘 첨단산업을 중점 보도하는 웹사이트인 ‘노카멜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2014년 34억 달러를 유치했다. 2015년 1분기에만도 국내외 투자자들이 근 10억 달러의 자본을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에 쏟아부었다.

요즈마가 1993년 이스라엘에 VC 생태계를 출현시킨 이래 VC 수는 꾸준히 늘어나 현재 50개 이상의 국내외 VC가 이스라엘에서 활동 중이다. 외국 VC는 주로 이스라엘에 현지 사무소를 차리고 수십 억 달러의 기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다. 이 가운데 대형 외국 VC에 속하는 세콰이어캐피털의 경우 1972년 미국에서 창설된 이래 실리콘밸리에서만 죽 활동하다가 2000년 실리콘와디(이스라엘 판 실리콘밸리)를 찾아 처음 미국 바깥으로 진출했다.

유망한 스타트업이 외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앤젤투자가, VC, 크라우드펀딩을 통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앤젤투자가와 VC가 다른 점은 전자가 자기 돈으로, 후자가 남의 돈으로 유망 기업에 각각 투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투자액은 VC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수십 만 달러가 최대한이다. 반면 VC는 수백만 달러를 한꺼번에 투자한다. 아직 대규모로 활성화된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크라우드펀딩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소액 투자자를 대거 동원해야 하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부담이 있다,

대기업 지원 창업 쉬워야

한국경영학회가 지난 8월 17일 개최한 통합경영학회에서 국내 경영학자 2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기업 중심 성장과 창업 기반 취약`을 1순위로 꼽은 응답이 28.9%로 가장 많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한국경영학회 강의에서 “중국은 마윈 알리바바 회장 등 창업자들이 이끄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재계에서 근년 들어 창업 1세대가 기업가 정신으로 대기업을 일군 사례는 다음카카오나 네이버 등 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직원 9명이 퇴사해 3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한국에서도 대기업의 지원을 업은 창업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조짐이다. 이를 계기로 대기업의 스타트업 육성이 줄을 이을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결국 이스라엘 식으로 VC가 발달할 정도로 국내 첨단 스타트업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가속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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