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중국 기업, 미국에 속속 공장 설립
‘고비용’ 중국 기업, 미국에 속속 공장 설립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8-17 11:07
  • 승인 2015.08.17 11:07
  • 호수 1111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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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임금 외에 비싼 에너지·물류비용 갈수록 부담
미국은 싼 에너지 비용과 높은 생산성… 경쟁력 회복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과거 싼 임금을 무기로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대거 유치했던 중국이 이제 거꾸로 미국에 속속 공장을 세우고 있다. 중국이 근년 들어 결코 저임금 국가가 아닌 곳으로 변하면서 중국인 투자자들이 빠르게 미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현상으로, 미국의 산업 경쟁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미-중 간 제조업 경쟁력 역전 현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 본사를 두고 있는 방적업체 키어그룹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랑카스터 군(郡)의 인디언랜드에 지난 3월 방적공장을 완공한 일이다. 2억1800만 달러(약 2500억 원)를 투자해 세운 이 방적공장은 미국인 근로자 500명을 고용해 미국에서 딴 면화에서 실을 뽑아낸다.

중국 내 섬유생산은 근년 들어 꾸준히 오르는 임금, 상승하는 에너지·물류 비용 때문에 갈수록 수익이 낮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면화 수입량 쿼터 증대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이와 동시에 미국 내 제조비용은 갈수록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미국내 산업 경쟁력 회복

키어그룹이 인디언랜드에 공장을 차린 것은 △임금이 낮아도 좋으니 일자리만 제공해 달라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요청 △인디언랜드가 속한 기초·광역자치단체, 연방정부에 이르는 모든 정부·정치인의 필사적인 투자유치 노력 △싼 땅값, 싼 에너지 값, 면화 보조금, 세금우대가 삼박자로 어우러지면서 키어그룹을 강하게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중국을 빼고 진행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창설 논의가 조만간 극적으로 타결될 전망이 보임에 따라, TPP가 성사되기 전에 미리 미국 내에 생산거점을 마련해야겠다는 중국 방적업체의 조바심도 작용했다.

키어그룹은 미국에서 생산한 방적사를 아시아 곳곳의 방직업체에 판매한다. 이 회사는 미국산 면화에서 방적사를 뽑는 작업을 여전히 중국 내 공장에서 많이 실행하고 있지만 생산 판도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키어그룹의 주상칭 회장은 키어그룹이 미국에 진출한 것은 “인센티브, 공장부지, 환경, 근로자 때문”이라면서 “중국에서는 방적업계 전체가 적자를 보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최근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1970년대 초 미중 교역이 재개된 이래 값싼 전자제품, 의류 등 중국산 수입품이 미국에 밀려들면서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해 왔다. 하지만 치솟는 중국의 노동비용과 에너지 비용은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생산성에 맞춰 조정을 거친 제조업 임금은 중국에서 지난 10년간 근 3배 올라 2004년 시간당 4.35달러에서 지난해 12.47달러가 됐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미국의 제조업 임금은 2004년 이래 30% 미만 올라 시간당 22.32달러가 됐다. 임금으로만 보면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비싸지만, △국제시세의 4분의 1에 불과한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 △유리한 면화 가격 △외국인 직접 투자에 대한 세금우대 △보조금을 감안하면 중국보다 미국에서 방적사를 생산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지난 7월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분석한 ‘2015 25개국 제조원가지수’를 보면 미국 제조업의 생산원가(100)는 조사대상 국가들 가운데 중국(97)에 이어 2위다(한국은 104로 미국보다 경쟁력이 낮다). 그런데 ‘국제섬유제조업체연맹’에 따르면 방적사 생산비는 중국이 미국보다 30% 더 높다.

중국의 대미투자는 현재 미국 내에서 8만 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지탱한다. 이는 지난 5년 사이 5배 늘어난 수치다. 미국 입장에서는 8만 개라는 일자리 수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줄곧 중국으로 빠져나가기만 했던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가 미국으로 역류(逆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다. ‘미-중 관계에 관한 전국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미국 조사업체 로디엄그룹이 지난 5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지난 2000년 이래 미국에 투자한 돈은 모두 460억 달러(약 53조원)이며 이는 지난 5년 사이 집중됐다. 로디엄그룹은 중국의 대미투자가 2020년까지 1000억~2000억 달러로 증가해 20만~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제조업 일자리 미국 역류

많은 미국 정치인들은 중국인 투자자들이 중국 내 낮은 임금을 활용하기 위해 일자리를 다시 중국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로디엄 보고서에 나타난 현실은 다르다. 중국에 의한 많은 투자가 도산 위기에 처했던 많은 미국 기업을 구원했으며, 미국기업을 인수한 중국 투자자는 대부분 회사를 확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또 보고서 작성 시점으로부터 직전 18개월간 미국 내 제조와 서비스 부문에서 중국의 투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음에 주목한다. 보고서는 “중국인 투자자에 의한 일자리 수 8만 개는 외국 기업들에 의해 제공된 전체 일자리 수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지만, 5년 전의 1만5000개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라며 “중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내에서 취득한 자산과 관련 일자리를 조직적으로 중국으로 옮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2014년 말 현재 중국인 투자자가 미국에 설립한 사업체는 약 1600개다. 주별로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일리노이, 뉴욕, 노스캐롤라이나로 투자가 많이 쏠렸다. 현재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 수준은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오던 것과 대략 비슷하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일본 제품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자 미국 내에서 이에 대한 반발이 일었고, 당시 일본은 자국의 대형 자동차회사들로 하여금 미국 내에 현지 공장을 설립해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케 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반발을 무마하려 했다.

중국의 대미 투자가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더 많은 투자’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미국 내에서 점차 불거지고 있다. 권위 있는 종합 월간지 《애틀랜틱》의 지난 6월호에 게재된 기사에서 미국의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과 로버트 루빈은 ‘미국의 삐걱거리는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환영 받아야 하며 촉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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