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백업(후보선수)으로 출발해 현지 언론들의 의문을 달고 살았던 강정호가 드디어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어엿한 팀의 주전선수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더욱이 미국 언론들은 3루수와 유격수를 번갈아가며 뛰고 공격에도 힘을 싣고 있는 그에 대해 헐값에 사들인 진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MLB) 신인왕에 근접할 정도로 맹활약을 쏟아내고 있는 강정호를 만나본다.
시즌 초반 백업으로 출발해 규정이닝 채우며 주전선수로 우뚝
신인왕 근접한 맹활약에 해외구단 스카우트들 KBO관람 급증
넥센 시절 가수 나훈아를 닮은 외모로 ‘목동의 나훈아’로 불렸던 강정호는 최근 미국 팬들과 미디어 사이에서 ‘킹캉(King Kang)이란 애칭을 얻었다. 킹캉은 영화 킹콩과 강정호의 성을 결합해 만든 말이다. 피츠버그 홈구장 PNC파크에서는 ‘King Kang’이라고 쓴 응원 팻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정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즌 초반의 우려를 감탄으로 바꾸고 있는 강정호는 지난 12일(한국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 5번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4타석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이날 팀은 3-4로 패했지만 강정호는 전날까지 337타석으로 1타석 부족했던 규정타석(팀 경기수×3.1)을 채우면서 명실공이 피츠버그의 주전으로서 우뚝 섰다. 현재 피츠버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는 단 6명에 불과하다.
규정타석 진입은 강정호가 확실한 주전급 선수로 도약했음을 입증한다. MLB에서는 주전선수가 아니면 규정타석을 채우기 쉽지 않다. 내셔널리그 15개 팀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강정호를 포함해 74명뿐이다. 이는 각 구단에서 5명 내외만 규정타석을 채운 셈이다.
앞서 현지 언론들은 시즌 시작에 앞서 한국 야수 중 처음으로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리그에 입성한 강정호를 놓고 비판적인 시선이 앞섰다. 당시 비교 대상이 없었을 뿐더러 한국프로야구(KBO)보다 한수 위라고 평가받는 일본 내야수들이 메이저리그 첫해에 연착륙하지 못한 선례도 우려로 작용했다.
여기에 강정호가 타격할 때 왼쪽 발을 드는 ‘레그킥’때문에 타격에서도 의문 부호를 찍으며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는 백업’이라는 게 美 언론들의 냉정한 평가였다.
하지만 강정호는 이 같은 우려를 자신의 진가를 통해 호감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7월 25경기에서 타율 0.379(87타수 33안타)를 기록하면서 같은 달 내셔널리그 최고 신인으로 선정되는 저력을 발휘했다.
또 그는 시즌 타율 0.293을 유지해 내셔널리그 19위에 이름을 올렸고 MLB 공식 홈페이지에는 강정호가 3루수로 구분돼 있는데 그보다 앞선 3루수는 유넬 에스코바(워싱턴·0.309)와 맷 더피(샌프란시스코·0.307)뿐이고 유격수로 분류하면 1위 자리에 해당한다.
여기에 강정호의 팀 기여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를 살펴보면 강정호의 WAR(ESPN 기준)은 3.7로 측정된다. 이는 대체선수 보다 팀에 3.7승을 더 안겼다는 의미로 내셔널리그 야수 중 15위에 해당한다.
기회 잡은 순간
맹타로 폭발
물론 이 같은 맹활약을 선보이기 위해 강정호는 무한한한 노력을 기울였다. 시즌이 시작되자 강정호의 위치는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는 백업 내야수였다. 또 초반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며 등판기회를 잡기 위해 갈고 닦았다.
여기에 3루수 조시 해리슨이 지난 7월 6일 왼손 엄지 부상으로, 유격수 조디 머서가 20일 왼 무릎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강정호는 붙박이 출장이 보장되는 기회를 잡았다.
이를 놓칠 강정호가 아니었다. 그는 7월 한 달을 화려하게 보내며 주전 자리를 꿰찼고 해리슨과 머서가 복귀한다 해도 지금의 주전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 반전을 일구자 현지 언론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강정호를 피츠버그의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한다.
피츠버그 트리뷴 리뷰는 “강정호는 앤드루 매커천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타자다. 강정호가 매일 경기에 나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또 피츠버그 포스트 가젯의 스포츠부문 편집장 제리 미코는 지난 13일 독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에 “닐 헌팅턴 단장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스프링 트레이닝 때만 해도 강정호 영입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강정호가 트리플A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봤었다”며 “하지만 허들 감독은 감정호를 어떻게 메이저리그에 적응시켜야 하는지 잘 보여줬다. 강정호가 천천히 이곳에 적응해서 아름다운 결과를 내고 있다. 강정호는 한국에서처럼 파워히터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앞으로 15홈런에서 20홈런, 75타점에서 80타점 정도를 기록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코는 또 “강정호에게 가장 좋은 부분은 그의 야구 아이큐다. 강정호는 항상 일정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준다. 몇몇 선수들처럼 신체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으나 충실한 기본기로 많은 것을 해낸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금방 자기 자신을 다시 조절할 줄 안다”고 강정호의 야구 센스를 높게 평가했다.
