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핑호스트’로 전직한 행정비서
- 여성보좌진 눈에 띌 만큼 늘어나

그 행정비서는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방송사 일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은 방송사의 아나운서가 꿈이자, 목표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는 의원실에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다. 의원회관 전체적으로 근무여건이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했다. 정책질의서를 보좌관이 수작업으로 작성하면 행정비서가 전동타자기로 옮겨쓰던 시절이었다. 인원도 부족했다.
그런 시절에 행정비서는 퇴근 후 고단함을 뒤로하고 대학원과 방송전문학원 수업도 병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고와 영화 쪽에도 관심이 많아 주말에는 간간히 장점을 살려 영화포스터 제작과 카피라이터로도 활약했다. 그녀의 업무능력과 열정은 대단했다. 모시던 의원이 낙선한 얼마 뒤에 그녀는 유명한 쇼핑호스트(shopping host)로 변모해 있었다. 홈쇼핑 TV 등에서 상품소개 전문 MC다. 미국 등에서는 탤런트나 토크쇼 사회자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직업이다.
90년대 초반이던 당시에 쇼핑호스트는 인기직종으로 부상했다. 그녀는 홈쇼핑에서도 드물었던 소위 ‘완판녀’라는 별칭을 들을 만큼 능력을 발휘했다. 행정비서로 경험을 쌓고 시야가 넓어져서 그런지 말솜씨와 방송 진행능력도 뛰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의원실에서 회계와 일정, 손님응대 등 업무를 익혀서 그런지 프로페셔널(professional)로 완벽히 변신했다. 상품을 소개할 때 사전에 자료조사도 꼼꼼히 하고, 외국출장을 통해 소개예정 제품들의 장단점을 꼼꼼히 따졌다고 한다. 결국 부단한 노력과 열정으로 홈쇼핑 업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 유력 재벌들이 소유한 홈쇼핑업계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해 스카웃 제의가 이어졌다. 당시 드물었던 억대 연봉자들이 부러울 게 없었다. 쇼핑 호스트에 이어 여성전용 케이블방송사의 진행자와 쇼핑 칼럼니스트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9급 행정비서로 출발했지만 완전히 다른 분야로 진출해 업계 최고의 유명인사로 성공한 케이스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부단한 노력으로 새로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전문직으로 진출한 여성보좌진들도 그동안 생겼다.
청와대로 간 女보좌진
과거에는 남성 위주로 구성되었던 국회 보좌진들이 이제는 달라졌다. 국회 의원회관에도 여성보좌진 숫자가 눈에 띌 만큼 늘어났다. 행정비서는 물론 4급 여성보좌관들도 많아졌다. 의원실의 보좌관은 비서실 업무를 총괄한다. 정책, 법률안, 행정, 민원, 조직, 일정 등 다방면에서 모시는 의원의 전반적인 의정활동 보좌를 책임지고 있다.
여성보좌진 역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가 되어야 한다. 실력있는 여성보좌관은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을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등에서 스타로 부각시킨다. 이른바 의원회관에는 ‘스타의원 제조기’라는 별칭을 듣는 여성보좌관도 많다.
의원회관에서만 20년이 넘게 장기근속한 여성 보좌관도 여럿 있었다. 2천여명이 넘는 국회 보좌진들이 근무하는 의원회관의 보좌진 세계에서도 ‘왕고참 보좌관’으로 불리는 수석보좌관들 가운데는 여성 보좌관도 상당하다. 행정부를 비롯한 피감기관에 송곳같은 자료요청과 매서운 정책질의서 작성으로 담당자들을 쩔쩔매게 하거나, 해당기관장들이 답변에 애를 먹이며 혼쭐나게 하는 여성 보좌진들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의원회관에서의 여성 보좌진들의 능력은 자연스럽다.
의원회관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여성보좌관 가운데는 청와대 행정관이나 장관보좌관으로 간 경우도 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의원회관 보좌관으로 옮긴 경우도 있다. 자신이 모시던 의원이 행정부 장관으로 발탁돼 자연스럽게 의원을 따라 행정부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장관정책보좌관을 하거나 장관비서실에서 근무한다. 청와대로 간 여성보좌관은 의원회관의 보좌진들도 대부분 부러워한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하는 것은 보좌진뿐만 아니라 고시출신의 행정부 공무원들도 소망하는 공직사회의 꽃이다. 그만큼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변호사도 보좌진에 도전
18대 국회시절에는 어느 의원실에 보좌진으로 들어왔던 여성변호사는 몇년가량 경력을 쌓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경우도 있었다. 의원회관에서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실무적으로 법률안을 성안해서 의원입법으로 발의하거나 정부제출 법률안에 대해 심사를 하면서 법률지식을 더 늘린다. 다양한 정책분석 및 개발능력을 쌓고 인맥도 넓혀서 전문분야로 다시 나간 케이스다.
지금도 변호사 자격을 갖춘 여성 보좌관이나 비서관들도 상당하다. 이들은 자신의 강점인 전문 법률지식을 활용해 의정활동 보좌에 있어서 뛰어난 법률심사와 법제능력을 보여준다. 변호사들의 보좌관 진출은 정치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쓰여 질 상황도 아니다. 변호사뿐만 아니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과 열정을 갖춘 뛰어난 여성보좌진들이 근무하거나 도전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비서협회가 개설한 ‘국회 보좌진 양성과정’ 수강생 중에는 여성 보좌진을 꿈꾸는 수강생들도 상당하다. 변호사 수강생도 있었다. 몇 달 전에 휴대폰으로 한 통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강의를 들었던 변호사 출신의 여성 수강생이었다. 안부소식 겸 보좌진이 되고 싶다는 포부와 소망을 적은 내용이라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경력과 지식을 쌓아 언젠가 의원회관에 들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강의를 했던 필자 역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여성변호사는 물론 변호사들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여성경력자들이 보좌진에 도전하고 있다. <계속> <김현목 보좌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