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맏며느리, 손복남 CJ그룹 고문은 누구?
삼성家 맏며느리, 손복남 CJ그룹 고문은 누구?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5-08-24 17:25
  • 승인 2015.08.24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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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삼남매에 절대적 영향력 행사…CJ그룹의 막후 실력자

▲ CJ그룹 손복남 경영담당 고문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하자 그의 아내 손복남 고문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고 있다. 손 고문은 CJ그룹 오너 삼남매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막후 실력자다. 올해 여든두살의 고령임에도 CJ그룹 경영담당 고문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CJ 서울 남대문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동안 이 명예회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현 CJ그룹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 손 고문에 대해 알아본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부인이자 손경식 CJ 대표이사 회장의 누나, CJ그룹 오너 삼남매의 어머니인 손복남 고문은 CJ그룹의 오늘이 있기까지 산파 노릇을 해왔다.
 
지난 1993년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이 분리될 때, 손 고문은 자신이 보유한 옛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제일제당 지분과 맞바꿨다. 그리고 5년 후, 맏아들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주식을 몰아줘 후계 구도를 완성한다.
 
CJ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삼성에서 분리될 때 손 고문님이 지분을 맞바꿔 나와서 CJ 제일제당을 만드는 시초가 됐다고 밝혔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된 이후에도 손 고문의 동생인 손경식 당시 대한상의 회장이 CJ그룹의 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CJ그룹 내부에서는 손 고문의 영향력이 컸다.
 
딸인 이미경 CJ E&M 부회장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막내 이재환 씨가 광고대행사를 맡은 것도 손 고문의 막후 정치였다.
 
고 이맹희 전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과 벌인 재산분할소송에도 손 고문이 개입했었다는 설이 있다. 손 고문은 소송을 앞두고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재산에 대해 책임감을 보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두 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손 고문은 고 이 전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형제다툼을 했을지라도 범 삼성가의 딸, 며느리들과는 꾸준히 연락을 하며 가족의 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8월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구속된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이재용 CJ그룹 회장 등 삼성가 사람들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역시 손 고문의 도움요청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맹희 내 결혼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손 고문과 삼성가의 장남 고 이맹희 전 명예회장은 어릴 적부터 집안끼리 결혼이 약조돼 있던 관계다. 이 전 명예회장이 코흘리개였던 네살 때 이미 아이들이 자라면 혼인을 시키자는 양가 어른의 언약이 있었다.
 
손 고문은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이고 부친은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 씨다. 손 고문이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난 뒤 이 전 명예회장은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손 고문은 이 전 명예회장의 일본 유학 막바지였던 1956121일에 결혼했다. 111일 결혼 이야기가 나온 후 불과 한 달 만에 치른 혼사지만 이 전 명예회장의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를 보면 빠른 속도로 성사된 결혼이었지만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결혼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부인 손 고문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었다.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황태자 생활을 했던 이 전 명예회장은 만 39세에 집안에서 쫓겨난 후 허전한 삶을 살았다. 훗날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계열분리해 나오고 CJ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이 전 명예회장은 경영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이 전 명예회장의 말년은 더 안타깝다. 20122월 동생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7000억 원대의 상속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모두 패했으며 20142월 상고를 포기했다.
 
상속소송을 벌이던 중인 201212월 이 전 명예회장은 폐암 진단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그러나 곧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돼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 지난해에는 암세포가 혈액을 통해 림프절로 전이돼 중국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손 고문은 국내에 머물며 위기에 처해 있는 CJ그룹을 챙기느라 그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당시 장남 이재현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고 장녀 이미경 부회장도 미국을 오가며 신병치료를 받고 있었다. 결국 지난 14일 이 전 명예회장은 타지에서 가족들이 없는 가운데 쓸쓸히 눈을 감았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황태자였지만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지독한 병마와 싸우는 외로운 노인이었다.
 
남편 없이 홀로 시부모 모시며 자식 키워
 
손 고문은 고 이 전 명예회장과의 사이에 21녀를 뒀다. 자녀 모두 평범한 집안과 혼인해 이렇다 할 화려한 혼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손 고문은 삼성가의 맏며느리로서 겉으로는 화려해도 남편이 풍상을 겪자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삭이며 살아왔다. 서울 장충동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3남매를 키웠다.
 
CJ()의 명실상부한 안주인역할을 묵묵히 해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룹을 일으키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제일제당의 최대주주로 있다가 주식 증여를 통해 경영권을 장남 이재현 회장에게 넘겼다.
 
이재현 회장은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은 만큼 손 고문으로부터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이재현 회장은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할아버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손 고문은 이재현 회장에게 결혼 후 나가서 신혼살림을 하라고 늘 얘기했다. 그러나 이재현 회장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며 고집을 피워 20011월 할머니 박두을 씨가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살았다. 지금도 모친 손 고문과 함께 장충동 집에서 살고 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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