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미스터리 죽음 근간이 흔들린다
기업인 미스터리 죽음 근간이 흔들린다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5-08-17 10:26
  • 승인 2015.08.17 10:26
  • 호수 1111
  • 4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혹 풀려다 또 다른 의혹이…고민하는 사정 당국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운용과 관련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임모 과장 사건을 놓고 사정 당국의 압박 수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앞서 재계에서도 기업인들이 사정 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례들이 많아 자살에 대한 경종을 울린 바 있다. 결국 시간은 흘렀지만 대한민국의 미스터리한 죽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이다. [일요서울]은 기업인들의 연이은 자살이 남긴 사정 당국의 흔적들을 되돌아봤다.

故정몽헌·남상국·성호정 전 회장까지 잇따라 자살
별건수사·수사상황 유출 등 검찰의 수사관행 지적 많아

누구도 풀 수 없는 의혹과 의문을 남긴 자살 사건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얼마 전 임모 과장 사건 역시 미스터리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임씨의 죽음과 국가정보원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돼 있다는 의혹은 세간에서 점점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또 이와 같은 일들은 과거 기업인들의 죽음 속에서도 자주 발견됐다. 특히 각종 비리와 연루돼 검찰의 수사를 받던 그룹의 총수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일들로 인해 세간에선 많은 혼란이 일어난 바 있다.

가장 가까운 일례로 자원개발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시신으로 발견된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있다. 검찰이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경남기업 압수수색을 시작 했고, 결국 그는 자살로써 65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검찰 수사 중 목숨을 끊은 경제인은 성완종 전 회장만이 아니다.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2003년 8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정몽헌 회장은 대북송금 및 현대그룹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과정에 있었다.

정확한 자살 배경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영난과 대북송금 및 비자금 조성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의 유서에는 ‘(나를)금강산에 뿌려달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현대가 기업인인 故 정몽우 현대 알루미늄 사장의 죽음도 의문점 투성이다. 정대선 현대 BS&C 사장 아버지인 정몽우 회장의 자살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1990년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이자 현대알루미늄 정몽우 회장은 호텔에서 극약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오래전부터 정신질환치료를 받아온 정대선 사장의 아버지가 갑자기 우울증이 도져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자살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는 의문을 남기고 있다. 비록 정몽우 회장이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하는 과정은 아니었지만 4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어디선가의 압박이 있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2004년 3월 대통령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던 중 서울 한남대교에서 투신했다. 남상국 전 사장은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장 연임을 위해 당시 대통령 친인척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가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살을 한 지 1년여가 흐른 뒤, 화제가 된 인물도 있다. 송학식품 떡에서 대장균이 검출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故 성호정 송학식품 대표가 투신자살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성호정 송학식품 회장은 지난해 5월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던 중 아파트 1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책상에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 천국에서 만나자’라는 짧은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중 목숨 끊는 사람들

한편 계속되는 죽음들로 인해 검찰 수사에 대한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검찰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급증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홍일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사람은 90명에 달했다.

특히 지난 3년간 수치를 봤을 때 2012년 10건, 2013년 11건, 2014년 22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문제가 제기됐다. 이른 바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를 받던 경찰 정보관이 차 안에서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방산비리 사건 조사를 받던 참고인이 행주대교에서 투신했던 사건들도 포함됐다.

또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살하는 피조사자 중 상당수는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를 포함한 화이트칼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04~2014년간 검찰 수사 중 자살한 피조사자 83명에 관해 분석한 결과 범죄유형별로는 횡령배임이 23%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뇌물죄 21%, 성범죄 15% 순이었다.

조직성이 강한 화이트칼라 범죄 중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은 혐의를 캐기 위해 피의자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조사를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별건수사, 수사상황 유출 등 검찰의 수사관행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많다. 이와 관련해 홍일표 의원은 “기업인 관련 비리 혐의 등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내용을 흘리거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사용해 피의사실 공표의 위법성을 피하고, 당사자가 반론을 제기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면 수집했던 증거의 일부나 관련자 진술 등을 추가로 공개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도 “검찰 수사관실이 단두대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표적수사라고 느끼며 억울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적 없다는데 매일 아침 드라마처럼 검찰을 통해 수사상황이 보도되면 (조사받는 사람이) 얼마나 심리적 부담이 크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전문가들은 피조사자가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을수록 실패와 좌절에 대한 공포를 더 심하게 느끼고 우울증 등 급성정신장애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결국은 의혹을 풀어내기 위한 사정 당국의 움직임이 또 다른 미스터리를 만들어 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죽음들에는 사정 당국의 흔적이 여전히 묻어 있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