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범희 기자] 대기업들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심각한 ‘청년 고용절벽’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효과와 달리 단기 대책 위주의 청년 고용 계획 대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책이 청년고용 확대에 대한 기업의 자발적 움직임이라기보다 정부 입김에 따른 결과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일자리 대책 반갑지만 아직 갈 길 멀어
주요 대기업들이 경제 활성화와 청년 고용난 해소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채용에 나선다. 지난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LG, SK에 이어 현대차그룹에 이르기까지 주요 그룹들은 최근 최대 8만 여 명에 달하는 청년 일자리 및 신규 채용을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일자리는 정규직을 포함해 인턴까지 채용 형태가 다양하지만, 대기업들이 이처럼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밝힌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재계 관계자는 “10대 그룹의 최근 고용 창출 발표를 종합해보면 올해부터 2~3년 내에 최대 8만여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것으로 제조업부터 서비스업까지 망라됐다”고 말했다.
기업별 프로그램
준비 내용
기업별로 살펴보면 삼성그룹은 지난 17일 ‘청년 일자리 종합 대책’을 통해 향후 2년간 총 3만 명의 청년 일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고용 디딤돌로 3000명, 사회 맞춤형 학과 1600명, 직업 체험 인턴 및 금융영업 4000명 등 860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여기다 신규 투자를 통해 2017년까지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총 1만1400명에게 청년창업 활성화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다.
고용 디딤돌 프로그램을 거쳐 협력사에 4년 이상 근무할 경우 삼성 계열사 경력 사원으로 지원할 수 있게 해 ‘고용 사다리’를 두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고용 디딤돌’과 ‘청년 비상(飛上)’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부터 2년간 4000명의 인재를 육성하고 2만 명의 창업교육을 지원해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진출시키겠다는 복안을 최근 발표했다.
‘고용 디딤돌’은 내년부터 2년간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 2000명씩 모두 4000명을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진행해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청년들은 SK그룹이 시행하는 2∼3개월간의 직무교육과 채용기업에서 진행하는 3∼4개월간의 인터십을 거치게 된다.
‘청년 비상(飛上)’ 프로그램은 단계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1단계로 SK는 수도권과 대전·충청권에 있는 25개 대학과 공동으로 각 대학 캠퍼스에 창업지원센터를 설립해 창업교육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고, 이들 창업지원센터는 2016년부터 매년 1만 명씩 2년간 2만 명의 청년들에게 창업교육과 컨설팅, 창업 인큐베이팅을 지원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만500명을 채용해 일자리를 창출에 나선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9500명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밝힌 데 이어 그룹 차원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추가로 연간 1000개 이상의 청년 일자리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LG그룹 또한 ‘사회맞춤형학과’ 운영을 확대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지방인재 고용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설치대학도 계열사 사업장이 위치한 지방의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로 늘리고, LG전자는 경북대·부산대, LG이노텍은 전남대, LG유플러스는 지방 전문대에 사회맞춤형학과를 설치한다.
한화그룹은 올해 하반기 고용을 상반기의 2배 가까이 확대하는 등 2017년까지 총 1만7569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에는 상반기(2958명)보다 2771명 늘린 5729명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 당초 예정보다 약 35% 늘린 규모로, 이어 2016년에는 5140명, 2017년에는 6700명을 뽑을 예정이다.
속 빈 강정 논란
휩싸인 이유
효성은 탄소섬유 및 폴리케톤 등 신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해 새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오는 10월부터는 전주탄소창업보육센터를 통해 청년 사업가 1000여명의 창업을 지원한다.
문제는 대기업들의 채용 계획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인턴사원 채용이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채용이라는 점이다. 또한 수치로 혼돈을 주는 동시에 채용 인원 부풀리기이자 정규직을 정식 채용으로 인식하는 취업준비생과 국민 정서에서 동떨어진 발표라는 것이다. 발표된 계획안 중 현대차그룹만 정규직 채용 인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을 뿐 삼성 등 다른 대기업들은 정규직 규모를 구체화하지 않았다.
삼성의 경우 한 달 150만 원을 받는 인턴사원에 드는 비용을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부분만 돋보이게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3년 전 세계적으로 5만416명의 신규고용창출을 했으나 국내는 5096명 늘었을 뿐이다. 전체 고용 인원의 1/10에 불과하며 9/10는 모두 해외에서 고용한 인원이다.
LG그룹은 직간접적으로 13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했는데 10조원을 투자하면 2~3만의 신규 고용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버겁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SK는 삼성과 마찬가지로 ‘고용 디딤돌’과 ‘청년 비상’ 프로그램을 앞세웠지만 SK 고용 계획은 사실상 교육 프로그램이다.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지 SK가 청년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규직 신규채용 대신 청년 인턴만 늘리는 등 반쪽짜리 일자리만 증가하고 있다”면서 “정책이 양적 증가가 아닌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발표하는 신규 채용 규모는 청와대와 정부에 과시하려는 목적이 1차이고, 부차적인 목적은 언론용”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대기업들이 청년 고용과 투자를 늘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하는 듯이 대규모 고용을 예고했다 주장이다.
특히 노동개혁의 최대 쟁점인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 완화’라는 재벌 기업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전 포석용, 여론 무마용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한 기업관계자는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여론이 큰 상황이라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기업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면서도 “고용 창출로 발생하는 비용 등은 경영 부담이 큰 만큼 당분간은 눈치 보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