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지난해 10월 국내 2위 포털 다음과 1위 메신저 카카오의 합병으로 탄생한 다음카카오가 합병 이후 1년여간 유지해온 '이석우-최세훈' 공동대표 체제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연다.
그것도 파격 인사로 업계를 놀라게 한다. 35세의 젊은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사진)가 선장을 맡는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이에 따라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카이스트→NHN 기획실 출신…‘김범수 키즈’
더 공격적으로?…상생·협력 병목현상 우려
임 내정자는 오는 9월 23일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 승인을 앞두고 있다. 이사회를 통과하면 그는 시가총액 8조 원 회사의 수장이 된다.
다음카카오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빠르게 변화하는 모바일 시대에 강하고 속도감 있게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자 한다”며 “합병 이후 본격적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뜻을 잘 아는 임 내정자는 다음카카오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카카오택시를 성공적으로 이끈 정주환(37) 부사장 등으로 구성된 뉴리더팀을 꾸렸다. 이들을 중심으로 다음카카오의 조직 및 사업 재편을 위한 준비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다음카카오가 이제까지 뚜렷한 성과를 못 낸 해외 사업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크다
김 의장과 첫 인연은
이후 김 의장은 네이버에서 나와 카카오를 창업했고, 임 내정자는 벤처캐피털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수석심사역으로 벤처투자 업계에 뛰어들었다.
임 내정자는 2010년 모바일 게임 ‘애니팡’을 개발한 선데이토즈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선데이토즈는 제대로 된 성공작 하나 없던 신생 게임 업체였지만,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것이 주효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2011년이었다. 카카오가 전자상거래 기업 로티플을 인수할 때였다. 로티플에 투자했던 임 내정자가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카카오의 협상 상대로 나섰고, 이 과정에서 김 의장이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임 내정자는 2012년 케이큐브벤처스 대표에 영입됐을 때도 화제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두 살이었다.
김 의장은 자신이 자본금 100%를 출자해 설립한 벤처투자사 케이큐브벤처스를 맡겼다. 이후 3년간 임 내정자는 키즈노트·두나무·프로그램스 등 50여 개 기업에 초기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렸다.
그는 평소에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람” “우리는 스타트업의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되겠다”고 강조하며 창업자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매달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이는 ‘케이큐브 패밀리데이’를 열며 실리콘밸리의 연쇄창업집단인 ‘페이팔 마피아’처럼 키우겠다는 포부도 강조해 왔다.
관련업계는 임 내정자가 김 의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김범수 키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임 내정자가 직접 창업해 본 경험은 없지만 김 의장과 거의 매주 만나며 김 의장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는 기대는
업계에서는 임 내정자를 다음카카오 수장으로 발탁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는다. 이 중 하나가 리더십과 사업성이다.
임 내정자는 마크 저커버그(31) 페이스북 CEO보다는 나이가 많고, 래리 페이지(42) 구글 CEO보다는 어리다. 또 차량 공유 업체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CEO는 39세,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의 에반 스피겔 CEO는 25세에 불과하다. 단 이들은 모두 창업자다. 전문 경영인으로 임 내정자처럼 젊은 인물은 드물다.
또한 “투자만 해왔을 뿐 사업은 잘 모를 것”이라는 회의적 반응도 있다. 임 내정자는 모바일 전 분야에서 기업의 탄생부터 성장, M&A(인수합병) 등 모든 과정을 거친 것이 장점이다.
2012년 케이큐브벤처스를 설립한 이후 총 52개 기업에 250억 원 넘게 투자했다. 투자 대상도 모바일 전자상거래부터 게임, 콘텐츠 추천 서비스 등 다양하다. IT 업계에는 게임·상거래·서비스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많지만, 이렇게 여러 분야를 경험해본 이는 드물다.
반면 외부 투자자·컨설턴트로만 일해 사업은 잘 모르 것이란 의견도 있다. 실제로 임 내정자가 IT 기업에서 일한 시기는 2005~2006년까지 NHN 기획팀 근무가 전부다. 내부 개발자나 서비스 기획자와 소통이 잘 안 될 경우 신규 서비스 개발보다 투자·M&A 쪽으로 회사 경영의 중심이 옮겨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다음카카오의 현재 상황에서 새로 부임하는 임 대표에게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최세훈 현 공동대표는 “다음카카오의 출발을 맡아 진정한 모바일 시대로 진입하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시작될 진정한 모바일 시대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판단해 추천했다. 다음카카오는 모바일 혁신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석우 현 공동대표는 “다음카카오가 모바일 시대의 서막을 열었지만, 앞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 그 이상의 무한한 가능성은 이제 막 시작됐다. 다음카카오의 또다른 시작을 위한 최고의 인재다. 다음카카오의 더 빠른 성장을 기대해달라”로 주문했다.
업계관계자는 “합병 이후 가시적이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두 공동대표에 대한 일종의 문책성 인사인 동시에 일종의 자신의 ‘적자’를 내세운 김 의장의 본격적인 경영참여”라고 설명했다.
다음카카오는 K-IFRS(한국국제회계기준) 기준 2분기 영업이익이 114억3400만 원으로 전분기 대비 71.7% 감소했다고 13일 공시했다.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4%·30.7% 줄어든 2264억8200만 원·213억6900만 원이다.
다음카카오 측은 “2분기 신규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많이 집행됐다”며 “단기적으로 투자실적을 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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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