이외에도 미국 스포츠 매체 스포츠온어스(SOE)는 지난 14일 메이저리그 신인왕 레이스를 조명하며 내셔널리그 후보군에 강정호를 포함시켰다.
해당 매체는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가 가장 앞서 있는 가운데 강정호, 더피, 작 피더슨(LA 다저스)이 추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강정호의 입후보가 호사가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다. 그가 이미 한국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쌓은 26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피츠버그가 한국에서 영입한 선수는 내셔널리그 루키 중 손에 꼽히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매체는 “3루수로 활약하던 강정호는 피츠버그의 조디 머서의 부상으로 유격수 자리에 구멍이 생기자 포지션을 옮겨 훌륭히 자신의 임무를 소화했다”면서 “타석에서는 생산성이 있는 데다 수비에서는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줄 아는 선수”라고 좋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이들은 “생각해보면 어떤 빅리그 팀이 저렇게 대단한 내야수를 영입할 수 있을까 싶다”면서 “피츠버그는 단 4년 1100만 달러(129억 원)에 그를 영입했다”고 강조했다.
MLB 유격수 평균 연봉이 549만 달러임을 고려할 때 강정호의 2015년 연봉은 250만 달러 수준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헐값에 건진 보석
신인왕 노려
현지의 뜨거운 관심은 강정호의 신인왕 경쟁에도 쏟아지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의 팀 할리는 “강정호가 브라이언트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양상이라”면서도 “다른 나라 프로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메이저리그 공식 신인왕 후보 자격이 있을까 하는 물음도 강정호로 인해 재차 화두로 떠오른다. 강정호는 피츠버그에 필요한 포지션을 따라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공격에서 생산적이다. 이런 선수를 지난 겨울 4년 1100만 달러라는 헐값에 얻었다고 전했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무시무시하던 브라이언트와 피더슨, 알렉스 게리로(LA 다저스), 디반 트래비스(토론토 블루제이스) 등이 가라앉으며 양대 리그 신인왕 판도에 큰 변화가 불고 있다.
이 틈을 타 7월 이후 치고 올라온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 애스트로스), 강정호, 투수 중에는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 등이 역전하는 모양새를 나타내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아메리칸리그(AL)에서는 코레아(54경기 61안타 타율 0.288 14홈런 9도루 출루율+장타율:OPS 0.906 등)가 단연 1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남들보다 훨씬 늦게 데뷔한 덕에 아직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코레아가 데뷔 시즌 ‘20-20(한시즌 홈런-도루 20개 동시 달성)’에 가입한다면 수상이 유력하다.
반면 강정호가 속해 있는 내셔널 리그는 아직 누구 하나를 지목하기 힘들 정도로 진흙탕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초반부터 무섭게 치고나간 브라이언트(101경기 91안타 0.249 15홈런 65타점 11도루 OPS 0.801등)와 피더슨(108경기 82안타 0.222 21홈런 43타점 3도루 OPS 0.801 등)이 다시 힘을 내 타율을 어느 정도 만회한다면 재역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갈수록 실력발휘를 하고 있는 강정호를 비롯해 랜덜 그리척(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더피, 신더가드, 야스마니 토마스(애리조나 타이아몬드백스), 마이켈 프랑코(필라델피아 필리스) 등이 가세하면서 시즌 종반까지 가야 신인왕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정호는 경쟁자들에 비해 가장 힘든 포지션인 유격수를 소화한다는 점에서 크게 어필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
박병호 MLB진출
최대 수혜주

미국 스포츠 매체인 SB네이션의 비욘드더박스스코어는 지난 13일 강정호의 맹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며 “메이저리그 팀들이 KBO 선수들 영입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강정호가 좋은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논평가 헨리 드루셜은 “시즌의 3분의 2를 마친 현재 강정호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그가 더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구단들이 KBO쪽으로 더욱 시선을 보낼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정리했다. 드루셜은 “강정호는 KBO리그에서 21.2%의 비율로 삼진을 당했다. MLB에서는 19.9%로 오히려 줄었다. 강정호를 향한 시즌 전의 불안한 시선은 이젠 모두 살아졌다”면서 “대개 신인 타자들은 변화구에 약점이 드러난다. 패스트볼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강정호는 특정 구종에 약하지 않다. LA 다저스의 피더슨이 브레이킹볼에 당하는 것과는 달리 구질에 따라 편차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같은 구단들의 관심은 올 시즌을 마치면 포스팅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능한 박병호에게 뜨겁게 나타나고 있다. 거의 매 경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한국에서 박병호의 경기를 관람중이며 포스팅 금액에 대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CBS스포츠의 존 헤이먼 기자는 지난 8일 강정호의 활약을 돌아보면서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강정호의 활약은 그의 친구인 박병호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 실무자들은 강정호와 박병호 모두 빅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것”이라며 올 겨울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예상했다.
이처럼 강정호로 인해 MLB에 불고 있는 킹캉 훈풍 덕분에 당장 박병호가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또 향후 KBO에서 직접 MLB로 진출하는 선수들도 급증할 것으로 보여 제2의 강정호가 누가 될지에도 야구팬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야구해설위원은 “강정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활약 이후 해외스카우터들이 확실히 전보다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며 “국내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진출하기 위해선 꾸준한 기록,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짚어내고 그것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